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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간지에 실린 '노인복지사' 광고
한 일간지에 실린 '노인복지사' 광고
최근 노령화 사회에 대한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광고가 있다. 바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간지에 연일 실리고 있는 '노인복지사' 자격증 광고다.

한 업체가 게재한 광고를 한번 살펴 보자. 전체 지면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기사 형태의 이 광고는 "전문직 시대 제 1회 노인복지사 자격증이 뜬다"는 제목에 "학력, 연령, 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응시 가능! 노인전문병원, 노인복지관, 실버타운으로 취업 가능! 노동부에서 분류한 21세기 복지분야 유망직종 선정!" 등의 선전 문구를 달고 있다.

이 광고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듦에 따라 노인복지사라는 신종 직업이 각광을 받고 있으며 "학력, 연령, 경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응시가 가능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면 "사회복지기관, 대학, 종합병원, 각종 노인복지재단, 기타 실버산업 관련 단체 등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선전하고 있다.

얼핏 보면 쉽게 딸 수 있고 안정된 취업이 보장되는,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자격증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노인복지사, 실버 시대의 총아인가?

1월 16일 교육인적자원부와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노인복지사' 광고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에서 노인복지사 자격증은 "개별 민간 단체가 실시하는 '민간' 자격에 불과할 뿐, 교육인적자원부가 인증하는 자격이 아니며", "보건복지부가 사회복지사업법 등 개별법령에 의거해 국가자격시험을 거쳐 부여하는 '사회복지사'와 같은 국가자격도 아니"라고 밝혔다.

그리고 "해당 업체는 자격증을 취득하면 '사회복지기관, 국가지정병원 등에 취업 가능'하다고 하고 있으나, 이 '노인복지사' 자격증이 정부가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 요양병원 등에 취업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노인요양보장과 배완복씨는 "노인복지사 자격증을 보건복지부에서 부여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는 데다가 문의 전화가 계속 걸려와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문의 전화는 노인복지사 자격증이 국가 공인 자격증인지를 묻는 내용이다. 신문 광고에는 '민간 자격증'임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자격증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 역시 '노인 복지사' 자격증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교육정책과 고계석씨는 "민간 자격증은 정부가 아닌 각 협회나 직종에서 자격증을 관리하는 제도로 정부가 그 자격증을 공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민간 자격증 제도를 실시하고는 있지만 그 자격증의 효력과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롱' 자격증에 자격증 장사까지

보건복지부의 공고문
보건복지부의 공고문 ⓒ 보건복지부
현재 노인복지사 자격증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곳은 한국통신교육원, 미래정보교육원, 노인복지사교육원 등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창에 '노인복지사'로 검색을 해보면 ○○직업교육원, ○○직업정보원, 자격증몰 등등의 이름이 붙어 있는 곳에서는 대부분 '노인복지사' 자격증 업무를 취급하고 있다.

노인복지사는 국가에서 인증하는 자격증이 아니라 민간에서 실시하는 '민간 자격증'일 뿐이다. 때문에 자격을 취득했다고 해서 국가에서 고용을 책임질 의무는 없다. 또한 현재 노인복지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증은 '사회복지사' 자격증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 업체들은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제1회 시험' '밝은 전망' 등의 표현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격증을 과대 홍보하고 있다. 또한, 노인복지사 자격증을 취급하는 업체 대부분은 전문적인 교육 기관이 아니라 자격증 취득을 빙자한 '교재 판매' 업체가 대부분이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일간지 등에 실린 광고는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취업이 가능하다'는 등의 표현으로 과대 광고에 저촉되는 부분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대부분의 피해는 전화를 걸었을 때 연결되는 통신판매업체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통신판매업체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과대 광고를 한다는 것이다.

자격증이 아닌 교재 판매에 불과

실제로 직접 모 업체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 쪽에서 다시 연락을 하겠다며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라고 했다. 잠시 후 앳된 목소리의 여성 텔레마케터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 텔레마케터는 "이 자격증은 교육부에서 까다롭게 인증된 것"이라며 "현재 전문인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전망이 아주 밝다"고 자격증을 홍보했다.

