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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동마을 정자.
ⓒ 김도수
"잘 계싯소. 여그 '곡성'이오. 다음주 월요일 날 혹시 시간 나요?"
"예, 그 동안 잘 계셨어요. 월요일 날은 제가 회사 나강게 없는디요. 왜요?"
"아니, 설 쇠러 나 월요일 날 부산 아들네 집으로 간디 혹시 시간 나먼, 거 뭐시냐 대학교 앞에 있는 고속 터미날로 잠깐 나오라고 헐라고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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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가 내 사위였으면 좋겄소"

순간 지난번 연동 마을에 갔을 때 '연동 어머니'께서 스쳐 지나가듯 흘린 말이 떠올랐다. 연동 어머니께서 아내에게 이번 설에 가래떡 하냐고 물어 보신 것이다. 아내는 큰 형님 집에서 조금 준다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설날에 떡국을 끓여 먹으라고 가래떡을 주시려고 터미널에서 나를 잠깐 보자고 전화하신 것이 분명했다.

늙으신 어머니가 땀 흘려 지은 농사, 젊은 사람이 어찌 가만히 앉아서 받아 먹을 수 있겠는가. 연세 드신 어머니가 무거운 가래떡을 이고 버스 정류장으로 나와 군내 버스를 타고 다시 순천으로 나오는 버스로 갈아 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일요일은 저 시간 있어요. 월요일 날 부산으로 가시면 우리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세요."
"아이고, 미안히서 안 돼요. 그냥 갈 것인디 무단시 전화를 힜는갑소."
"아니에요. 우리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세요."
"그리도 될랑가 모르겄소. 참말로 고마운 양반이고만."

일요일 오후 아내와 나는 소주 두 병과 정종 한 병을 들고 연동마을을 찾아갔다. '연동 어머니'는 고향 마을에서 차례를 지내지 않고 부산 사는 아들네 집으로 가서 지내니 소주 한 병 드리고 "내 사위도 좀 해달라"는 앞집 겸면 어머니께는 차례 지낼 때 쓸 정종 한 병과 소주 한 병을 들고 갔다.

"자꾸 뭣을 사가꼬 댕기먼 잘 안 옹게 그냥 빈 손으로 오시야허요" 하던 생각이 나서 앞으로는 그냥 빈 손으로 가기로 마음 먹고 약소하게 술 세 병을 사 간 것이다. 앞집 겸면 어머니 집에 들러 문을 두드리니 안방에서 아버지 홀로 TV를 보고 계셨다.

"아이고, 어서 들어오게. 뭐더게 요런 걸 사가꼬 왔는가. 집사람은 시방 석곡에 떡허러 갔고만. 올 때가 됐는디 아직도 안 오고만…. 자네 줄라고 뒷집에 뭐 하나 갖다 놨는디 자네도 설 잘 쇠고 또 오소잉."
"뭐를 갖다 놓으셨어요. 저는 그냥 빈 손으로 왔는디…."

겸면 어머니를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나 떡을 하러 간 겸면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연동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좀 늦은 시간이었는데 연동 어머니는 함께 저녁밥 해 먹고 순천으로 나오려고 쌀을 물에 담가 놓고 계셨다.

"많이 늦었지요. 얼마나 또 골목에 나와 기다리실까 전화는 미리 드렸지만 그래도 지루하셨죠?"
"아니어라우. 참말로 고마워서 어쩐다요."

▲ 연동 어머니 집을 홀로 지킬 강아지
ⓒ 김도수
아내는 순천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밥을 해먹자며 담가 놓은 쌀을 부엌에서 가지고 나오고 있었다. 연동 어머니는 마루에 놓여진 상자를 가리키며 "요것 앞집 견면떡(견면댁)이 집이 주라고 갖다 놓고 갔응게 갈 때 잊어불지 말고 꼭 가지고 갔쇼잉"라고 말씀하신다. "조구(조기) 상자라며 갖다 놓았는디…." 선물 받기가 좀 그렇다며 내가 머뭇거리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어따 그 집은 잘 상게 그냥 받아 놓읏쇼. 그 집 사위가 선물로 사왔다는디 견면떡이 집이를 많이 생각해서 갖다 주고 갑디다."
"문 잠그고 가시죠. 근디 저 개는 어떡허고 갈라요?"
"개 밥 사료를 밥그럭에 많이 담아 놓고 옆에 물 떠놓고 가면 지가 알아서 묵소. 글고 앞집 아줌마가 날마다 한 번씩 봐준 게 걱정 안 허고 가요."

