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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안정된 장애인 시설에서 지냈었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식구들은 자립을 꿈꾸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자립이란 "자신의 생활에 대한 선택과 결정권을 갖으며 성공과 실패까지도 자신 스스로가 책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 안정된 장애인 시설에서 지냈었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식구들은 자립을 꿈꾸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자립이란 "자신의 생활에 대한 선택과 결정권을 갖으며 성공과 실패까지도 자신 스스로가 책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마동훈(35)씨는 '우리이웃'(우리이웃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직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요즘 가장 큰 기쁨이라고 한다. 마씨가 우리이웃을 찾은 건 3년여 전. 한 살 때 머리를 다쳐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입은 마씨는 20여년 가깝게 한 중증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생활해 왔다.

마씨가 자립생활을 결심하게 된 것은 4년여 우리이웃을 이끌고 있는 주숙자(45) 소장을 만나면서부터. 그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들처럼 방황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하물며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돼 가면서 사회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느냐"고 반문한다. 비장애인과 같은 시각에서 봐 달라는 것.

마씨가 시도하고 있는 자립생활의 필요성은, 오히려 그 자신이 20여년 지내 온 보호시설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던가를 되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익숙한 시설생활, 수동적 인간 스스로 자포자기 해

"시설에서는 내가 무엇을 계획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해 줍니다. 편한 것 같지만 나도 모르게 수동적인 사람이 되고 스스로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의욕이나 목표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었다. 도움을 의존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스스로를 변화시켜 가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 마음의 상처와 무력감만 깊어져갈 뿐이었다.

처음엔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대체 빨래며 밥은 어떻게 해 먹을 것이며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겠냐는 것. 막상 사회에 나온다고 해도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또 사회로 나와도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년의 생활은 이런 주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스스로 자신감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새해에는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우선미씨,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지영씨, "전동차를 마련해서 조성모 콘서트를 보러 가겠다"는 하나씨. '체험홈'에 살고있는 그녀들은 요즘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고 말한다.
새해에는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우선미씨,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지영씨, "전동차를 마련해서 조성모 콘서트를 보러 가겠다"는 하나씨. '체험홈'에 살고있는 그녀들은 요즘 자신감이 부쩍 늘었다고 말한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마씨는 보호시설에서 나오면서부터 우리이웃이 마련한 한 임대아파트에서 '체험 홈' 생활을 해 왔다. 같은 중증 장애인들과 함께 일정기간 동안 사회적응을 위한 준비과정을 가진 것이다. 가게도 이용해 보고 은행도 이용해 보는 것이 그것이었다.

체험 홈은 사회적응의 한 과정일 뿐, 의료적 치료과정과는 무관하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자기의 결정권을 자기가 갖는다는 것. 마씨는 이렇게 말한다.

도움, 스스로 설계하고 당당하게 선택해야

"자원봉사자나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시설에 있었을 때처럼 남이 다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름대로 세운 계획을 가지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도움에 대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선택한다는 것이죠."

마씨는 비록 자그마한 목표이지만 그날그날 계획을 자신이 짜서 살아간다는 것에 새로운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감이 섰다고 한다.

박종선(33)씨 역시 어려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았다. 어려웠던 시절 감기인줄 알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알고 보니 열병이었던 것이다. 9살 때 한 재활원에 입소해 지금까지 21년여를 그 곳에서 생활해 왔다. 박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설에서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아무런 희망의 빛도 없이 이렇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니 착잡해질 뿐이었습니다. 계획을 세워보다가도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반복적인 생활에 젖어들고 말았습니다."

오랫동안 지낸 시설에서 나오는 것을 반대하시던 어머니도 지금은 "니가 제일 났다"고 말하신다며 웃는 박종선(33)씨는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낸 시설에서 나오는 것을 반대하시던 어머니도 지금은 "니가 제일 났다"고 말하신다며 웃는 박종선(33)씨는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다른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박씨가 사회에서 맞는 기쁨은 지극히 소박한 것이다. 박씨는 바깥 구경도 해 보고 이런 저런 경험을 해 보면서 힘들지만 자신이 하나씩 나아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시설이라고 해서 바깥구경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속에 주인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없었다는 것.

처음 극구 만류하던 어머님이 요즘 들어서는 전화도 뜸하다며, "걱정이 없지 않겠지만 그만큼 이제 한 시름 놓은 것 같다"고 시종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박씨는 '우리이웃'에서 마씨와 함께 기획부 일을 맡고 있다. 행사준비와 카페 홍보 등이 주 활동.

박씨는 "아직 '시설병'이 남아 추진력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변화해 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비로소 한 사회인이 되는 걸 느낀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우리이웃'의 이러한 성공사례는 장애인 정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본인 스스로 장애인이기도 한 주 소장은 결혼 전 한 보호시설의 교사로 근무해 왔다. 주 소장은 이 과정에서 진정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됐다고 한다.

