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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책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 동문선
이 책은 유명 커피 광고에서 미남 배우가 들고 나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책이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이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읽고 있는 배우의 모습은 왠지 '느림'이 가진 아름다움을 부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의 저자 피에르 쌍소는 프랑스의 유명한 수필가이다. 그는 물 흐르듯 부드러우면서도 지적 의미를 담고 있는 문체로 소박한 삶의 의미와 자세를 이야기하는 수필을 많이 창작했다. 그의 독특한 수필 스타일은 2001년 한 대학교의 논술 문제의 지문으로 출제될 만큼 뛰어난 감각과 지성을 겸비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이 게으름이나 시대 변화에 둔감한 것으로 치부되어 비하되기 쉬운 현대 사회. 이 사회에서 과연 '느린 것'이 그토록 비난을 받을 만큼 가치 없는 생활 태도일까? 저자는 이와 같은 현대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느린 것 또한 가치 있는 삶의 자세임을 밝힌다.

그가 머리말에서 이야기하는 느린 사람들의 대한 안 좋은 평판은 우리 모두가 느린 사람들에게 갖고 있는 선입견이기도 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흔히 느린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으며, 매사에 동작이 굼뜬데다가 서투르다는 말도 듣는다. 심지어 매우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워낙 행동이 느려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중략)

현대인들은 머리 회전이나 동작이 느린 사람보다는 민첩하고 빠릇빠릇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후자들은 잽싼 손길로 식탁을 정리하면서도, 나지막하게 부탁하는 소리까지 금방 알아 듣고는 재빠른 동작으로 상대방의 요구에 응해 준다. 뿐만 아니다. 속셈에서도 그들을 당할 자가 없다."


저자는 '느림'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고 역설한다. 어느 한 기간을 정해 놓고서 그 안에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서두르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우리 모두는 스스로 '선택'할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느림'의 삶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바쁜 삶을 선택한다. 이처럼 우리로 하여금 바쁜 삶을 선택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를 서두르게 만들고 있는 이 사회'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이 사회에 반(反)하여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고 유지할 필요가 있다.

"느림이라는 태도는 빠른 박자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다만 주변 사회의 억압에 떠밀려 스스로 원하지도 않는 바쁜 삶에 휘둘리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좀더 천천히, 삶의 한가로움을 즐기며 살면 되는 것이다.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로써 저자가 권하는 방식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한가로이 거닐기, 다른 이의 말을 듣기, 권태로움을 즐기기, 꿈꾸기, 기다리기, 지나간 시간과 마음의 고향을 떠올리기, 글쓰기, 포도주의 달콤함에 빠져보기 등이다.

사실 우리의 일상에서 '한가로이 거닐기'나 '권태로움을 즐기기'와 같은 방식은 시간을 허비하는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그 아까운 시간을 한가로이 거닐면서 보내라구? 권태로움을 즐기라니 내가 무슨 백수야?' 라는 불만을 던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가지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우리의 일상에 자신은 만족하며 보내고 있는지 자문해 보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반납한 채, 회사에, 가정에, 돈에, 아파트 소유에 얽매여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일에는 소홀하고 있지 않은지.

저자는 젊은 나이에 디저트도 메인 요리도 없는 바쁜 삶을 살다가, 또 나이가 들어서 '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맛보아야할 요리가 너무 많으며, 방문할 곳도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인생관을 비판한다. 우리 모두는 끊임없는 공복감 속에 멀리 있는 행복만을 좇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이 반대의 삶을 추구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행복을 쉽게 찾아내는 편이라고 말한다. 느림은 우리에게 한 사람, 하나의 풍경, 하나의 사건을 시험해 볼 기회를 제공하며, 시간이 이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림의 철학을 가지고 있으면, 가까이 있는 행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무언가를 허겁지겁 찾아 헤매지 않기 때문에 작은 것에서 얻어지는 만족감 또한 크며, 또 그 행복감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느림의 철학 속에서 자신이 얻은 가치로운 발견들을 전한다. 그것은 작은 야시장의 풍경이기도 하고, 공원 안 풀꽃이기도 하며, 오래된 포도주의 향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권태로운 생활에서 얻어진 사색과 글쓰기 또한 포함되어 있다.

바쁘게 사느라 놓치고 있는 작은 행복들이 얼마나 많은가. 앞만 보고 뛰어가고 있는 바쁜 우리들의 삶 속에 '느림'의 미학을 잠시 놓아두자. 그 느릿느릿한 삶의 선택 속에서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행복의 미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동문선(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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