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히드라의 사무실 모습, 벽 왼쪽에 있는 것이 단체 포스터, 오른쪽에는 히드라의 주장을 담은 각종 팸플릿들이 있다.
히드라의 사무실 모습, 벽 왼쪽에 있는 것이 단체 포스터, 오른쪽에는 히드라의 주장을 담은 각종 팸플릿들이 있다. ⓒ 윤여동
궁금한 마음에 베를린 시내의 쾨페니커 스트라세에 있는 '히드라'를 찾아갔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굽 높은 하이힐 신발 앞 끝에 뱀머리를 붙여놓은 그림이다. 이것은 '히드라'의 상징 이미지였다.

알다시피 '히드라'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아홉 달린 뱀이다. 머리가 하나 잘리면 새로 둘이 솟아나는 불사의 존재다. 결국 히드라는 헤라클레스에 의해 머리가 잘려지고 횃불로 지져지는 방식으로 처벌된다. 그러나 9번째 머리는 불사 그 자체여서 헤라클레스도 어쩌지 못하고 커다란 바위로 묻어버리는 것으로 끝을 낸다.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이런 히드라의 불사성(indestructable)때문에 단체명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히드라 소개 팸플릿에 의하면 이 단체는 1980년 독일에서 최초로 조직된 독립적인 매춘부단체(independent whore organization)다. 사회사업가나 매춘경험이 있는 여성들이 모여 조직했으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성구성원은 없었다고 한다.

방문 당시에는 7명의 구성원과 1명의 인턴이 일하고 있었다. 그 외에 독일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태국여성과 통역이 필요할 때만 도와주는 태국인이 있다고 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1985년부터 시에서 재정보조(public fund)를 받아 전부 유급으로 일하고 있었다.

또 구성원수에 비해 사무실도 넓어 각자 독립적인 방을 사용할 정도였다. 근무시간도 월화목금, 주 4일만 했다. 열악한 환경과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시민단체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풍요로운 환경에서 과연 '히드라'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우선 에이즈와 같은 성병부터 채무나 법적인 문제 등 성매매 여성이 부딪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한다. 여기까지는 우리 시민 단체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의 성매매는 불법이며 사회적으로 터부시 하는 반면, 이들은 성매매를 원하는 여성들에게는 일종의 조언 업무도 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성매매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반년에 한번씩 성매매관련 운동의 방향을 논의하는 국내 매춘부회의(national whore-congress)에 참석하고, 국제 성노동자(all sex-workers of the world) 대회를 지원하는 업무도 수행한다.

그러나 이들이 무엇보다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일은 성매매 합법화였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2002년 1월 성매매 합법화를 이루면서 결실을 맺었다. 합법화 법안 자체는 'bundnis90(동맹90)'과 녹색당이 발의했다고 하는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녹색당이 이런 문제도 신경 쓰나'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한편 중도우파 정당인 자유당(FDP)은 끝까지 반대했다고 한다.

성매매 합법화는 다음과 같은 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성매매가 더 이상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거에는 성매매를 조장하는 것이 처벌받았지만 이제 성매매 종사자를 착취하는 자는 처벌받는다. 또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고객에 대해 법적으로 고소할 수 있다. 단 이것은 본인의 이름으로만 할 수 있지 제3자, 예를 들면 포주가 할 수는 없다.

성매매와 관련한 고용계약이 가능해졌고, 포주는 인적 또는 경제적인 자유를 구속하는 경우에만 처벌을 받는다. 성매매 종사자는 의료보험, 실업보험 또는 연금계획 등을 포함해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고용주가 특정 고객 또는 특정 성행위를 강요하는 계약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법적인 변화는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히드라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한다. 법적인 변화가 곧 사회인식 자체의 변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업수당이나 의료보험 등의 제도적 혜택을 받으려면 등록을 해야하는데, 자신의 직업을 매춘부로 당당히 등록하려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히드라는 성매매의 합법화가 성매매 여성 문제에 있어 커다란 성과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독일 남성의 4분의 1일이 성매매 업소를 찾을 정도로 '성매매'는 현실적인 존재라는 설명이다.

결코 성매매를 장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이 그렇다면 법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 권익 향상의 첫 단계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 이것은 소위 성매매 옹호 단체(prostitution advocacy group)들의 공통된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독일, 네덜란드, 그리스만이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나머지 국가들은 규제도 인정도 하지 않은 채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북유럽으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은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구매자는 처벌 대상이 되지만 판매자인 여성은 피해자로 보호한다.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성매매방지법'을 제안하면서 모델로 삼는 것이 바로 스웨덴의 형태이다.

즉,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는데 있어 두 가지 방법이 대립하고 있는 셈이다. 합법화를 통한 권리 부여와 불법화를 통한 보호. 또한 여기에는 성매매 현실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느냐와 그 자체가 여성에 대한 착취로, 그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두 시선이 대립하고 있다.

한국에 적용하면 과거 김강자 서장의 공창제로 오해된 규제주의(특정지역에 한해 성매매 허용)와 '성매매방지법'을 추진하고 있는 여성계의 대립이기도 하다.

이런 대립에 대한 논란을 떠나, 사회운동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억압당해 온 당사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위해 주체로 나서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여성차별의 문제를 남성의 보호와 시혜를 통해서 풀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여성 스스로가 성매매를 옹호하는 형태인 독일의 '히드라'는 한국사회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지금 제기되고 있는 성매매 여성들의 손해배상 청구는 인권의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적어 보인다. 억압적인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만 받아 온 그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또 그들에게 배상을 해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것을 클릭하면 성매매 여성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