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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의 누드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일본에 강제로 끌려 간 종군위안부를 소재로 삼아 누드 작품집을 만든다는 소식에 종군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는 강력히 저항했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카페를 만들고, 게시판을 장악하여 이승연과 기획사뿐만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에 관련한 모든 업체에 압력을 넣었다.

성난 민심에 놀라 서비스를 계획했던 이동통신사들은 서비스를 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고, 지분 관계에 있는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그 프로젝트와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리는 알림창을 첫 화면에 띄워야 했다.

이번 일에 대한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비통한 심정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평생 가슴 속 한이 되어 왔던 그 끔찍했던 기억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겠다니 할머니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두고 기사에다 사설까지 동원하여 융단폭격을 퍼 붓는 언론과 게시판마다 넘쳐 나는 성난 네티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언제부터 언론들이 종군위안부 할머니들 문제에 그토록 관심을 보여 왔으며, 우리가 언제부터 할머니의 분노에 귀를 기울여 왔던가? 92년부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할머니들의 시위에 단 한번이라도 동참 해 본 네티즌이 얼마나 되는가?

평소 종군위안부 문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이번 일에 실제 자신이 느끼는 분노 이상의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담겨 있을까?

함부로 다뤄도 괜찮다고 여기는 여자 연예인이 누드라는 감각적인 소재를 건드린 데다, 종군위안부 문제라는 공격하기 좋은 윤리적 흠결까지 갖추고 있으니 언론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사거리는 없을 것이다. 네티즌들 역시 이승연을 공격할수록 자신의 도덕성과 애국심을 드러낼 수 있으니 마다 할 이유가 없다.

신사참배와 독도분쟁 등으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때 마침 걸려든 이승연을 재물로 삼아 일본에 대한 화풀이도 하고, 여지껏 종군위안부 문제에 아무런 도움도 되어 주지 못했다는 일말의 부채감을 이 참에 털어 내기 위함은 혹 아닌가?

이승연을 향한 정신대 할머니들의 분노는 그 크기에 상관없이 무조건 정당하다. 이승연의 주장대로 애초 의도가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할머니들이 반대로 느낀다면 지금 당장 중단하고, 백배 사죄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언론과 네티즌들의 이승연에 대한 공격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속된 말로 “마니 무겄다 아이가.”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왜 우리가 이승연에 대해 분노하는가를 냉철히 분석하는 것이다.

모두가 이번 일에 분노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는 나라를 팔아 축재했다가 국가에 환수 당한 친일파의 재산을 그 후손들이 되찾아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의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일제 부역 신문이 뻔뻔스럽게도 민족정론지를 자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 자연스레 해결 될 것이라 생각하고 무대책으로 일관했던 우리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자. 매주 수요일마다 담을 넘는 할머니들의 울분에 귀를 막고만 있는 일본 정부의 범죄사실을 세계에 널리 알릴 방안을 모색하자. 종군위안부 문제가 이제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데에 국회의원들의 직무유기가 한 몫 한 건 아닌지 따져 보자.

난 오히려 이승연이 고맙다. 우리가 그 동안 애써 외면해 온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재를 새삼 각인 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이승연 죽이기만 하다 끝낸다면 얼마 가지 않아 우리 기억 속에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은 간데 없고, 이승연만 남게 될 것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해결 할 좋은 기회를 그냥 놓쳐 버려서는 안된다.

문제의 핵심은 이승연이 아니다. 반 세기 전 일본에 의해 전쟁터에 성 노예로 끌려간 우리 할머니들이 여지껏 한일 양국 모두로부터 외면 당해 왔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이제 이승연은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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