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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18일자 사설.
ⓒ 조선일보 PDF

'폐가', '흉가', '자폭선언', '침몰하는 선박의 선장'…. 자극적인 어휘들로 가득한 오늘(18일)자 한 신문의 사설 제목은 「한나라당은 허물어져야 한다」이다. 이 기사는 열린우리당보나 민주당보에 실린 기사가 아니다. <한겨레>에 실린 기사도 아니다. 당황스럽게도 <조선일보> 사설이다.

이미 지난 12일 조선일보는 5면 기사 「'위기 불감증' 한나라 끝모를 추락」과 사설 「한나라당에 더 절망한다」에서 한나라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이 기사를 두고 <오마이뉴스>는 11일 "'한나라 봐주기'에 대한 조선일보의 인내심이 마침내 폭발했다"며 "향후 조선일보의 보도태도가 주목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 뿐 아니다. 언론계 관계자 대부분이 '조-한 동맹(조선일보 한나라당 동맹)'의 붕괴를 점치며 향후 조선일보 보도 태도 변화를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 조선일보가 오늘(18일)자 사설에서 '한나라당 붕괴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사설은 "최병렬의 관훈클럽대담에서 한나라당의 미래를 위한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했다"는 전제하에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한나라당은 역시 이 시대와 맞지 않는 정당, 시대의 버림을 받은 정당, 시대를 외면하고 있는 정당임을 재확인시킨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것은 곧, 한나라당은 국민과 맞지 않고, 국민의 버림을 받았고, 국민을 외면하는 정당이란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최 대표의 연설과 답변에서 침몰하는 선박의 선장으로서의 절박함과 비장함을 읽을 수 없었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분석과 처방, 모든 것이 과녁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말이다."

마침내 조선일보가 '조-한 동맹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조-한 동맹' 커넥션의 중심에 있었다고 판단되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침몰하는 선박의 선장'에 비유하며 '버린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속내는 그리 단순한 것 같지 않다. 이어지는 사설의 다음 구절은 조선일보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많은 국민들이 보기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폐가(廢家), 거들떠보기도 싫은 흉가(凶家)처럼 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재생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할 바엔 차라리 완전히 허물겠다는 자폭 선언이라도 내놔야 했다. 그래야 누군가가 그 폐허 위에 재건의 주춧돌이라도 놓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조선일보 인터넷판을 보면 이 사설 밑에 한나라당 소장파의 움직임이 실려 있다. 아마도 조선일보는 독자들에게 한나라당에도 젊고 참신한 인재들이 있고, 그 인재들이 중심이 되어 '재건의 주춧돌'을 놓으면 '무엇인가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지 모르겠다.

계란세례 받은 조선일보 지난 2002년 시청앞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가한 군중들이 광화문 네거리로 이동하면서 도중에 <조선일보>를 향해 왜곡보도를 중단하라고 외치고는 항의의 표시로 수 백개의 계란을 조선 선전광고판에 던졌다.
ⓒ 조아세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어지는 한나라당 비판기사를 읽은 대다수 독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배신'과 '카멜레온'이다. 그동안 조선일보가 '조-한 동맹' 커넥션을 만들고 그 커넥션을 등에 업고 중요 사회 의제에 대해 자신들의 의도대로 의제를 이끌어가기 위해 벌인 파렴치한 행위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한나라당과의 '핑퐁식' 주고받기를 통한 의제의 왜곡은 조선일보가 단골로 써먹던 왜곡수법이 아니었던가. 그 과정에서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이 잘못한다고 애정어린 질책을 하는가하면 어떤 경우에는 먼저 나서 훈수를 두기까지 했다.

대선불법자금문제가 터져 나오고 한나라당의 '차떼기공작'이 드러난 뒤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변화를 주목한 독자라면 조선일보의 '곡학아세', '조변석개', '아전인수'에 서글픔을 느낄 정도이다.

초기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차떼기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수단으로 '대통령 주변의 권력형 비리사건'을 침소봉대해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는 이른바 '물타기 수법'을 썼다. 물타기 수법으로도 차떼기 이미지가 희석되지 않자, '이회창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어제(17일) 관훈클럽대담에서 최병렬 대표가 들고 나온 '이회창 책임론'의 원조는 조선일보다. 그러므로 최병렬이 틀린 것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잘못 짚은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무소속 후보가 아니었다.

