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 자신이 교사로 밥 먹은 지 16년째다. 실업계에 8년 6개월을 근무하다 인문고로 본의 아니게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인문고에 5년째 근무하던 중 전격적으로 내신을 내고 실업고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루 온종일 5지 선다형 객관식 문제풀이집과 씨름을 해야 하는 수능 대비 수업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 3학년 수업을 맡으면서부터는 0시부터 저녁 보충 수업 때까지 하나의 답을 찾는 객관식 문제집을 섭렵해야 한다. 그런 일상은 교사가 할 짓이 아니었다. 세상에 하나의 답을 찾는 것이 진정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런 학교의 몰골이 과연 옳은 것일까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인문고 수업은 학원 수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는 객관식 점수로 평가하는 내신 성적이나 수능 시험 탓이다. 그러기에 이런 입시 파행을 없애려면 대입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지금 세계인들은 다가올 시대를 대비하기에 바쁘다. 인공위성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교육을 해도 늦을 판에 객관식 수업을 해야 옳은 것인가 말이다. 초·중학교 시절부터 대학과 연계된 교육으로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교육을 해도 시원찮은데 객관식 문제풀이 수업이 온당한가 말이다.

사교육이 왜 생기는가? 학교 수업이 부실해서 생길까? 거기에 대해서는 일부분 동의한다. 대학을 가기 위한 관문인 수능시험을 잘 치자면 객관식 문제풀이 정답을 빠꼼이들처럼 잘 찍어야 하는 객관식 수업이 잔존하는 한 학원 강사들이 효율성에 있어 앞설 수 있다.

그렇다고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들처럼 객관식 문제풀이를 잘 해야 올바른 교육이고 선(善)인가? 그렇지 않으면 부실 교사이며 퇴출되어야 하는가?

▲ 중앙일보 17일자 사설 '규제 강화 한다고 과외 없어지나'

<중앙일보>는 17일자 사설 '규제 강화한다고 과외 없어지나'에서 교육부의 10시 이후의 심야 학원 수업과 과외방 단속에 대해 "과외가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공교육 부실에 있다"며 "학력 저하의 주범으로 낙인 찍힌 평준화제도를 경쟁체제로 바꾸고 자격이 없는 교사를 퇴출하든가 재교육해야 한다"라고 언구럭을 부렸다.

그러나 <중앙일보> 사설의 주장은 마녀 사냥식 주장이라 동의하기 어렵다. 학교 교사가 사설학원이나 과외방보다 족집게 수업을 못하니 실력 없어 이들을 퇴출하라는 식의 주장인 것 같아서다. 교사더러 퇴출하라고 주장하려면, 선행 전제로 '이러 이러한 교사는 퇴출하라'며 왜 퇴출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옳다. 그렇지 않고 불특정 교사인 전체 교사를 향해 뜬금 없이 "학력 저하의 주범으로 낙인 찍힌 평준화제도를 경쟁체제로 바꾸고"하며 무책임하게 나가라니. 이게 무슨 사설인가?

아이들 교육을 하는데 어떠한 것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교사를 퇴출시키라는 것도 아니고 학력 저하의 주범을 평준화 탓으로 돌리고는 뜬금 없이 "자격이 없는 교사를 퇴출하라"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중앙일보>의 교사 자질 운운은 평준화 해체 주장에 기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나온 주장으로 보인다. 평준화가 학생 실력을 하향 평준화한다는 주장을 해 온 터라 자립형 사립고나 특목고를 자유로이 설립하도록 하라는 평소의 주장을 관철하고 싶은 것이다. 평준화 해체가 실력를 저하시킨다는 근거가 없으니 교사자질론을 들먹이는 물귀신 작전을 쓰며 학력저하론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학력저하론이 거짓이라는 증거를 찾아보자. 인터넷으로 'PISA'를 검색해 보자.

▲ <조선일보>의 PISA에서 최상위 성적이라는 기사.

위의 기사에 따르면 세계 OECD국들을 상대로 2년에 한번씩 국제학력평가를 한다. 거기서 우리 나라 학생들은 수학 과학 성적에서 매번 1-5위권 안에 드는 최우수성적을 내고 있다. 단지 창의력이 뒤진다는 평가가 나올 뿐이다. 이것은 객관식 시험으로 다루어지는 대학입시제도에 근본 문제가 있는 것이지 평준화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평준화로 학생들 성적이 떨어진다는 수구 언론들의 주장은 잘못된 사실 왜곡에 가깝고 전체 교사들의 능력이나 자질이 떨어진다는 <중앙일보>의 주장도 근거를 내놓지 않아 실체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 파행의 원인을 교사 부실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 제도에서 찾아야 옳다. 사설학원에서의 선행학습(교과서 진도를 미리 나가는 것)이 학교 수업을 파행으로 몰고 있고 교사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하여 교육부의 단속이 강화돼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입시 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없는 한 백약이 무효인 것도 사실이다.

입시제도의 개혁 없는 사교육 잡기는 그 효용성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수구 언론들이 주장하는 평준화 해체로 해결될 것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살천스러운 평준화 해체 주장은 우리 교육문제의 올바른 대안이 아닌, 주류 기득권층들만을 위한 귀족 교육을 부르짖는 것에 불과하다.

불특정 교사를 퇴출시키라는 사설을 버젓이 내놓은 <중앙일보>는 전체교사들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한 해명과 이 사설을 쓴 논설위원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앙일간지 기고가이며 교육비평가입니다. 교육과 사회부문에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