하루를 살더라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장애인들의 간절한 바람은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주인이 돼서 살아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부모간섭을 싫어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더 합니다. 그러나 커 갈수록 자꾸 방구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장애도 심각해지고 점점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놓고 우리는 장애인들한테 무능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이웃'의 출발은 이렇게 시작됐다. 우선 필요한 것은 장애인 스스로의 자립의욕을 북돋는 일. 휠체어를 타고 사회로 나와서 장애인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변화해야 사회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체험홈'에서 살고있는 박하나(23)양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활동보조인에게 의존하진 않는다. 휠체어에 붙여 놓은 핸드폰 문자를 활용하기도 하고 같은 장애인이면서 하나양의 부정확한 발음을 척척 알아듣는 친구 지영양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체험홈'에서 살고있는 박하나(23)양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활동보조인에게 의존하진 않는다. 휠체어에 붙여 놓은 핸드폰 문자를 활용하기도 하고 같은 장애인이면서 하나양의 부정확한 발음을 척척 알아듣는 친구 지영양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이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당당히 거리로 나섰다. 장애인도 한 사회의 구성원임을 당당히 밝히고, 비 장애인과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을 촉구하고 나선 것. 장애인이 더 이상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히 외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저상버스 도입을 촉구하는 활동. 장애인차별철폐 운동, 장애인의 이동권과 교육권에 대한 문제, 중증 장애인 인식전환을 다양한 캠페인 등의 활동을 펼쳐왔다. 이 과정을 통해 이들은 무력해 보였던 자신이 더 많은 후배 장애인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앞으로도 만만치 않다. '우리이웃'의 재정난도 그 하나. 자치단체는 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정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뜻 있는 분들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매월 임대료와 이자감당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 소장의 소원은 함께 일하고 있는 5명 있는 상근자들에게 얼마정도의 월급을 줘 보는 것. "매년 무보수로 일하도록 하는 것도 염치 없는 노릇이고, 그만큼 사기도 떨어진다"고 한다. 월급을 주면 직접 세금도 내 보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하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중증장애인에 필수적인 활동보조서비스도 마찬가지. 이들의 자립생활을 위해서는 활동을 돕는 보조인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제도적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 어렵기는 체험 홈도 마찬가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시범사범으로 선정돼 일부 재정지원을 받고 있지만, 한시적인데다 수요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지만 소중히 키워 가는 꿈

올해 좋은 계획들이 있느냐고 묻자 마동훈씨 한테 눈길이 쏟아진다. 쑥스러운 표정인 마씨의 손에는 며칠 전부터 커플링이 끼워져 있다. 얼마 전부터 새로 여자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도 오래전부터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마씨는 "여자친구가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 들지 말고 '누가 뭐래도 나는 참 아름답고 멋있는 여자'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

우선미(34)씨는 체험 홈 생활이 이제 3개월째이다. 시설에 있을 때는 가게도 모르고, 두부가 얼마며 콩나물이 얼마인지 모르고 살다가 지금 전혀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동안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도 많이 바뀌게 됐다"며 "사람들을 의식해 말을 잘 못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홍지영(23)씨는 컴퓨터 채팅과 메일을 즐겨한다며 카페만 15개나 된다고 자랑이다. 음악이 취미라는 그녀는 그중 발라드 풍의 조성모가 노래가 좋다고. 체험 홈의 친구인 박하나(23)씨 역시 조성모의 열렬한 팬. 그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콘서트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우리가 남들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장애인으로만 보지말고 평등한 한 인격체로 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비장애인한테 전하는 우선미씨의 작은 바람이었다. 그녀가 살짝 공개한 소망도 올해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 '뭔가 있느냐'고 묻자, 야릇한 웃음과 함께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살다보니까 소망한 것은 꼭 이뤄지더라"고 말한다.

'체험홈'에서 본 고장난 냉장고, 적혀있는 글귀를 볼 때 작은 불편함도 그들의 자립의지를 꺽지는 못한 것 같았다. 차라리 장애인을 나약한 보호대상이라고 생각하고 동정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쾅! 하고 차버릴 수는 없을까?
'체험홈'에서 본 고장난 냉장고, 적혀있는 글귀를 볼 때 작은 불편함도 그들의 자립의지를 꺽지는 못한 것 같았다. 차라리 장애인을 나약한 보호대상이라고 생각하고 동정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쾅! 하고 차버릴 수는 없을까? ⓒ 오마이뉴스 안현주

덧붙이는 글 | '우리이웃장애인자립생활센터' 후원 계좌
농  협: 601173-51-037632
우체국: 502997-01-002072
국민은행: 571-01-00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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