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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커뮤니티가 제작한 광주광역시 입체지도 중 시내 중심권 세부도
지누커뮤니티가 제작한 광주광역시 입체지도 중 시내 중심권 세부도
"실력과 기술을 검증하지도 않고 단지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선호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광주에서 디자인 벤처회사인 ㈜지누커뮤니티를 경영하는 정용택(33)씨의 말이다. 입체지도 제작을 전략 상품으로 내놓은 정씨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류를 이루는 발주처들의 '편견'이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입체지도란 평면적인 기존 지도에서 탈피, 도로 주변에 실제 건물모양을 그려 넣어 길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쉽게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지도. 지도에 삽입된 건물 그림들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

"입체지도는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지리를 잘 아는 지역업체가 적격"

(주)지누커뮤니티 대표이사 정용택씨
(주)지누커뮤니티 대표이사 정용택씨 ⓒ 오마이뉴스 안현주
입체지도 제작에 있어 숙련된 기술과 납품 실적을 보유한 업체는 서울 2곳과 광주 1곳 등 전국에서 3개 업체 정도라는 게 정씨의 설명.

그러나 정씨는 선발업체의 벽을 실감하고 있다. 정씨는 "입체지도의 잣대가 그동안 시장을 선점해온 선발업체인 서울지역 업체들의 기준으로 돼있어 충분한 노하우가 있는 지역업체의 입지가 협소하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선발업체를 선호하는 발주처의 생각은 "지역업체가 입체지도를 그리면 얼마나 잘 그리겠느냐"는 막연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정씨는 "이미 완도군의 의뢰를 받아 입체지도를 그린 실적이 있고, 광주시 입찰에 성공해 납품한 제품이 우수한 평가를 받은 전력도 있어 이같은 발주처의 우려는 기우"라고 일축했다.

지역 자치단체들이 원하는 입체지도는 그 지역 업체가 가장 충실히 제작할 수 있다는 게 정씨의 확신이다. 정씨는 "지역의 특장점을 파악해 강조할 부분을 정확히 포착하고 지도에 역사적 배경까지 넣을 수 있기 위해서는 해당 지방업체가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또 "해당지역과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제작 효율성 면에서도 경쟁력이 월등하다"고 덧붙였다. 기존의 지도에서 진일보한 입체지도는 문화와 관광이라는 콘텐츠를 녹여내야 제대로 된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

실제 지누커뮤니티가 제작한 입체지도에는 단순한 지역정보뿐만 아니라 역사적 유물에 대한 설명과 지역의 특산품과 이름난 음식 등 다양한 정보가 사진과 함께 게재돼 있다.

정씨가 입체지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 자치단체가 입체지도 제작 의뢰를 하면서부터다. 지난 2002년 완도군은 무인도 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입체지도 제작 가능 여부를 지누커뮤니티에 타진했다.

의뢰를 받는 정씨는 직원들과 함께 지형실사를 수없이 나가는 한편, 문화재와 특색있는 건물 등을 촬영해 그대로 지도에 그려 넣어 한달만에 납품했다. 이후 2003년 광주광역시가 발주한 입체지도 제작 입찰에 성공해 광주시 전도와 상무지구, 충장지구 등 6개 권역의 세부도를 제작해 납품했다.

정씨는 "광주시 입체지도를 만들 당시 우리가 정한 컨셉은 예쁘게, 누구라도 알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다"며 "이를 위해 모든 직원들이 발품을 팔면서 주요 도로와 건물을 실측하고 기록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지누커뮤니티 직원들은 밤을 새워가며 수많은 시안(試案)들을 만든 끝에 4개월만에 광주시 지도를 납품했다.

지누커뮤니티가 납품한 광주시 입체지도는 문광부산하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게 정씨의 설명. 정씨는 "비슷한 시기 선발업체인 서울의 모회사가 광주시 입체지도를 제작했는데 우리 회사 제품이랑 비교해볼 때 모든 면에서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입체지도라는 상품을 들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정씨는 "노하우와 우수제품을 납품한 실적이 있는 지역업체에게 지방이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애써 보유한 기술이 사장됨은 물론 지역과 공생하고픈 향토기업이 설자리는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기술력에 자신 있으니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고물상부터 시작한 사회생활

지누커뮤니티를 경영하기까지 정씨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군대를 제대한 98년, 영상공부를 위해 미국유학을 준비하던 정씨는 아버지의 재산이 적어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미 대사관으로부터 비자발급을 거절당했다.

유학의 꿈을 접은 정씨는 우연히 읽은 일본의 산업에 대한 책에서 자원 재활용에 대한 힌트를 얻어 고물상을 차렸다. 당시를 "새벽부터 나가 쓰레기통을 뒤지던 속칭 밑바닥 생활"이라고 표현한 정씨는 유통을 배우기 위해 고물상을 정리했다. 고물수집을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던 시절의 교훈을 간직하고 있다는 정씨는 3년전부터 모교인 조선대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해오고 있다.

고물상 정리 후 정씨가 택한 다음 직업은 과자 유통. 중소기업에서 만들어낸 과자를 직접 방문 판매했다. 그러나 메이저 제과업체들의 성벽을 이름없는 회사의 과자가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정씨는 "고물상보다 더 힘들어서" 과자 유통에서 손을 뗐다.

"열심히 일했지만 성과가 없어 막막했던 시절"에 정씨는 새롭게 각오를 추스르고 지난 2000년 광고기획에 뛰어들었다. 대학시장을 중심으로 영업을 했던 정씨의 계획은 적중해 기틀을 점차 잡아나갔다. 결국 2001년에는 광주전남지역 16개 대학에 학생수첩을 납품하면서 지역 대학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나 대학시장의 한계점을 느낀 정씨는 2001년 디자인 벤처회사 창립후 이제는 올해 매출목표 15억원, 상근직원 10명을 보유한, 지역 디자인업계에서는 큰 회사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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