한나라당 후보였다. 한나라당 후보의 대선자금문제는 후보 개인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 당 전체가 책임져야할 문제임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물타기수법이 무위로 돌아가고 '이회창 책임론'으로도 한나라당의 추락한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이번에 조선일보는 자사 편집국장 출신의 최병렬 대표를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제 조선일보 입장에서 한나라당에 '써먹을 카드'라고는 '소장파'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일보는 한나라당내 소장파들을 '젊은 기회주의 집단'으로 몰아붙이며 민주당 조순형 대표에게 '추파'를 던질지 모르겠다. 그것으로도 안되면 조선일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부패한 수구세력' 한나라당이 몰락해 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수구세력은 한나라당에만 모여 있었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부패한 수구정당 한나라당과 부패한 재벌, 권력화한 수구신문 특히 조선일보간 커넥션에 의해 수구부패구조가 확대재생산되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함께 침몰해야할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을 짓밟으며, 심지어 '조-한 동맹' 커넥션의 중심축이었던 자사 편집국장 출신 한나라당 대표를 버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다워야 한다. 조선일보의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지도자가 정치일선을 떠나는 순간마다 조선일보는 늘 주장하지 않았던가. 몰락할 때 몰락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수구'의 모습이 아닌가.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 부패재벌- 조선일보 커넥션'의 몰락을 '한나라당의 몰락'으로 규정하고 축소보도하는 왜곡을 범하지 말라. 국민은 한나라당만 버린 것이 아니다. '조-한 동맹'을 거부한 것이다. '조선일보 -한나라당 -부패재벌 커넥션' 모두를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주간조선>이 일제시대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만행을 담은 사진을 전재한다고 한다. 만주사변 이후 친일의 대가로 구축한 물적 토대를 기초로 원 없이 친일행위를 확대 재생산했던 조선일보가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한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을 구분할 분별력이 있다. 최소한의 '분별력'까지 잃어버린 조선일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독립지사들과 민주화를 위해 산화한 영령의 이름으로 감히 조선일보에 당부한다. 조선일보 스스로부터 허물어져라. 완전히 허물어져라.

덧붙이는 글 | 다음은 18일 민언련이 발표한 논평 전문이다.  

조선일보부터 허물어져야 한다 

조선일보가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의 관훈클럽 토론회 발언을 두고 또다시 한나라당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조선일보는 18일 사설 <한나라당은 완전히 허물어져야 한다>에서 최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의 책임론을 거론한 것에 대해 "그것(불법대선자금 모금)은 원인일 뿐, 한나라당이 와해돼버린 직접적 이유는 아니다"라면서 "문제는 차떼기 이후 한나라당이 원내 제1당다운, 생명 있는 정당다운 참회와 재생의 몸부림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은 "재생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할 바엔 차라리 완전히 허물겠다는 자폭선언이라도 내놔야 했다"며 "그래야 누군가가 그 폐허 위에 재건의 주춧돌이라도 놓을 수 있을 것 아닌가"라고 '한나라당 책임론'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조선일보의 한나라당 비판은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한 본질적 사실왜곡이라고 본다. 지금 불거지고 있는 수백억의 불법 대선자금 문제는 단순히 한나라당 만의 책임이 아니다. 이 불법 대선자금은 그간 나라를 좌지우지해왔던 수구세력의 '부패상'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빙산의 일각'이기 때문이다. 

지난 십수년간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수구 정치세력은 재계로부터 천문학적 액수의 '검은 돈'을 받아 정치활동을 해왔고, 그 대가로 재계의 뒤를 봐주는 철저한 공생관계였다.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나, 이른바 '안풍' 자금의 출처 논란 역시 '정치권-재계'로 이어지는 수구세력들의 오랜 부패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또한 우리는 이 같은 정치권과 재계의 부패한 '수구 커넥션'에 과연 조선일보의 책임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조선일보는 '조-한 동맹'에 입각해 한나라당의 '아니면 말고식 폭로정치'를 확대재생산하는데 앞장서왔다. 그리고 지금 한나라당의 핵심인물로 일컬어지고 있는 최병렬 대표, 서청원 전 대표를 비롯해 수 많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들이 그동안 한나라당에 들어가 조-한 동맹의 주축을 이루었고, 이번 총선에도 여러명의 조선일보 출신들이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고 한다. 

게다가 언론인들은 정치권이 모은 불법정치자금을 함께 공유해 왔다. 이미 '윤태식 로비사건' '굿모닝 시티 분양비리' '성남 파크뷰 분양비리' 등 대형 비리사건마다 언론인들의 연루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또 박지원 전 장관 공판에서 언론인들에게 거액의 '촌지'를 지급했다는 진술이 있었으며, 97년 대선 당시 '국세청 대선자금 불법 모금사건' 수사과정에서도 이석희 전 국세청장과 한나라당 관계자들로부터 돈을 받은 언론인들이 2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검의 수사발표에 따르면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으로 이적한 '철새 정치인'들이 당 이적료로 2억원씩을 받았다고 한다. 과연 조선일보 종사자들은 한나라당으로부터 이 같은 '돈'을 받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가. 

조선일보의 지금과 같은 행태는 '책임전가'와 '배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수구세력 전체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민들을 절망케 하는 수백억, 수천억 '차떼기'는 결코 근절될 수 없다. 수구세력들의 이념 전도사, 이념적 방패막이 구실에 앞장서 온 조선일보의 책임은 더 막중하다.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성역'부터 스스로 허물어라. 그것이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진리라는 것을 정녕 조선일보는 모른단 말인가. 아니면 이를 애써 외면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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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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