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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년전 1월 1일.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 날이다.
3년전 1월 1일.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온 날이다. ⓒ 느릿느릿 박철
설날이 지났다. 오늘 아침 두 동생네 식구들이 다 가고 나니 집안 전체가 썰렁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내가 아내와 아이들에게‘가족회의’가 있다고 불러 앉혔다. 갑자기 무슨 가족회의를 하자는 것일까 의아해 한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설 명절 다 잘 지냈지? 실컷 먹고 실컷 놀고… 이제는 우리 생각 좀 하자. 너무 생각없이 사는 것 같지 않니? 그래서 올해 우리집 식구 각자가 어떻게 살 것인지, 일년 계획도 좋고 새해 소망도 좋고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떻겠니?”

처음에는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다가 아내가 거들고 나섰다.

“은빈 아빠, 갑자기 새해 계획을 얘기해 보라니까 입에서만 맴돌고 잘 안 나오니까 각자 글로 써보는 게 어떨까요? 다 써서 느릿느릿 홈페이지에 올려놓으면 되잖아요.”
“좋은 생각인데….”
“너희들은 생각은 어떻니?”
“좋아요.”(모두)
“그런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상투적인 얘기만 쓰지 말고 깊이 생각하고 솔직하게 쓰자.”


내 말이 떨어지자 모두 흩어져서 제각기 새해 계획이나 소망을 쓰기로 했다. 아래 글은 우리집 막내딸부터 나까지 각자가 쓴 것으로 고치지 않고 소개하는 것이다.

우리집 늦둥이 은빈이. 오마이뉴스 덕분에 많은 팬이 생겼다.
우리집 늦둥이 은빈이. 오마이뉴스 덕분에 많은 팬이 생겼다. ⓒ 느릿느릿 박철

엄마 일을 도와드리고 싶다

엄마는 새해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셨지만 난 새해가 뭔지 잘 모른다. 올해는 벌써 시작되었고 새해는 앞으로 너무 멀기 때문이다(은빈이는 새해는 이제 2005년이라고 한다). 올해 나는 9살이 되었다. 이제 곧 2학년이 된다. 엄마는 9살이 되었고 2학년 때는 어떻게 하겠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1학년 때와 똑같이 지내고 싶다. 내가 9살이 되면 설거지를 한다고 했는데 벌써 설거지를 하고 있느니까 그대로 하겠다.

그리고 올해는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고 싶다. 엄마가 우리 식구들을 위해서 밥도 하시고 빨래도 하시고 청소도 하시고 많이 고생하시는데 나는 엄마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어서 너무 미안하다. 오빠와도 사이좋게 지내고, 엄마 아빠에게 존댓말을 쓰다가 가끔 반말을 썼는데 이제는 존댓말만 써야겠다. 왜냐하면 2학년이 되었으니 뭐든지 한 칸씩 올라가야 되기 때문이다. (박은빈)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공부하겠다

이제 나도 중2가 된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전처럼 공책을 아무데나 써서 점수를 깎이거나 혼나지 말아야겠다. 지금까지는 수업시간에 떠들고 딴 짓을 하면서 수업을 제대로 안 듣고 수업이 지겹다고 생각했다. 또 엄마가 공부하라고만 하면 잔소리처럼 듣고 짜증이나 내고 성적표를 받으면 혼날까봐 일부러 안 보여드렸다. 이제부터 정말 2학년이 되면 제대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둘째 아들 넝쿨이. 특기는 설거지이다. 남하고 절대 비교하지 않는다.
둘째 아들 넝쿨이. 특기는 설거지이다. 남하고 절대 비교하지 않는다. ⓒ 느릿느릿 박철
내가 학교에서 선배한테 억울하게 맞았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맞았다고 해서 너희들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이번에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친구들하고 말싸움하는 것도 고쳐야겠다. 형이 필리핀에 가면 내가 교회 반주를 하게 된다.

앞으로 한달 밖에 안 남았는데 엄마가 피아노 연습하라는 소리만 하면 괜히 짜증부터 내고, 피아노 치러 가서 잠이나 자고 책 읽으면서 대충대충 시간 때우고, 또 설날이라고 피아노는 안 치고 하루 종일 게임만 했는데, 이제부터 정말 제대로 연습해서 형이 가고 나서 충분히 반주 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겠다.

내가 중1 반장이었는데 반장 출마할 때 뽑히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갔는데 뽑혔다. 그런데 반장되서 ‘어리버리 반장’이라는 소리나 듣고 엉뚱한 소리나 하고, 애들하고 괜히 시비 걸어서 싸우는 일도 잦았다.