국가 공인 자격증이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 "민간 자격증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인증기관인 '(사)한국민간자격협회'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인정해 준 사단법인으로 국가에서 보증하는 만큼 이 자격증은 까다롭게 인증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노인복지사 자격증 취득에 드는 비용은 총 58만원. 이는 교재비와 수료증 발급, 취업 추천비를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텔레마케터는 이번 시험이 1회인 데다가 7월 25일로 시험일자가 잡혀 있다며 빨리 공부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150시간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이번 1회에 한해 '특별히' 교육 없이도 자격증을 딸 수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지기 전에 수월하게 취득하라고 말한다.

설명인즉, 교재를 받아 스스로 공부를 하고 학습 평가서를 작성해 60점만 넘으면 자격증 시험을 볼 수 있는 수료증을 발급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학습 평가서는 교재를 보고 작성해도 된다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난 다음에는 업체에서 노인 전문 병원과 실버타운 등에 취업을 알선해 준다고 설명을 한다. 취업이 100%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묻자 "어떤 자격증도 취업을 100%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며 "이 분야는 전문인이 없고 우리 사회가 노령화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아주 유망하다"며 얼버무린다.

그리고 자기에게 신청을 하면 "5만8천원씩 10개월 할부가 가능하고 수수료 차원에서 비용을 최대한 '빼드릴' 수 있다"며 은근히 구매를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구입하게 되는 교재나 교육은 부실하기 이를 데 없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대부분 교재들이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조악하고 부실하며 심지어 정답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노인복지사 등 민간 자격증 관리 허술

사회 복지 분야 종사자들은 실제로 노인 복지 현장에서 노인복지사 자격증이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시립노인요양원 정은숙(사회복지사) 사무국장은 "노인 복지에서는 자격증보다는 현장 경험이 중요시 된다. 노인복지사는 실습 교육이 없고 이론만으로 자격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이전에도 민간 자격증인 케어 복지사가 한창 각광을 받았는데 막상 그런 사람들은 업무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현장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간호 조무사와 같은 현장 실무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인복지사 자격증 문제에 대한 법적인 제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업체들이 대부분 **교육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건 사업체 상호일 뿐 정식으로 허가받은 교육 기관이 아니"며 "상호도 자주 바꾸고 전화번호나 주소 이동이 잦아 단속이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이를 처벌할 법적인 조항이 미비하다는 점 또한 문제다. 99년 실시 이후 2만여 건에 이르는 민간 자격증이 넘쳐나고 있지만 일부 업체의 과대 광고나 횡포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고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전무한 상태다.

민간 자격증 관련 거래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교재 판매 업체의 환불 거부'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피해 사례 중 '환불 거부'가 가장 빈번하며 대부분의 업체가 환불을 거부하거나 위약금 명목으로 50%만 환불해 주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자격증 광고를 할 때 '민간 자격증'이라는 것과 '환불 가능'을 꼭 명시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미 법무부와 '3년 이하의 징역,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벌칙 조항에 대한 협의를 마친 상태"라며 "각종 민간 자격증 피해 사례와 세부 조항들을 취합해 세부적인 제재 조항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자격증 취득은 소비자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비율이 높다"며 "교재 구입을 결정하기 전에 자격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제를 인지했을 때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업체에 항의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노인복지사는 없다!

앞으로도 노령화와 노령 인구의 증가, 사회 환경의 변화로 인해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와 함께 노인복지 관련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늘어나면서, 노인생활관리원, 노인시터, 노인생활도우미, 노인케어복지사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이름을 단 민간자격증들도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과 취업 욕구에 편승해, 교재를 판매하고 그 뒤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 치고 빠지는 식의 상술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반드시 공인된 기관에 철저한 확인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나라에 아직 '노인복지사'라는 직업은 없으며, '노인복지사'라는 국가에서 공인된 자격증도 없다. 노인 복지를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와 다른 전문인들이 있을 뿐이다. "신 전문직 노인복지사가 뜬다!"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본다면, 달콤한 광고 문구와 앞날에 대한 호언장담이 너무도 허술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참고로, 보건복지부에서는 치매·중풍 등 간병이나 요양보호가 필요한 노인에 대한 각종 서비스를 담당할 국가자격(국가인증)의 '노인간병 전문인력 양성·제도화 방안'을 올 상반기 중에 마련해 공식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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