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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세계사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세상의 모든 직업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직업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하다.

하지만, 더럽고 힘들며 또 무척이나 어려워서 남들이 모두 기피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의 ‘소금’과도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희소성은 곧 절박함을 대변한다. 남들이 걷지 않는 삶에 최선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마냥 신기해 보이는 것은 이런 절박함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시를 무대로 사진집 출판과 작품 전시 활동을 벌여 온 사진가 낸시 리카 쉬프가 낸 <기이한 직업들>에는 콘돔 테스터, 악취 감식가, 공룡 뼈 먼지 청소부, 감자 칩 조사원 등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직업에 종사하는 별난 사람들이 들어있다.

“신시내티의 50년 된 힐탑 실험실에서는 겨드랑이, 숨결, 발, 고양이 배설용 점토, 그리고 기저귀의 악취를 감식하는 일이 매일같이 수행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방취 효과 연구를 위한 실험 계획에 따라 연구 대상자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군요. 베터 라이온스가 이 일을 시작했던 것은 33년 전, 그러니까 그녀 자신이 직접 실험 대상으로 활동하던 때부터였습니다.”


<기이한 직업들>은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과 더불어 그들이 종사하고 있는 직업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곁들어져 있다. 사진의 소재가 될만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신문과 잡지를 이 잡듯이 뒤졌다”는 작가의 노고는 한 장의 흑백 사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존재할 법한 직업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희귀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표정들까지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말년에 자신이 누울 관을 미리 고르는 게 일반화된 서양의 ‘관 제작자’ 같은 직업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소나무 상자에서부터 보석으로 세공을 한 화려한 관에 이르기까지, 그는 소비자의 주문에 따라 맞춤 관을 만들어 줍니다. 지금 당장 평온한 저 세상에서의 삶을 기다리는 입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걱정 없답니다. 90달러면 5년까지는 관을 보관해주기도 하니까요.”

이외에도 NHL(미국프로아이스하키리그)의 최고 챔피언 팀에게만 수여되는 트로피를 전담으로 지키는 필 프리차드, 최고급 클럽에서 남자 화장실 수행원으로 일하는 티나 리틀, 그리고 우리의 ‘때타올’ 대신 ‘참나무잎’을 들고 손님들의 등을 밀어주고 있는 코마스 카토 등 별난 듯 보이지만 그 자리에 꼭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푸근한 인상을 스냅사진 한 장 한 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계속적인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무리 주머니 사정이 얼어붙더라도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일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환경미화원 모집 공고에 수많은 대졸자들이 모여들고, 너도나도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지원하고자 학원 문이 닳도록 드나드는 요즘. 삶이 정해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이한 직업들>이 주는 위안이란 정확히 여기까지다.

기이한 직업들 - 세상에서 가장 별난 직업들

낸시 리카 쉬프 지음, 김정미 옮김, 문학세계사(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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