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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오전 10시 30분께 하승수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 사무처장이 국가인권위에 부안군청의 공무원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 권박효원

"주민투표의 부당함을 알리는 방법으로 가처분 신청을 해야되겠는데, 국책사업 유치연맹단에서 그 서명을 받다가 그게 부족하고 주민들의 호응이 없으니까 공무원하고 공무원 가족들을 전체 다 사인을 해라,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일부 협박...(중략)...

거기(원전 견학)를 가지 않는다고 중간 간부들을 통해서 질타를 하고, 끝까지 가지 않는 공무원들한테 가지 않는 사연을 전부 제출하도록 하고...(중략) 그러면 나이가 연로한 부모님들을 모시고 있는 공무원들은 정말 입장이 곤혹스러운 거죠.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과연 내가 공무원직을 유지해야 되는 것인지 심하게 고민하고 그랬습니다." (부안군 공무원의 증언 녹취록 중)


부안군 공무원들이 핵폐기장 찬반 주민투표를 반대하기 위한 청원서 서명 및 홍보활동에 동원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 관린위원회'(이하 관리위원회)는 "부안 공무원들은 군청의 지시에 따라 업무도 제쳐가며 투표 반대활동에 나섰으며, 이로 인해 심한 자괴감을 겪고 있다"면서 이들이 양심 및 표현의 자유, 행복추구권 등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승수 관리위원회 사무처장은 2일 오전 10시30분 국가인권위에 이와 같은 내용을 정리해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 사무처장은 국가인권위에 증거자료로 청원서와 부안군청의 유인물 등을 제시했으며, 이중 녹취록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관리위원회는 이 진정서에서 "부안군청은 공무원들의 양심의 자유·행동의 자유·표현의 자유·행복추구권·청원권을 반복적으로 침해해 왔다, 이러한 침해 내용은 직무상 명령으로 볼 수 없고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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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투표 반대 홍보활동 강요에 업무 마비상태

관리위원회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부안 공무원 3명의 증언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이에 따르면 부안군청은 지난 1월 13일과 14일, 공무원들에게 청원서 양식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일부 과장들은 직원들을 한사람씩 불러 서명을 강요했고, 가족들에게도 서명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서명하지 않은 공무원들의 명단을 간부회의 때 공개하겠다는 압력도 서슴지 않았다. 일용직 노동자나 공공근로자, 공익근무요원도 서명을 요구받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에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대덕연구단지 내에 한국원자력환경연구소,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견학을 일률적으로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부안군청은 공무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도 견학을 가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못 갈 경우에는 사유서까지 쓰게 했다는 것이다.

부안군청은 또한 1월 28일부터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전체 공무원의 절반 수준인 약 400여명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홍보활동에 동원되고 있어 군청 및 각 읍면 사무소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한 공무원은 증언을 통해 "2월부터 전북도청 소속 공무원들도 이 작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더 심각한 것은 공무원들이 나누어주는 문건의 내용. 공무원들은 작성 명의가 없는 '일방적인 주민투표를 거부해야 하는 열 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나누어주고 있는데, 여기에는 핵폐기장 반대 주민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하승수 사무처장은 "'일방적 반대논리에 세뇌된 주민'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한 유인물을 나누어주라고 하는 것은 공무원들을 주민과의 충돌로 내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 큰 충돌은 없었지만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고, 일부 공무원들은 차마 유인물을 나누어주지 못하고 동네 어귀에서 맴돈다는 것이다.

하 사무처장은 "이러다가 충돌이 생기면, 핵폐기장 찬성단체나 부안군청에서 폭력적이라고 주민투표 중지를 요구하지 않겠냐"며 "군청에서 충돌을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둔치 공원에서 핵폐기장 유치를 찬성하는 `2대 국책사업 부안유치를 위한 범국민 촉구대회`가 열렸다. 부안군청은 이날 집회를 위해 공무원들을 시켜 주민들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내가 왜 공무원 되어 주민 상처에 소금 뿌리나" 자괴감 시달려

부안 공무원들은 "강하게 의사표시를 했다가 부당인사를 당한 동료가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부당한 지시임에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왜 이 시기에 공직자가 돼 주민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해야만 되는지 심한 자괴감에 시달린다"고 자신들의 심정을 호소했다.

이들은 "아직 주민투표 당일 지침은 내려오지 않았지만, 당일 새벽에 군청이 공무원을 비상소집해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투표구에서 공무원 본인이나 가족의 투표를 감시할 것"이라며 불안한 전망을 전했다.

공무원들이 주민투표 참여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지난해 촛불시위의 경험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군청이 감시계장을 통해 공무원 가족의 촛불시위 참여여부를 감시한 뒤 해당 공무원을 질타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지난 1월 28일 군청이 주민투표저지 결의대회를 열고 공무원들을 소집해 '2월 14일 주민투표 거부' 등의 내용이 담긴 결의문을 채택하게 했다.

관리위원회가 바쁜 일정 속에 상경해 급하게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도 2월 14일 투표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다. 인권위원회 긴급구제조치를 받아 투표 전까지 계속될 부안군청의 인권침해 행위를 막겠다는 뜻이다.

하 사무처장은 "이러한 사례는 형사상으로도 업무방해나 직권 남용으로 소송할 수는 있지만, 주민투표까지 시간도 없고 형사 소송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인권위원회 측은 "긴급구제조치 여부는 상임위원회에서 결정한다"며 "실제적인 효력은 없지만 대부분 조치가 내려지면 침해 당사자가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고 전했다. 인권위원회는 보통 중요 사건이거나 피해자가 다수인 사건에 대해 긴급구제조치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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