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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버튼 아래에는 'ECONO LITE'라고 쓰여있다.
보행자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버튼 아래에는 'ECONO LITE'라고 쓰여있다. ⓒ 이정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신호등이었습니다. 이 곳의 신호등은 한국의 그것과는 달리 보행자가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신호등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그러면 잠시 후 신호가 바뀌면서 보행자는 길을 건널 수가 있지요. 이 신호등에는 "ECONO LITE"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보아온 신호등은 보행자가 없어도 횡단보도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 도로의 차가 의무적으로 멈춰야 하는 한국의 신호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반드시 보행자가 있고 버튼을 눌러야만 차가 서는, 말 그대로 '경제적인 신호등'인 셈이지요. 서울처럼 많은 사람이 수시로 북적이는 큰 도시라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같은 우리 나라의 중소 도시에서는 적용해 보아도 좋을 듯한 시스템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곳 사람들은 조깅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결코 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빅토리아의 웬만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을 발견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거리에서 사람들이 달리는 모습이 일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이 곳 빅토리아 사람들은 여유를 갖고 생활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되돌아 봅니다. 남보다 버스에 늦게 탈까 봐, 주문한 음식이 조금이라도 늦게 나올까 봐 우리는 언제나 조바심을 내고 시계를 보지요. 그래서 마치 한국의 시계는 이곳보다 몇 배 더 빨리 돌아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치 한국이 빅토리아보다 17시간 빠른 것처럼 말이죠.

이 곳 빅토리아에는 밤이 일찍 찾아옵니다. 해가 일찍 지기도 하거니와 대부분 사람들은 10시면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한창 '장금이'를 만나고 있을 시간에 말입니다. 이 곳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빠르게 사는 한국 사람들은 하루의 일과도 이들보다 늦게 마감합니다.

아직은 저에게 이 곳의 모든 것들이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느긋하게 살면서도 하루를 일찍 마감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빅토리아 사람들을 보니 늘 바쁘게 살면서도 하루 서너시간 밖에 자지 못했던 저의 한국 생활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건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다음 기사에는 미국의 그늘에 가려진 캐나다인들의 열등감을 재치있게 날려버린 한 광고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저도 빅토리아에 도착한 이후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제 생활 시계도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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