연동 어머니는 떡을 미리 해서 미리 부산으로 택배로 부쳤기 때문에 짐이 없다고 하셨다. 등산용 배낭과 보따리 하나만 마루에 놓여져 있었다. 연동 어머니는 비닐 종이에 넣어진 떡가래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요놈 떡가래 냉장고에 넣어 놓고 잡숫쇼. 냉동실에 넣어두고 묵으면 떡국을 오래오래 끓이 묵을 수 있을 것이요."
"어메, 요놈을 다 우리를 준다고요? 너무 많은디요."
"아니어라우. 부산 사는 자식들 다 보냈응게 걱정 말고 가지고 가싯쇼. 그 속에 쑥떡도 쪼께 들었응게 애기들이랑 쪄서 묵고…."

내 추측이 맞았다. 가래떡을 주려고 고속 버스 터미널로 나를 나오라고 했던 것이다. 저 가래떡을 머리에 이고 손에 보따리를 들고 버스를 두 번씩 갈아 타며 내게 떡을 주고 가는 모습을 떠올리니 연동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 너무 기뻤다.

"참, 부산 사는 아드님에게 우리집서 하룻밤 자고 간다고 전화 했어요?"
"예, 순천에서 하룻밤 자고 간다고 힜더니 큰 아들이 언제 부산에 오면 집이랑 함께 식사나 하자고 그럽디다. 큰 딸도 그런 양반 없다고 겁나게 집이를 칭찬허덩만요."

우리 집에 도착한 연동 어머니는 몸뻬 바지 속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아들에게 준다. 아무리 못 주게 말려도 "내가 서운히서 안 된다"며 3천원씩 누나랑 똑같이 나눠 가지라며 준다.

애들에게 돈을 건넨 뒤 배낭 속에든 보따리를 풀며 "쫌씩 나눠 먹으면 존게 밥그럭 좀 갖고 오싯쇼. 자식들 줄라고 광주 가서 홍어회를 좀 사 왔는디 잘 삭았는가 모르겄소" 하신다. 벌써 연동 어머니는 홍어회를 접시에 담고 있었다.

"음마, 고만 담읏쇼. 자식들 줘야제 우리 다 줘불먼 안 되제라우. 애쓰게 히가꼬 감선 요로케 우리들한테 덜어줘 불먼 부산 사는 자식들한테 우리가 겁나게 미안헌디…."

아내는 연동 어머니 젓가락을 뺏으려고 하고 있었다. 연동 어머니는 시금치를 좀 먹어 보라며 옆에 놓여진 보자기를 또 푼다.

"꼬치가 죽어부러서 거긋따 시금치를 좀 심었더니 아주 잘 되아부렀당게라우. 자식들 좀 갖다 줄라고 캐왔소. 배추밭에 배추가 많이 있는디 아까 연동에 왔을 때 고놈 좀 함께 뽑아 가꼬 올겄인디 내가 깜박해부렀소. 그나저나 겸면떡이 준 저 상자나 한 번 뜯어 봅시다. 조구 새끼라고 힜는디… 집이가 뜯어 봐야는디 내가 먼저 뜯어볼라요."
"예, 뜯어봅시다."

연동 어머니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엄머, 뭠 놈의 조구가 요로케 큰놈이 다 있다요. 참말로 조구 겁나게 커불고만. 아, 겸면떡 쬐께만 허랑게 인자 많이 히불랑갑소. 요로케 큰 조구를 줘불먼 인자 나 사위 뺏기불 것는디…. 소주 받아 가길 참 잘했소. 집이를 겁나게 생각허고 조구를 줬고만…."

저녁을 먹고 나서 연동 마을에 계시는 겸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이고메, 저한테까지 뭐더게 이렇게 큰 선물을 했어요. 인자 저 부담 느껴서 연동 마을에 못 가겄네요."
"아니어라우. 서로 나누는 정이제. 저번에 굴 사와서 안 잘 묵었소. 절대로 부담감 느끼지 말고 시골은 늙은 어메 아부지들만 산게 왔다갔다 험서 지냅시다. 글고 뒷집은 딸이 다섯이나 됭게 뒷집으로만 가지 말고 우리 집도 꼭 들리랑게요."
"예, 알았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할께요."
"옆에 동순이 어메 있제라우. 좀 바꿔 주싯쇼."

연동 어머니께 전화를 바꿔드렸다.

"순천 사위 집에 강게 겁나게 좋겄소. 설 잘 쇠고 오싯쇼."
"응, 그려. 닭허고 개 좀 잘 봐줘 잉."

아침 출근길에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 연동 어머니는 내가 회사에 늦을까 봐 계속 걱정을 하고 계셨다.

"고마워서 어쩍께라우. 나 땜시 회사 지각히불면 안되는디."

연동 어머니께 차표를 쥐어 드리고 대합실 문을 나오는데 따라 나오신 어머니는 계속해서 나를 향해손을 흔들고 계셨다.

"어서 가싯쇼. 참말로 미안히서 어쩐데아. 차표까장 끊어 줘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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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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