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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노래 못하는 것은 ‘죄악’이다. 실제로 그렇다. 잘났건 못났건, 한국 사회에서는 춤 잘 추고 노래를 잘 해야만 ‘인생 살기가’ 편안한 것이 사실이다. 당장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라. ‘학예회’에서 소풍에서, 거의 모든 학급 구성원에게 노래 부를 의무가 주어진다. 음치들은 음악 실기시험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으며, 친구들이 노래방이라도 가자고 할 때면 도망 다닐 궁리부터 해야 한다.

사회 생활은 또 다른가? 군대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또한 쉼없이 춤추고 노래할 의무가 강제되게 마련이다. 상사 앞에서, 선임병들 앞에서, 그리고 동료와 친구와 그녀(혹은 그)의 앞에서 우리는 노래를 아주 멋들어지게 불러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매장’ 당한다. 그렇다, 음주 가무를 사랑하다 못해 숭앙하기까지 하는 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에서 끔찍한 음치로 나오는 카메론 디아즈는 사랑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끝까지 노래를 부른다. 아마도 영화를 본 이들은 대부분 그 장면을 보며 감동해서 눈물까지 줄줄 흘렸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도 그런가? 오히려 음치들의 꿋꿋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은 비웃음거리가 되기 일쑤고, 그들은 흔히 동물원 원숭이 신세가 되곤 한다.

이것은 영어 구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나, 구기 종목에서의 운동 능력이 부족한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영어 못 하는 것, 부정확한 슈팅 능력, 도랑으로 빠지는 볼링공 따위는 죄가 되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노래 못 하는 것이 죄악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는 버젓이 음치들이 다수 존재할 뿐더러, 어쩌면 나 스스로도 그다지 노래를 잘 하는 편에 속하지 못함에도! 그럼에도 노래 못 하는 이들은 광대나 죄인 취급을 받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TV를 켜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음악캠프'가 되었건, 케이블 채널이 되었건 틀어 보라. 거기에는 영화배우와 CF 모델로서 과시하는 빛나는 재능으로도 부족해서, 음반을 내놓고 ‘가수’로서 활동하는 ‘팔방미인’들이 가득하다.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그들은 스스로 ‘가수’로도 불리기를 갈구한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TV에는 ‘노래 못 하는’ 사람이라곤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TV가 노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쇼 프로그램은 물론이요, 드라마와 영화, 심지어는 ‘가족오락관’과 같은 공간에서조차도 노래가 없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싫든 좋든, 언젠가 한번은 노래를 하게 되어 있다. 아니, 1년을 버티고 버텼대도 ‘설날특집 올스타 청백전’과 같은 프로그램 때문에라도 노래는 하게끔 정해져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TV에 나오는 언니 오빠들 가운데 ‘노래 못 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을 자랑하며, “당장 앨범 내셔도 되겠네요”와 같은 찬사를 받는다.

이것이 한국 ‘가수’들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인지는 논외로 할 것이다. 어쨌든, TV에서 역시 노래 못 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리고 우리의 비루한 일상은 TV를 최대한 반영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니, 노래 못 하는 것이 죄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두 ‘괴물’이 등장해 방송과 사회의 불문율을 깨뜨리고 있다. 바로 ‘종합 방송인’ 서민정과 개그우먼 김미연이다. 이 두 여성은 특별히 소속을 가늠하기 힘든 활동 양태부터 독특하지만, 무엇보다도 지독한 노래 실력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서민정의 경우를 보자. 서민정은 네티즌으로부터 ‘일부러 음치인 척 한다’는 오해를 받을 만큼 심각한 노래 실력을 연일 선보이고 있다. '오빠'나 '성인식'을 비롯해, 은지원의 '미카사로'와 같은 노래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철저히 망가뜨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래 대신에 춤을 잘 추거나 연기력이 탁월해서 인기가 높은 것일까? 그렇지만도 않다. 각종 시트콤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연기란 ‘배시시’ 웃는 것이 전부이며, 댄스 실력 역시도 노래 실력과 큰 등급 차이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단지 다른 음치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원 원숭이’ 신세에 불과한 것일까?