그런데 반장 노릇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는데 2학년이 되니까 너무 아쉽다. 그래도 이번에 반장을 해서 내성적이던 성격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얼마 전에 설희가 현수를 때렸다고 신고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정말 우리 반이 싸움이 없고 왕따도 없는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 달 후에 형이 필리핀에 가면 정말 적응 잘 했으면 좋겠다.(박넝쿨)

자랑스런 첫째 아딧줄. 어느새 내 키만큼 훌쩍 자랐다.
자랑스런 첫째 아딧줄. 어느새 내 키만큼 훌쩍 자랐다. ⓒ 느릿느릿 박철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필리핀으로 떠난다

나는 친구들과는 다른 진로를 선택했다.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기로 한 것이다. 처음 필리핀 이야기가 아빠를 통해서 나왔을 때는 호기심 반 기대 반이었다. 그런데 막상 필리핀으로 떠난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가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 후부터는 불안감보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새해 첫날인 설날 잠자리에서 나의 중학교 때 생활을 돌아보느라 잠을 설쳤다. 중학교 처음 입학했을 때 모든 것이 새로웠다. 과목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처음 입는 교복, 처음 보는 친구들 때문에 낯설기도 하였지만 앞으로의 생활에 많은 기대를 가졌다. 처음 보는 시험은 무척 떨렸다. 지금은 시험보기 전 공부하는 요령도 생기고 많이 접하다 보니 떨리지도 않고 담담하다. 1학년 입학 초처럼 모든 것에 흥미를 갖고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불과 3년 전 기대되었던 중학교 생활이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생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시간은 정말 빠른 것 같다. 중학교에 들어와서 상도 많이 받고 대회도 많이 나갔는데 이렇게까지 내가 성장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잘해준 건 없고,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 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3년간의 중학교 생활은 매일 매일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나는 필리핀에서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해나가고 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야만 한다. 중학교 1학년 입학 했을 때와 같은 마음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설렜던 중학교 생활이 행복했던 것처럼 다시 한번 설레게 하는 필리핀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다.(박아딧줄)

사랑하는 아내 김주숙. 깡패같은 남편만나 고생이 많다.
사랑하는 아내 김주숙. 깡패같은 남편만나 고생이 많다. ⓒ 느릿느릿 박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다

내 나이 이제 마흔 아홉이다. 다들 내 나이 서른엔, 마흔엔 하면서 고개 넘어 가는 걸 두려워하고 기대한다. 사람들이 묻는다. 마흔 아홉 되니까 느낌이 어떠냐고. 글쎄? 그동안 나이를 생각지 않고 살다 보니까 벌써 이 나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이를 잊을 정도로 치열하게 산 것이 아니라, 어영부영 살다보니 마흔 아홉이다. 늦게 결혼해서 늦게 아이를 낳고 늦둥이까지 낳아 기르다보니 나이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할까!

매서운 추위와 함께 설이 지났다. 이 매서운 설은 한살 더 먹는 것이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는 듯하다. 이젠 나이만큼 철이든 삶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자리, 엄마로, 아내로 딸, 며느리, 사모 등의 자리에서 많은 말들을 했다. 그럴듯하게. 그러나 그렇게 말을 했으면서도 나 자신이 그 말에 일치하는 삶은 아니었기에 많이 부끄러웠다.

미루기도 잘하고 게으르고, 결단력이 필요할 때 용기가 없어 주저앉기도 했고,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합리화시키기 위해 잔머리 굴리고 남편이나 애들이 그렇게 해주기 바라면서도 나는 하지 않고….

올해는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얘들에게 야단을 치듯이 나 자신에게도 야단을 쳐가며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애쓰며 살고 싶다. 하느님께도 이웃에게도.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을 부러워만 않고 나의 삶에 옮겨가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내년, 쉰을 맞이할 때 좀 더 성숙해진 모습이 되게 말이다.(김주숙)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도록 하겠다

10년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10년전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 느릿느릿 박철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어머니는 그런 성격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고 하신다. 나의 사고의 패턴은 ‘예’와 ‘아니오’ 둘 중에 하나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신중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올해는 모난 성질을 누그려 뜨려 둥글게 하겠다. 가족들 간에 대화를 많이 하겠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권위를 내세우고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지시하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의 말을 열심히 듣겠다. 부드러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너무 엄한 편이었다.

그리고 작년에 계획을 세웠다가 지키지 못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올해도 계속되어야 한다. 하루 동안 1시간 기도, 1시간 묵상 및 성경일기, 1시간 독서, 1시간 달리기, 1시간 노동, 1시간 글쓰기…. 어떤 것은 초과했고 어떤 것은 미흡했다.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배도록 하겠다. 나의 내면을 갈고 닦는 일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겠다.

올 2월 중순, 아딧줄이 필리핀으로 가게 되었다. 미지의 세계로 아들을 보내면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딧줄이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해 나가리라 믿는다. 어사지간 50줄에 들어섰다. 지천명(知天命)이라 했으니 하늘의 뜻을 따라 순응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할 것이다.(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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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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