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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원자력발전소와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가마미 마을 입구에 걸려있는 반핵기가 외지 손님들을 맞고 있다
영광원자력발전소와 불과 1km 남짓 떨어진 가마미 마을 입구에 걸려있는 반핵기가 외지 손님들을 맞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전남 영광 가마미 해수욕장. 한때 완도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더불어 호남 최고의 피서지로 각광받던 곳이다. 그러나 원전 건설 이후 모든 것이 퇴보됐다고 주장하는 전남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가마미 마을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고 싶으니 이주대책을 세워달라"며 한국수력원자력(주)(이하 한수원)측에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가마미 마을 주민들이 집단이주를 요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12월 22일 영광원전 5호기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사고 때문. 주민들은 한결같이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불안하고 생계마저 막막해 더 이상 못살겠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영광원전 5호기 방사능 누출사고 이후 주민들은 마을 총회를 통해 가마미이주대책위원회(위원장 이영재·계마리 이장)를 꾸리는 한편, 국회의사당 앞 시위와 영광원전 앞 시위로 한수원을 압박한 끝에 한수원과 공동대책위 구성을 합의했다. 주민들은 "이주 외에는 타협은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방사능 누출사고 이후 어업과 민박 등 생업에서 손을 뗀 채 뒤숭숭한 분위기에 싸여있는 가마미 마을을 지난 19일 찾았다.

한 어민은 이렇게 말한다 "고기 잡으면 뭐하나? 방사능 사고 이후로 사가는 사람도 없는데..." 사진은 조업을 포기하고 계마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한 어민은 이렇게 말한다 "고기 잡으면 뭐하나? 방사능 사고 이후로 사가는 사람도 없는데..." 사진은 조업을 포기하고 계마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문 닫은 횟집과 출어 포기한 어선들

이날 오후 1시경 찾아간 가마미 마을은 인적이 없어 조용했다. 194세대 600여명이 살고 있는 마을이지만, 선창에는 수십 척의 어선들이 묶여있고 어구들이 널려있을 뿐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선창과 인접해 있는 가마미 회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10여개 횟집이 입주해있는 회센터에는 5곳의 업소가 문을 걸어잠갔고 그나마 문을 연 나머지 업소에도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횟집을 운영하는 강대환(45)씨는 문을 닫은 업소들을 가리키며 "장사가 안되니까 주인들이 가게문을 닫고 다른 곳에 돈벌이하러 나갔다"고 설명했다. 방사능 누출사고로 인해 손님들이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그 사고 전까지는 광주 등 외지에서 오는 손님들도 있었지만 방사능 누출 사실이 알려지자 이곳에 회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없어졌다"며 "지금 숭어가 한참 제철이라 손님들이 제법 몰릴 때지만 보시다시피 개점휴업 상태"라며 어두운 기색을 보였다.

그는 이어 "나도 사고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는데 외지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며 "실제로 여기까지 온 손님들도 가게를 기웃거리다 '꺼림칙하다'며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한수원은 누출된 방사능 양이 미미하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태도로 볼 때 못미더운 구석이 많다"며 "불안해서 못살겠으니 한수원이 주민들을 옮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창에서 7t급 어선 영신호를 손보던 선장 이동재(67)씨는 출어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대뜸 영광원전 쪽을 바라봤다. 이씨는 "고기 잡으면 뭐하나? 방사능 사고 이후로 사가는 사람도 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다른 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모두 조업을 포기한 상태"라고 밝혔다.

주민들 "불안해서 못살겠으니 다른 데로 옮겨달라"

이씨는 "지금 주꾸미와 숭어가 제철이라 이것들을 잡아 팔면 그나마 생활비라도 건질 수 있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며 "지난해 연말 이후 지금까지 근 두달을 놀고 있어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줄곧 이곳에서 어업에 종사해온 이씨는 "영광에 원전이 들어서기 전과 후가 확연히 틀리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원전이 들어선 후부터는 이곳에서 잡아온 고기를 회를 떠보면 육질이 푸석푸석해져 이 마을 횟집들도 우리가 잡은 생선을 구입하는 것을 꺼릴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류 방향도 바꿔지고 수온도 올라가 뻘이 썩고 있다"며 "예전처럼 3∼4마일 밖에서는 고기를 잡을 수 없어 8∼9마일 정도 더 나가지만 생각처럼 고기가 잡히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수원에 대한 원망도 토로했다. 그는 "한수원 사람들은 아무런 피해도 없을 거라고 선전하지만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피해는 뭐냐"며 "해도 너무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또 원전이 주민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는 "마을 주민들 중 갑상선이 안 좋아 고생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암으로 죽은 사람도 있다"며 "내 생질도 여기서 5년간 살다 외지로 이사갔는데 지금 갑상선 암에 걸려 투병 중에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이 요구하는 이주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씨는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표정을 보였다. 이씨는 "20여년간 영광원전을 가동해서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조그만 마을 주민들 이사시켜주는데 돈이 들면 얼마나 들겠느냐"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은 주민들의 소원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민들의 출어 포기와 관련, 영광군 수협 가마미출장소 관계자 역시 사실로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가마미에 있는 40여척의 어선들은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조업을 포기하고 있다"며 "잡아놓은 물고기가 없기 때문에 지금껏 경매 역시 진행된 적 없다"고 말했다.

