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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천수이볜 총통이 중국을 향해 '성전(聖戰)'을 선포했다. 2003년 12월 28일 대만의 운림현(云林縣)에서 열린 자신의 후원회에서 천수이볜 총통은 "2004년 대만의 국민 투표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성전이 될 것"이라며 중국의 극렬한 반발, 미국의 대만 독립 반대라는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도 내년을 대만 독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이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꼬리를 내리던 예전의 대만 태도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과거와는 달리 강력히 중국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날 천수이볜 총통은 성명을 통해 "대륙(중국)은 방송매체, 인터넷을 이용함은 물론 심지어 경제 영역까지 손을 뻗어 대만의 선거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 공산당은 대만의 민주화에 반대하고 있다"고 중국 공산당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또 천수이볜 총통은 2004년 신년사에서 "대만은 지난 30년간 자유· 인권·민주를 위해 힘써 왔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바이다. 대만과 중국의 국민들이 함께 손을 잡고 무형(無形)이지만 정말 소중한 자유·인권·민주의 가치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밝혔다.

이번 신년사의 내용에 대만 독립을 촉구하는 직접적인 내용은 없다. 그러나 이번 신년사의 내용과 지난해 12월 28일 언급한 '성전' 발언을 연결해 보면 천 총통의 대중국 전략이 새롭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즉 '자유·인권·민주'와 같이 상대적으로 중국과 다른 지향점을 언급함으로써 대만의 독립이 '자유·인권·민주'를 쟁취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것이다. 즉 대만의 독립 시도는 '자유·인권·민주'를 위한 '성전'인 셈이다.

천 총통의 발언은 과거 중국과 정치에서 첨예하게 부딪치던 대만과는 다른 모습이다. '자유·인권·민주'와 같은 보편타당한 정치 상위 개념을 강조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대만 독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만 대응 전략도 변하고 있다. 대만의 언론들은 중국 내에 대만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직적 움직임이 있다고 보도하였다. 대만의 <자유시보>는 "중국 공산당 내에는 대만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와 간부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들은 현재 대만 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 공산당 내부의 대만 문제 전담 부서는 대만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정치적인 수단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외적인 수단도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각종 대중 매체와 인터넷을 이용함은 물론 대만의 기업가들도 포섭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또 여론을 선동하기 위해 천수이볜 총통의 인격과 도덕을 문제 삼는 방안까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중국의 이러한 시도는 중국 현지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최근 연일 대만문제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환구시보>는 2003년 12월 31일자 신문에서 "천수이볜 총통이 '성전'을 떠들어대고(囂) 있다"는 제목으로 일면을 장식했다.

'囂(효)'자는 '왁자지껄하게 떠들다'란 뜻으로 시장과 같은 곳이 시끄럽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천수이볜 총통의 발언을 '시장의 시끌벅적함' 정도로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또 같은 신문 2004년 1월 2일자에서는 "천수이볜 총통의 가계 재산이 약 4억 대만폐에 이른다"고 보도하였다. 이는 대만 매체가 보도한 "천수이볜 총통의 도덕성마저 문제 삼으려 한다"는 주장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새로운 대만 문제 접근 방식은 이번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의 발언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2003년 12월 25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은 갑작스럽게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만 기업가들을 인민대회당으로 초청했다.

2003년 12월 31일자 <환구시보>는 이날 초청회에서 후(胡)주석은 삼통(三通-직통 항로 재개·우편물 교류 재개·통상 교류 재개)의 촉진을 강조하며 "대만 상인들의 권익을 보호한다. 하지만 대만 독립에는 반대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대륙(중국)은 대만 상인들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환영한다. 경제·문화·과학 교류를 확대해 중국-대만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조국통일을 이룩하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후진타오 주석의 이날 발언은 대만을 중국 경제에 더 깊숙이 편입시키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즉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경제에 대만을 종속시켜 대만이 쉽사리 독립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만이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될수록 대만의 기업들도 대만과 중국의 대치 국면에 민감해 질 수밖에 없다. 대만 기업들로서는 대만과 중국의 충돌이 발생한다면 중국이라는 커다란 '시장'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후 주석의 발언은 대만 기업가들에 일종의 경고성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만 경제를 이끌고 있는 기업인들을 불러 대만의 독립 시도를 저지해 줄 것을 암시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의 미국 방문 이후 부시 대통령이 '대만 독립 반대' 발언을 해 잠시 잦아들었던 대만 독립 문제가 연초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만은 '자유·인권·민주'와 같은 정치 상위 개념을 통해 독립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중국은 대만을 중국 경제에 더욱 깊숙이 편입시켜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려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대만 총통의 성전(聖戰)과 중국 국가 주석의 삼통(三通)에서 어느 것이 승리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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