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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 가도에 본격 나선 부시 부시 미 대통령이 15일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서 열린 데이토나 500 NASCAR 경주에서 전(前) 챔피언 리처드 페티로 부터 모자를 기증받고있다.
재선 가도에 본격 나선 부시 부시 미 대통령이 15일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비치서 열린 데이토나 500 NASCAR 경주에서 전(前) 챔피언 리처드 페티로 부터 모자를 기증받고있다. ⓒ AP/연합뉴스

최근 연이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예비선거 선두주자인 존 케리에 최소 3%에서 7%까지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설상가상 월남전 당시의 병역 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 15일(미국시간) 오후 1시 반 미국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에서 열린 '펩시500' 자동차 경주장에 나타나 2시간 동안 경주를 관람했다.

펩시500 대회는 1947년에 창설된 전미자동차경주협회(NASCAR) 주최 자동차 경주 가운데 상금(총상금 1597만달러)이 가장 많이 걸려 있고, 관중수도 평균 20만명으로 최다를 이루어 온 가장 규모가 큰 대회이다.

미국인들에게 이 대회는 '위대한 미국인의 경주' (Great American Race)로 불린다. 미국 대선 경주자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4년 재선운동기간 이곳에서 열린 '펩시400' 경주를 관람했고,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도 1992년도에 '펩시500 대회'를, 부시 자신도 2000년 7월 선거운동기간 중 '펩시400' 대회를 관람한 바 있다.

이 날 부시 대통령이 온다는 뉴스를 접하고 생전 처음 자동차 경주장을 찾은 기자는 다인종 국가라는 이곳에서 충격적일 만큼 독특한 경험을 해야 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모두가 백인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흑인 한두 명을 발견할 수 있었고, 동양인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20여만명이 모인 경주장 관중의 99.9%가 백인이라니! 기자는 '군중 속의 고독'을 절감해야 했다. 아마도 이날 기자 외에 경기장에 온 다른 동양인은 이번 경주에 참가한 도요타 자동차를 취재하기 위해 달려 온 일본 기자 정도가 아닌가 싶다.

1990년대 이후 미국 사회를 특징 짓는 단어 중 하나로 '사커 맘, 나스카 대디(Soccer Mom, NASCAR Daddy)'라는 은어가 있다. 이 은어는 간단히 풀이해 먹고 살 걱정을 갓 벗어난 미국 중산층 백인 가정의 엄마는 자녀들을 데리고 축구장에 드나들고, 아빠는 자동차 경주장에 드나든다는 말이다.

미국의 '나스카 대디'는 직장에서는 열정적으로 일하고 애국심 강한 육체 노동 백인 남성으로 상징되고 있으며 전국에 4500만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고졸 정도의 학력에 미국산 맥주를 마시며, 차 뒤에 자기가 좋아하는 경주용 차량이나 선수의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이들은 자동차 경주에서처럼 정치를 통해서 감동과 용기를 얻고 싶어하는 그룹이다. 이들의 표심의 특징은 공화당 지지자 수가 다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부동층이 많다는 것이다.

경주장 주변은 삼엄하다 못해 으스스했다. 전날 예비검색을 한 데 이어 이날도 경찰견을 풀어 경기장 주변의 십수 개의 스낵코너와 기념품 가게까지 의심이 갈 만한 곳을 탐지하고 있었다.

지난 2월 15일 오후 1시 30분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 인터내셔널 스피드 웨이에서 열린  펩시500 자동차 경주장 입구에서 장갑차위에 서서 한 군인이 총구를 45도 각도 아래로 겨냥한 채 입장하는 관객들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2월 15일 오후 1시 30분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 인터내셔널 스피드 웨이에서 열린 펩시500 자동차 경주장 입구에서 장갑차위에 서서 한 군인이 총구를 45도 각도 아래로 겨냥한 채 입장하는 관객들을 주시하고 있다. ⓒ 김명곤
부시가 들어가는 경주장 입구 오른편에는 수시간 전부터 중무장한 장갑차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장갑차 위에는 색안경을 낀 얼룩무늬 군인이 여차하면 발사하겠다는 듯 자동소총을 45도 각도 아래로 겨냥한 채 일정한 간격으로 좌우를 돌아보며 입장하는 관객들을 하나 하나 주시하고 있었다. 기분 나쁘고 섬뜩한 광경이었다.

경기 시작 30분전쯤 부시가 경주장 주변에 있는 헬기장에서 내려 방탄 승용차를 타고 경주장 쪽으로 향하자 길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일단의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어떤 백인 남성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공중으로 팔을 내저으며 '유아 더 위너'(당신은 승리자)라고 외치기도 했다.