마을주민 이효찬(45)씨는 가마미 마을 앞바다인 칠산바다의 옛모습을 그리워했다. 이씨는 "예전의 칠산바다는 우리나라 고급어종의 3대 산란처로서 그야말로 황금바다였다"며 "그러나 이제는 온배수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펄이 썩어 물고기 씨가 말라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가마미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가마미 해수욕장과 영광원자력발전소 1,2호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가마미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가마미 해수욕장과 영광원자력발전소 1,2호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한달에 쌀 9가마 쓰던 민박집, 이제는 예약도 취소

마을과 인접한 가마미 해수욕장이 있다. 넓은 모래사장이 명물이던 가마미 해수욕장의 일부는 원전 부지에 편입되고, 나머지 부분은 모래가 바다로 대거 쓸려나가면서 예전의 규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영재 계마리 이장은 "가마미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로 이뤄진 넓은 백사장이 유명했지만 원전 취수구 방파제가 들어선 후로는 조류 방향이 바뀌어 모래가 모두 바다로 휩쓸려가 사라져버렸다"며 "그나마 콘크리트로 스탠드를 만들어 바닷물을 막아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해송만은 유실을 면했다"고 말했다.

이효찬(45)씨는 "가마미 해수욕장은 예전에는 여름 한 철에 40∼50만명의 피서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는데, 이들이 1인당 1만원씩을 써도 40∼50억원의 돈을 벌어들인 곳이지만, 지금은 그저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씨는 "인기가 쇠락해 한때 폐쇄위기까지 갔던 해수욕장을 저렴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등 주민들이 몸부림쳐 재기의 발판을 다져놓고 나니 이제는 방사능 누출사고가 터져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상황이 이럴진대 주민피해에 대해 나몰라라하는 한수원이 야속하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마을 주민들은 원전 가동 이후 발길을 끊은 피서객 대신 겨울바다 풍경과 연말 해넘이 행사를 볼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 민박집을 중심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영광원전 5호기의 방사능 누출사고가 뒤늦게 알려지자 2003년 해넘이를 보고자 민박을 예약했던 손님들은 무더기로 예약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가마미 해수욕장에서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민박집을 운영하고있는 김모(61)씨는 "원전 사고 이후 연말 해넘이를 보려고 예약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예약을 취소하거나 오지 않아 타격이 컸다"며 "다른 민박집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기막혀 하고있다"고 전했다.

김씨 역시 마을에 원전이 들어서기 전을 그리워했다. 김씨는 "예전에 피서철이 되면 손님들 밥해주느라 80kg짜리 쌀 9가마를 한달만에 썼을 정도였다"며 "하지만 원전이 들어선 이후로 장사는 커녕 원전가동 3∼4년 후부터는 석화(굴)도 자취를 감춰 먹고 살 것이 죄다 없어져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는 "20년전 원전이 건설될 때 나라에서는 잘 살게 해준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속았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죽기살기로 반대할 걸 그랬다"며 소리 높였다.

영광원자력발전소 앞에서 집단이주를 요구하며 집회를 갖고 있는 계마리 주민들, "저 상여에는 우리 마을이 들어있어..."라고 말한다
영광원자력발전소 앞에서 집단이주를 요구하며 집회를 갖고 있는 계마리 주민들, "저 상여에는 우리 마을이 들어있어..."라고 말한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이제는 생계보다 생존의 문제"

마을 주민들이 한수원측에 이주대책을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6년에도 가마미 마을 주민들은 영광원전본부에 집단 이주대책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주대책 이유 역시 지금과 유사한 방사능 관련 사고였다.

1996년 9월 영광원전 2호기에서 기체 방사능이 방출돼 제주도 농협과 쌀판매 계약을 맺었던 영광군 염산농협이 계약을 해지당하는 등 주민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영광군은 원전에서 700여m 떨어진 계마리 주민들의 이주대책 요구 건의를 받아들여 96년 10월 영광원자력본부장에게 공문(문서번호 : 민방13760-1623)을 보냈다.

영광원전측은 같은해 12월 영광군수에게 보낸 회신(문서번호 : 영보(기방)749.08-1850)에서 주민 이주대책 건의에 대해 "관련부서에서 검토 중이므로 추후 별도 협의코자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그후 이주대책에 대한 영광원전측의 반응은 없었다.

이영재 이장은 "예전엔 생계문제로 고민했지만 방사능 누출사고가 일어난 이후 주민들은 생존 자체를 생각하게 됐다"며 "누군들 정든 고향을 뜨고 싶겠냐마는 이제는 몸은 피곤하더라도 마음만은 편하게 살자는 게 대다수 주민들의 의사"라며 주민이주 당위성을 주장했다.

이 이장은 주민들의 생존문제 고민이 원전과 한수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방사능 누출 사실을 직접 전해주지도 않고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한수원을 믿을 수 없으며, 절대로 일어나선 안될 방사능 누출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 영광원전 역시 이제는 믿을 수 없다"고 소리높였다.

영광원전측 "갑상선암과 원전은 무관"

이 이장은 "왜 순수계통이 역류해 방사능에 오염됐는지 아직도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며 "주민들은 일명 한국형 원자로라고 한수원이 선전하는 영광원전 5·6호기가 '근본적인 설계결함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국 영광원전 온배수피해대책위 팀장은 "아무리 주민들이 노력해도 생계가 막막할뿐더러 이제는 원전에 대한 공포감마저 생겨나 이주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주민들의 요구가 관철되는 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

한편, 주민들의 이주대책 요구에 대해 영광원전측은 "여러가지 안을 만들어 검토한 후 주민들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영광원전 관계자는 "주민 이주에는 시간적, 법적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이 걸려있는 만큼 여러가지 안을 주민들과 협의해 원만한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광원전 측의 이같은 원론적인 주장이 '이주 외엔 다른 타협은 없다'며 강경한 대립각을 세우는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민들의 갑상선 암 발병과 관련해서 이 관계자는 "갑상선 암을 유발하는 특정 방사능이 있는데, 영광원전에서는 배출되지 않는 것"이라며 "원전이 갑상선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면 여기 직원들은 왜 암에 걸리지 않느냐"며 갑상선 암과 원전과의 연계성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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