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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31일. 오늘은 갑신년 새해가 시작한 지 딱 한 달이 되는 날입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는데, 날짜는 전광석화 같이 지나 벌써 2월입니다.

저는 2003년 12월 마지막날, 2003년 다이어리의 마지막장을 접으며 새해 2004년 다이어리에 그간 지나간 한해를 반성하고, 빼곡히 새해 목표를 적고 결심했었습니다.

그 중 첫째는 담배를 끊자! 이미 7년째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습관적으로 담배를 입에 올리는 저의 담배 흡연량은 한때 평균 하루 2갑반을 넘었던 적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이유없이 목에 통증도 오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전과 같이 않아 새해에는 일절 담배를 손에 대지 않기로 했습니다.

두번째는 아침 운동입니다. 개인적으로 살이 많이 빠진 상태라서 운동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운동을 안 해서, 쉽게 무기력해지고, 밥맛도 없어 끼니를 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새해부터 동네 한 바퀴 돌기, 줄넘기 등을 하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하면, 몸매도 좋아질 것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는 촉매제가 되서 효과는 일석이조입니다.

세번째는 영어 공부입니다. 아무리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저의 영어 실력은 그야말로 콩글리쉬 수준도 안 됩니다. 툭하면, 단어의 철자를 틀리게 적는 것은 다반사이고, 새로 생긴 호프집 이름 하나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민망합니다. 주변에 중국어를 전공으로 하는 친구는 토익 점수가 저보다 훨씬 높습니다. 학점도 저랑 그만그만했던 친구인데, 기초 상식도 튼튼히 하고, 녀석에게 실력 발휘를 할 겸 마음 먹었습니다.

네번째는 가계부를 쓰는 것입니다. 2003년에는 아끼지 말고, 내 생활에 투자하자라고 마음먹고 시원시원썼는데, 쓰다보니 쓸데없는 유흥비와 기타 잡비에 돈을 허비했습니다. 이제 좀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경제생활이 필요할 것 같아 가계부를 하나 써서 매일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항상 웃고 즐겁게 살자입니다. 2003년 저는 빡빡한 생활에 웃음을 잃고 인상을 찌푸리고 살았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쉽게 화내지 않고 특유의 큰 웃음을 살려서 긍정적으로 밝게 생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만해도 담배 두 갑을 거의 다 폈습니다. 점심에 저와 흡연량이 비슷한 친구를 만나서 간단하게 밥 한 끼 먹고, 친선 당구 게임을 치고 나니, 금세 두 갑이 몇 개비 안 남기고, 홀쭉해졌습니다. 온몸엔 맡기 싫은 담배 냄새가 진동을 하고, 저녁때가 되자 목도 슬슬 잠기기 시작합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아침 7시에 일어나 우유 한잔을 먹고 산뜻하게 약 1주일간 동네 한바퀴를 돌고, 줄넘기도 하루에 100번씩 꼬박꼬박 해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직장 모임 술자리 후에 다음날 늦잠을 자고, 그 후부터 이젠 아침에 사 먹었던 우유도 먼 추억속의 이야기가 되버렸습니다.

영어 공부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새해 결심을 하자마자 유명한 저자의 토익책 2권과 테이프를 샀습니다. 또한 필기를 위해 새 볼펜과 노트 5권을 샀습니다. 하루에 5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을 매일 공부하기로 했었는데, 작심삼일이라고 3일만에 제가 산 영어책은 오래 된 고서처럼 책꽂이에서 옴짝달싹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간신히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은 가계부를 작성하는 일입니다.항상 책상에 빨간색 가계부를 올려 놓고 그날 수입, 지출을 매번 적어놓습니다. 그리고 지출한 내역에 대해 꼼꼼히 되새겨 봅니다. 불행 중 천만다행입니다.

우연히 들여다 본 다이어리를 보고 이제야 생각하지만, 전 새해 결심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특별하게 바쁜 일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번의 일이 아닙니다. 전 솔직히 그간 새해가 되면, 의무적으로 수십 번 새해 결심을 하고 또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해 내는 적이 없습니다. 성격이 강하고 고집스럽고, 의지박약도 아닌데, 마음 먹었던 결심이 그 다음 새해 결심으로 미뤄져 벌써 3년전 새해 목표인 영어공부는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목표한 바 이것저것 결심하고, 초반에 얼추 실행에 옮겨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점점 무뎌져 결국 지금까지 살아 온 방식 그대로 삶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매번 후회를 밥 먹듯이 하지만 게으르고 나태한 생활에 찌들어 또 그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부지런하지 못해 닥쳐 오는 현실은 냉혹합니다. 하루 담배 2갑으로 목이 아프고,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구입한 토익책과 테이프 가격은 쓸데없이 허비했습니다. 운동도 하지 않아, 한때 아침에 일찍 일어났던 좋은 습관도 놓쳐버리고, 툭하면 몸이 무겁고 불쾌합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도 거르게 되서, 살이 찌질 않습니다. 결국 2003년의 낡은 모습이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저에게 새해 결심은 왜 이렇게 실행하기 어려운 건지 홀로 푸념해 보지만, 잘못은 다 저에게 있습니다. 좀 더 철저하고 긴장해서 작은 일이라도 소홀히 않고 부지런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방법이 있기에 다시 결심해 봅니다.

오늘 산 담배 2갑 3000원을 가계부 지출 목록에 적습니다. 이번달엔 작년 12월보다 담배 구입으로 인한 지출이 많았졌습니다. 이번달 음주를 줄여서 술자리로 인한 비용이 모임의 회비외에는 큰 지출이 없습니다. 월급이 전년보다 조금 올라 그 돈으로 비상금 통장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타지역 모임으로 인해 차비가 생각외로 많이 나갔습니다. 다음부턴 회장을 졸라서라도, 가까운 곳으로 모임을 잡자고 졸라봐야 겠습니다.

새해 다시 새로운 달이 저를 기다립니다. 이번에 결심이 올해 마지막 결심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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