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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올랜도 아팝카 지역의 한 호접난 농장에서 만개한 호접난을 이진화 한미원예협회 회장이 조심스럽게 살펴 보고 있다.
플로리다 올랜도 아팝카 지역의 한 호접난 농장에서 만개한 호접난을 이진화 한미원예협회 회장이 조심스럽게 살펴 보고 있다. ⓒ 김명곤
미국에서 플로리다는 명소가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플로리다의 중앙통인 올랜도 지역은 최고의 명소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명소들은 4개의 메머드 테마 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월트 디즈니 월드, 유니버설, 시월드 등으로 거의 매년 전세계 관광객 동원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올랜도 지역에 숨겨진 명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올랜도 북쪽에 위치한 아팝카의 화초 농장지대이다. 이곳이 명소일 수밖에 없는 것은 미 전국의 화초 공급량의 63%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지역 2000여개의 화초농장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수입이 플로리다 주 수입원 1위인 오렌지 농사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3위는 수박, 오이, 참외, 당근, 토마토, 옥수수 등 일반 과일과 야채류, 4위가 관광이다.

그런데 이 화초농장에서 안온한 삶을 꾸려가는 우리 동포들이 있다. 적게는 5에이커(6000여평)부터 많게는 100에이커(12만여평)의 땅에 화초를 가꾸며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가정이 무려 50가정이나 된다.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땅을 합산하면 총 446에이커로, 이는 여의도 면적의 약 5분의 1에 해당한다. 이 지역 원예협회 이진화 회장은 "아마도 반경 10마일 이내에 사업체와 주거지를 갖고 50가정이 모여 사는 동네는 미국에서 이 곳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1987년에 작게 시작해 하나씩 둘씩 늘려가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100에이커에 화초 농사를 짓는 엄대권씨의 로빈슨 그로서리는 풀타임 일꾼만 30명이 넘는 한인 최대농이다.

스트레스 덜 받는 일반 화초농사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있는 분홍색 호접난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있는 분홍색 호접난 ⓒ 김명곤
맨처음 이곳에 화초 농장을 가꾼 사람은 임성기씨로, 30여년전에 정착해 화초 농사를 짓다 5년전에 이곳을 떠났다. 은퇴의사인 권경민(65) 박사는 현재 이곳에서 고참에 속한다. 권 박사는 1969년에 이곳에 와서 플로리다 병원 마취과 의사로 일하다 먼저 소일거리로 화초 농사를 시작한 간호사 아내의 권유로 1976년부터 농사꾼이 되었다.

그는 "의사 수입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스트레스는 훨씬 적다"고 말한다. 그의 아들 권오상(35)씨도 부근에서 화초농사를 짓는다. 캘리포니아에서 보험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이 곳에 농장을 차린지 3년 정도 되었는데, "수입도 훨씬 좋고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2년전에 문을 연 신참 구영복씨는 "시작해 보니 이것(화초농사)이야 말로 내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스트레스 적어서 아주 좋다"고 누차 강조했다. 권오상씨는 "스트레스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다른 직업에 비해 적은 편"이라고 고쳐 말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곳에서 흔한 화초인 골드 포터스 류의 농사는 분명 스트레스 없는 농사에 속했다. 자라는 족족 팔려 나가고, 물량이 딸려서 못팔 지경이니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 한국에서 파견나와 호접난 농사를 짓는 측은 얘기가 달랐다. 한국에서 5명이 투자했고, 울산시로부터 1억4000여만원을 지원 받아 3년째 호접난 농사를 짓는 울산 난수출 영농조합원 황병구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말한다.

황씨는 우선 언어장벽으로 다른 동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미국 현지의 유통 과정과 판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가 힘드는 등 애로가 많다고 고백했다. 그는 "캄캄한 밤을 헤매다 이제 겨우 빛을 조금씩 보는 기분"이라고 최근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황씨는 2001년 3월 3일 이곳에 도착했는데, 첫해는 건축하고, 둘째해는 재배하고, 3년째 들어서 팔기 시작했는데, 30만주를 재배해 지난해에 10만주를 팔았다고 한다. 주변에서 신제품을 시작해 그 정도 했으면 대단한 성과라며 격려했고, 황씩 스스로도 대견한 일 이라고 인정하기는 했으나, 황씨의 눈빛과 표정에서 여전히 스트레스가 묻어 나왔다.

이날 황씨는 자신의 호접난 농장에서 대략 7종류의 소담스럽고 우아한 한국산 호접난을 보여 주면서 미국산보다 꽃송이도 크고 훨씬 질이 좋아 일단 한번 가져간 구매자는 반드시 다시 찾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량 구매자보다는 퍼블릭스, 윈딕시, 홈디포 등 대량 구매자를 붙잡아야 하는 것인데, 현재의 물량으로는 납품교섭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적어도 100만주 이상을 생산할 수 있어야 말을 붙여 볼 수 있다고.

황씨의 다른 애로점은 2년전에 비해 호접난 가격이 많이 떨어진 것이다. 대만과 덴마크 등지의 호접난이 들어 오면서 2년전에 10불을 호가하던 것이 지금은 8, 9불로 떨어진 것. 그래서 황씨는 생산 원가를 줄이기 위해 한국에서 값도 싸고 물류 비용도 적게 드는 2~3개월 된 병아리 호접난을 가져다 키울 요량이다.