오히려 서민정은 여타의 ‘팔방미인’ 연예인들에게 교훈을 제공하는 존재에 가깝다. 쇼 프로그램에서 서민정의 노래를 듣고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웃어대는 연예인들을 보라. 그들의 자지러질 듯한 폭소 속에는 ‘나는 노래를 잘 한다’는 자신감이 반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러한 ‘쇼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노래실력은 사실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다만 뛰어난 척 할 뿐이다.

서민정의 노래를 한껏 비웃는 일부 가수들이 그녀의 노래를 비웃을 만큼 훌륭한 싱어인가?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황홀한 ‘삑싸리’는 고개를 가로젓게 만든다. 가수랍시고 나서는 그들의 노래 실력은 전혀 가수답지 못한데, 어째서 가수도 아닌 서민정이 ‘노래를 잘’ 부르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요컨대, 서민정의 어이없는 노래 실력은 일종의 ‘따끔한 침’인 셈이다. 개나 소나 하나같이 노래를 잘 한다고 나서는 현실에 대한, ‘팔방미인’이 아니고서는 TV에 얼굴도 비치기 힘든 현상에 대한 일침이다.

노래는, 가수가 '잘 하면' 된다. 탤런트나 영화배우나 모델이 가수처럼 노래를 ‘아주 잘’ 부를 필요는 없다. 더하여, 가수라고 어디서 명함을 내밀 생각이면 노래를 ‘아주 잘’ 불러야 한다. 서민정을 비웃는 근방의 연예인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김미연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무용단 출신의 그녀는 MBC '코미디 하우스'의 오프닝을 매번 장식하며, 보아에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수들의 노래를 100% 라이브로 소화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위악적'이다. 의도적으로 ‘왜곡’한 흔적이 보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2절쯤 가서는 헉헉거리며 그나마 유지하던 ‘불안정한 음정’마저도 흔들거린다.

대신, 춤사위 하나는 화끈하다. 어지간한 댄스 가수는 가까이도 오지 못할 정도의 유연한 웨이브를 선보인다. 다만, 노래 소리가 시렌(siren)의 목소리처럼 괴기스러울 뿐이다. 진땀을 흘리며 라이브하는 그녀의 모습은, 여타의 댄스 가수들에게는 고통스런 ‘반면교사’로 기능한다. 어떻게 그런가.

김미연의 무대에는 항상 ‘100퍼센트 라이브’라는 자막이 붙어 다닌다. 그렇다, 100퍼센트 라이브 무대이다. 춤은 격렬하고 무대 매너도 끝내준다. 다만 노래가 지독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코미디’이다. 코미디? 그런데, 댄스 가수들의 무대와 김미연의 무대가 뭐가 그리 다른가?

그들 역시 열심히 춤을 추고, 화려한 무대 매너를 보여준다. 다만 헐떡이며 노래하는 댄스 가수들은 수시로 음정과 박자를 놓치고, 불쾌한 숨소리를 마이크를 통해 흘려 보내고, 나중에는 '삑싸리'마저 들려준다. 그래도 이 정도는 성의라도 있다. 그다지 어렵지도 않은 노래를 활동 기간 내내 ‘립싱크’로 때우는 이들에 비하면 말이다.

말하자면, 김미연의 무대가 코미디라지만 실제 가수들의 무대 역시 대부분 ‘코미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김미연의 노래가 조금 더 ‘극단적’인 희화화로 무장했을 뿐이다.

사실 서민정과 김미연은 가수가 아니다. 그러므로 노래를 잘 불러야 할 이유가 없다. ‘시키는’ 이들이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을 비웃는, 자칭 ‘가수’ 혹은 ‘가수 뺨치는 연예인’이라는 자들은 어떤가? 스스로 노래를 잘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들의 노래 실력은 김미연이 몸을 뒤흔들며 선보이는 ‘코미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그들이 가수로 활동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코미디이다. 그들에게는 두 음치 여성을 비웃을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민정은 배시시 웃으며 기꺼이 비웃음거리가 되기를 자청하고, 김미연 또한 날로 화려해지는 춤과 반대로 나날이 극악으로 치닫는 노래를 통해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가수’라는 자신의 직업에도 충실하지 못한 연예인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녀들을 비웃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국 사회 자체가 코미디이니 방송 또한 그런 것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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