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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부터인가 나이를 물으면 잠깐동안 벙벙하니 가늠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이십대 초반에는 그토록 당당하니 자랑스럽던 나이가 삼십대 이후에는 내가 대답하고도 놀라게 된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정말 화살같이 빨리 지나가는구나'하고.

그래서 그런지 한 명의 여성으로서 나이 들어 가며 느끼는 심정에 참으로 공감이 간다. 나는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집어 들면서 고르다가 <나이듦에 대하여>라는 제목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차례에서 특히 좋았던 소제목은 ‘여자의 시간은 잘도 흐르네’, ‘아직도 어머니를 모른다’, ‘여자들은 아픈 데가 많다’, ‘자식을 손님처럼’ 등이었다.

여성학자 박혜란의 ‘여자의 나이와 몸에 관한 새로운 생각’이라는 타이틀도 금방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아이 셋을 과외 한 번 시키지 않고 모두 서울대에 보낸 이야기를 적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했다.

그 분은 오십대 초반까지 열정적인 여성학자로, 베스트셀러 저자로 나이도 잊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다가 몸이 자꾸 말을 걸어왔고 여자에게 특히,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여자의 나이듦과 몸의 변화에 대하여 속 시원하게 때로는 참으로 정감있고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나는 아직 삼십대 후반이다. 하지만 며칠 전에도 허리가 태클을 걸어왔다. 작은 아이가 엉겁결에 매달리는 바람에 삐끗했는데 여지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녀석을 너무 많이 업어준 탓인가 보다. 그러면서 그녀의 이야기들이 더욱 공감이 갔다. ‘여자들은 아픈 데가 많다’는 이야기가…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이, 여자로서 느껴지는 일들이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와 참으로 비슷할 것 같은 예감을 했다. 아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싫어도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나이듦은 늙어감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늙어가면서 왜 그렇게도 늙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할까. 가까워져 오는 죽음이 두려워서일까.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젊음을 찬미하는 데 너무 바빠서 늙음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우도 못할 만큼 인색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수확이 있다면 내 어머니와 시어머니를 한 사람의 여자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60대, 그 고단한 초상’, 그 분들은 ‘정말로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늙은 세대’였던 것이다.

가장 가슴에 남는 대목을 읊어본다.

집이라는 게 이렇게 고요할 수도 있는 거구나. 그 고요가 견디기 힘들어 서성거리는 자신이 우습다. 한창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에게 제발 조용해 줄 수 없냐고 사정사정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너희들 때문에 엄마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엄마가 가엾지 않냐고 푸념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아무도 나를 훼방놓지 못하는 조용한 곳에서 글도 쓰고 사색도 하고 싶다고 간절히 원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가.

그 심정을 절실히 이해한다. 젊은 축에 속하는 나도 지금은 아이들과 하루종일 전쟁을 치르며 키우고 있지만 아마 머지않아 그런 생각을 할 날이 올 것이다. 세월 앞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산다는 것은 곧 늙어간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나이 들고 아프고 ‘자식은 손님’이라는 이야기처럼 각자의 인생으로 떠나보내고 대비한 만큼의 노후 생활을 하고 아마도 그럴 것이다. 속 시원한 표현력과 경륜과 깊이, 여유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나이듦에 대하여 - 여성학자 박혜란 생각모음

박혜란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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