몇몇은 뚜껑을 딴 맥주캔을 치켜들고 올 대선에서 부시의 승리를 장담하는 듯 '부라보!'를 외쳐 대기도 했다. 경기장 입구 스낵 판매대 부근에서는 공화당원들이 티셔츠와 맥주캔 홀더를 나눠주면서 공화당 유권자 등록을 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50명쯤 되어 보이는 반 부시 그룹의 군중들이 트랙 바깥쪽에서 '조지 W. 부시는 전쟁을 위해 존재 존재한다'는 뜻인 "더블류 이즈 포 워(W is for War)"라는 피켓을 들고 야유를 퍼부어 댔다(미국 언론은 조지 부시를 영문 대문자 약자인 'W'로 표시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부시는 거짓말을 했다(Bush Lied)", "미친 카우보이 질병을 중단시켜라 (Stop Mad Cowboy Diease!)"라는 과격한 사인도 등장했다. 한 남자는 맥주 깡통을 던지기도 했고, 지나가던 운전자들이 클랙슨을 울려대며 이들의 행동을 지지한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날 자동차 경주는 9·11 대참사 이후 백만번도 넘게 불렀을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부른 다음, 출발선에 대기하고 있던 43명의 경주자들을 향해 부시가 마이크로폰으로 "신사여러분, 엔진에 시동을 거십시오!"라고 외치면서 시작됐다.

2.5마일 타원형 경주장을 200바퀴 돌아야 하는 이날 경주에서 경주자들이 80바퀴쯤 돌고 있을 때 사고가 발생했다. 2003년과 2001년 대회에서 챔피언에 오른 마이클 왈트립의 차가 다른 차와 충돌을 일으키며 트랙 안쪽으로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떼굴떼굴 구르다 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뒤집어졌다.

구조차량이 내달렸고 놀란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구조광경을 지켜봤다. 4~5분쯤 지나자 마이클 왈트립이 종이조각처럼 구겨진 차량에서 기어 나와 건재한 모습으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경주는 7, 8개의 차량이 선두그룹을 형성한 가운데 토니 스튜어트, 제프 고든, 데일 언 하트 주니어, 그레그 비플, 스캇 위머가 엎치락뒤치락 선두를 뺏고 빼앗기며 109바퀴째까지 이어 졌다.

110바퀴째부터는 스튜어트의 페이스였다. 3시간이 넘게 경주를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이 모두 일어서 소리를 질러 댄 것은 경주차량들이 182바퀴째 돌던 때였다. 토니 스튜어트를 뒤쫓고 있던 데일 언하트 주니어가 선두로 올라섰고, 결국 200바퀴 마지막 결승선에 골인해 150만달러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부시의 이날 자동차 경주장 방문 의도는 분명했다. 이날 대회 관람에서 부시는 자동차 경주장에서 흔히 일어날 법한 '되살아나기'와 '역전 우승'을 자신의 전세 만회를 위한 대내외적인 상징으로 선포하고 싶었던 것이다.

1959년에 처음 열린 펩시500 대회도 부시가 역전 시동을 위한 자기 암시로 삼기에 알맞은 기막힌 일화를 갖고 있다. 4만1천명의 관중이 참석한 가운에 열린 그 대회에서 조니 비치 챔프와 리 페티라는 선수의 차량이 거의 동시에 골인했는데, 조니 비치 챔프가 우승을 주장하며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곧이어 이의가 제기되고 비치 챔프는 '비공식' 우승자로 선언되었으며, 3일 후에 필름을 상세히 검토한 끝에 리 패티가 2피트 앞서 결승라인에 들어왔다는 것이 확인돼 우승자가 리 패티로 바뀌었다.

지난 대선에서 패티와 비슷하게 극적인 승리를 거둔 부시는 아마도 이번 펩시500 대회를 관람하면서 45년 전에 리 패티가 우승한 것을 되뇌며 '꿈이여 다시 한번!'을 마음속으로 빌었을 지도 모르겠다.

새출발을 향한 대내외적인 상징성을 부여하자는 의도 외에, 부시가 이날 펩시500 대회를 관람한 실제적인 의도는 미 전국에서 몰려든 백인 부동층인 '나스카 대디'의 표심을 붙잡아 최근 계속 뒤지고 있는 전세를 역전시키는 기회로 삼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올 대선에서도 최대의 격전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플로리다에서 열린 펩시500 자동차 경주에서 부시가 건 시동이 어떻게 추진력을 발휘해 전세를 역전시킬지 주목된다. 소수이긴 하지만 이날 경주장 주변에서 보여진 '전쟁광', '거짓말쟁이', '미친 카우보이' 등 격렬한 반 부시 구호를 부시 진영이 어떻게 잠재울지 자못 궁금하다.

부시는 자동차 경주가 100바퀴 정도 진행되었을 때 경주장을 떠났는데, 그가 탄 비행기가 경주장 상공을 날자 상당수의 관중들이 일어서서 환호하며 박수를 쳤고, 또다른 일부는 '우!' 하고 야유를 퍼부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코리아 위클리> 2월 19일치에도 함께 실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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