울산농소 난수출 영농조합이 지원한  황병구씨의 난 농장 하우스. 1년에 100만주는 생산할 수 있어야 대형 마켓 납품 교섭을 할 수 있는데, 황씨는 현재 30만주를 생산하고 있다.
울산농소 난수출 영농조합이 지원한 황병구씨의 난 농장 하우스. 1년에 100만주는 생산할 수 있어야 대형 마켓 납품 교섭을 할 수 있는데, 황씨는 현재 30만주를 생산하고 있다. ⓒ 김명곤
다행인 것은 최근 주 아틀란타 김성엽 총영사가 한국정부 차원에서 호접난 농사를 지원토록 하겠다고 발벗고 나선 것이다. 김 총영사는 과거 리비아 대사 시절 현대 대우등 한국업체가 리비아 수로공사 관련 프로잭트 따내는데 저돌적 기질을 발휘해 수주가 확정될 있도록 한 일화를 갖고 있다.

지난 13일 총영사 일행은 아팝카 지역의 호접난 농장과 일반 회초 농장을 둘러 보고 시내 모 식당에서 구체적인 지원 협조 대책을 논의했는데, 이 자리에 동석한 아틀란타 창고식품의 신영교 회장이 큰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미국 동남부 지역에서 한국식품업계의 대부로 알려져 있는 신영교 회장은 이날 창고식품 내에 호접난 판매 코너를 따로 만들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신 회장은 우선 자신의 매장에서 호접난이 어떻게 팔리는지를 보고 승산이 보인다고 생각되면 동남부 일대의 미국 대형 매점의 판로를 뚫어보겠다고 했다. 식품업 32년 사업 경력의 대부가 던진 이 약속은 황씨가 감격해서 표현한대로 앞이 안보이는 터널에 한줄기 빛 이었다.

한국인은 '화초농사짱'?

미주 한국식품업계의 '타이쿤' 신영교 창고식품 사장이 자신의 매장에 호접난 코너를 만들어 판로를 개척해 보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앞으로 손을 내밀어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는 분은 주 아틀란타 김성엽 총영사.
미주 한국식품업계의 '타이쿤' 신영교 창고식품 사장이 자신의 매장에 호접난 코너를 만들어 판로를 개척해 보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앞으로 손을 내밀어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는 분은 주 아틀란타 김성엽 총영사. ⓒ 김명곤
호접난 뿐 아니라 이 곳의 우리 동포들이 기르는 일반 화초들은 미국인이 생산하는 화초보다 훨씬 질이 뛰어나다. 어느 동포 농장을 방문해 봐도 작물들이 건강해 보이고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17년째 너서리를 운영하고 있는 간호사 출신의 조민선(68)씨는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 해요. 미국인들은 일꾼을 시켜서 농사를 짓지만, 한국사람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웬만한 것은 자신이 직접하거든요".

원예협회 이진화 회장은 "미국 사람은 화학비료, 약품을 많이 써서 속성재배하거나 3모작 해서 수익은 많이 올릴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안그래요. 1모작 해서 정성껏 가꾸니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농사를 짓는 이아무개씨는 이를 달리 표현했다. "한국인들은 화학 비료나 약품쓰는 것이 현지인보다 익숙치 못해 정성으로 키울 수밖에 없으니 질은 좋지요. 문제는 주요 절기의 납기에 맞춰 화초를 내놓아야 하는데, 속성으로 키워낼 재주가 없으면 납기를 맞출 수 없지요".

그래선지 최근에는 기르기 쉽고, 빨리 자라고, 병없고 빨리 팔리는 스패스(Spath)를 키우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농삿일을 제법 좋아하는 기자는 '흑심'을 품고 5에이커땅에 얼마나 들여야 화초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조씨에게 물었다. 기자의 질문에 조씨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옛날에는 10만불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렵게 계속 이어진 조씨의 설명을 요약하면, 화초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집, 땅, 물건(화초), 하우스 등이 있어야 하는데, 5에이커 정도의 땅에 이 네 가지를 모두 갖추려면 최소 20만불에서 30만불이 들어 간다는 것이다.

까만 쉐드 하우스와 씨앗으로 화초농사를 시작하면 가장 저렴하게 들지만 식물이 어느 정도 자랄 수 있는 기간인 6개월이나 1년은 버틸 여유돈도 준비해야 한다고. 물론 여기서 까만 쉐드 하우스가 아닌 그린 하우스에 자동 물주기나 온도조절 설비 등 자동시설을 갖추려면 20~30만불은 더 든다고 한다.

조씨는 자기 자본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한 가지 위로가 되는 말을 해 주었다. "이 곳 농장주 중에는 한국의 리어커꾼처럼 처음에는 차떼기로 떼어다 팔며 돈을 모았다가, 조금씩 조금씩 땅을 사서는 몇 년만에 수십에이커를 사들여 당당한 농장주가 된 사람도 있어요. 다 자기 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끈기있게 땅파고 일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이 곳에서 성공할 수 있지요. 이제껏 이곳에서 화초농사 짓다 망해 나간 한국인은 하나도 없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코리아 위클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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