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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새벽 자정을 넘겨 구속영장집행시한이 끝나자 한화갑 전대표가 1층 로비로 내려와 자신을 지켜준 당원들에게 감사인사를 한 뒤, 총선에서 승리하자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일 새벽 자정을 넘겨 구속영장집행시한이 끝나자 한화갑 전대표가 1층 로비로 내려와 자신을 지켜준 당원들에게 감사인사를 한 뒤, 총선에서 승리하자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때 지지율 선두에 섰던 적도 있던 정당이 정면으로 법 집행을 거부하고 나섰다. 그것도 모자라 당사자는 당사 안에서 농성하며 기자 회견을 열고, 다른 당직자는 광주에서부터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집회 투어에 나섰다. 이것이 현재 민주당의 모습이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민주당 스스로 헌정 사상 초유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벌이는 이 해프닝이 과연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이리라 생각할까라는 점이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이 불발로 끝났다. 수사관 30여 명과 경찰 1개 중대 150여 명이 200여 명의 당직자와 맞섰으니 수는 비슷했다. 그러나 여섯 차례나 체포를 시도했으나 당사로 진입하지도 못한 채 물러났다. 물론 발부된 구속 영장의 집행 시한도 종료됐다. 야당의 당운을 건 무법의 저항이 국가 공권력을 보기 좋게 이겨버렸다. 노동자들 시위 때 야당이 그토록 강조했던 공권력을 이번엔 다른 야당이 가볍게 무시한 것이다.

물론 법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꽤 많은 경험으로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시민 불복종이 역사적 계보를 가지게 되고 이론적 토대가 쌓이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법에 대한 정면 도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민주당이 내세우는 이유는 수사의 편파성이다. 민주당의 행동은 법 불복종이긴 하지만, 진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시민 불복종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형평의 기울기에 대해 민주당 스스로 먼저 반성해 봐야 할 것 같다.

권력을 가졌거나 사회 상층부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법처리를 당하게 되면 누구나 수사의 편파성을 들먹이며 변명한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대법관이었던 프란시스 베이컨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요즘 우리 정치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당시 영국에선 의회와 국왕의 타협으로 재판을 의회가 했다. 하원은 검사, 상원은 판사 역할을 맡았다. 베이컨은 두 명의 당사자로부터 자기가 다루고 있던 사건의 심리를 신속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각 100파운드와 400파운드를 받았다는 혐의로 조사 대상이 됐다.

처음엔 사실 자체를 강력히 부인하다가, 점점 혐의가 드러나자 온 몸이 부어올라 의회에 출석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다가 재판에 회부되자 직무 수행과 관련해 철저하지 못한 점은 있었지만 뇌물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을 바꿨고, 무려 41명의 증인이 증언하자 많은 돈과 선물을 받은 하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게으름은 인정한다고 물러섰다.

결과는 물론 유죄였고, 대법관은 벌금을 내고 감옥으로 갔다. 베이컨도 종당에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표적 수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 변명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왜냐하면, 베이컨의 행위는 당시 공직자들의 관행에 충실히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이 없게도, 마침 그 무렵 당시 사회 일각에선 공직사회 부패 척결의 움직임이 있었던데다, 베이컨의 자만과 위선적 태도가 상원의 비위를 건드렸던 것이다. 어쨌든 뇌물은 뇌물로, 유죄는 유죄로 종결됐다.

검찰 수사관들과 경찰관들이 들어가지 못한 민주당사에 기자들은 초청되었다. 구치소에 가 있어야 할 사람이 기자들 앞에서 회견했다. 자기에 대한 경선자금 수사는 명확한 표적 사정이다. 자신은 떳떳하고 싶었으나 당직자들에 의해 막혀서 못 나갔다. 일이 공정하게 마무리되도록 투쟁하겠다. 이것이 한화갑씨의 주장이고 변명이고 항변이다. 베이컨뿐만 아니라 이미 구속당한 십수 명의 정치인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하소연이다.

수사권의 행사는 공정하고 형평에 맞아야 하는 건 사실이다. 현저하게 형평을 잃은 수사와 기소는 이론상 공소기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완전한 형평의 수사는 사실 불가능하다. 정치인들도 그 사정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막상 자기나 자기 정당이 그 대상이 되면 억지를 써 본다.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형평을 실현시키려면, 그것은 지상의 검찰이나 법원이 아니라 '사자의 서'에 나오는 저승의 신 앞에나 가야할지 모를 일이다.

한나라당이 곁에서 거드는 모습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홍사덕 한나라당 총무의 민주당 두둔은 수사의 확대 요구가 아니라 한화갑 구속 동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이다.

홍사덕 총무는 민주당이 갖고 있는 사태 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사태’란 총선을 앞둔 야당의 위기라는 점에서만 논리적으로 맞다. 그렇다면, 그 ‘사태’는 법 집행 거부로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한 태도로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면서 당의 확실한 체질 개혁으로 마무리하려 해야 옳을 것이다.

아울러 홍 총무는 법원의 영장 발부와 검찰의 구속 집행을 싸잡아 ‘공작 정치’라고 비난했는데, 그야말로 ‘공작 언어’에 불과하다. 솔직히 따져보면, 한화갑씨에 대한 경선자금 수사는 열린우리당이나 노 대통령에게도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지금 검찰의 수사를 놓고 누구에게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닌 것이다. 불리하다면 모두에게 불리할 뿐이다.

다시 민주당에 묻고 싶다. 무망한 항의와 무리한 불복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 노 대통령과 정동영 의장을 물고늘어지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 진의일까. 솔직히, 모두 처벌하지 말자는 게 민주당이 말하는 천칭의 형평이 아닐까. 임기 후 노 대통령에 대한 수사나 정동영씨에 대한 수사 확대는, 한화갑씨가 먼저 구치소로 간 다음에 요구해야 많은 사람들이 그나마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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