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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에 대한 드라마의 인식은 두 가지의 극단적 모습으로 대립된다. 하나는 근엄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일상인들의 정감과는 다소 거리가 있게 표현된다. 이것은 지식인에 대한 딱딱한 이미지가 고착화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주로 '사회 지도층 인사'로서의 지위가 부여된 상태에서, 도덕적으로 그것을 잘 수행하거나 혹은 도덕적 위선의 모습으로 포장함으로써 드라마의 내용을 꾸려갔다.

하지만 요 근래 접어들면서 '교수' 혹은 '박사'로 일컬어지는 지식인에 대한 드라마의 인식은 이와 완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조롱과 놀림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2001년 2월에 종영되었던 MBC 월·화 드라마 <아줌마>는 지식인에 대한 드라마의 바뀐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장진구(강석우 분)와 한지원(심혜진 분)은 '교수'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지만, 가볍기 이를 데 없다. 전문가적 소양과 모습은 결코 눈에 띄지 않으며, 그들의 말과 삶은 해프닝성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꼴에 지식인이라고, 시쳇말로 '온갖 꼴값'은 다 떤다. 지식인들에 대한 현대인의 조롱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후 특히 시트콤과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교수들 역시 웃음을 위한 장치로 설정되고 있다. 교수와 학자로서의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들의 삶이 일상인들에게 희화화 될 수 있는 부분을 극단화시킴으로써, 일상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것이다. 그마나 전문성을 갖춘 학자로 교수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이미 종영된 SBS 드라마 <카이스트> 정도였다.

MBC 일일 연속극 <귀여운 여인>은 이러한 지식인에 대한 희화화를 바탕으로, 그 시선을 '교수'가 아닌 '강사'로 옮겨왔다. 지금까지 강사는 주로 교수와 같은 범주에서 논의되거나 혹은 그 전단계 정도로 이해되었다. 강사와 교수의 삶이 극단적 양면성을 띠고 드러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귀여운 여인>은 강사에 대한 바뀐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강사는 교수와 같은 지위에 있거나 혹은 그 전 단계로 인식되어 있지 않다. 최승은(정선경 분)은 불리한 조건을 이기면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폐강 직전의 강의 하나를 억지로 맡아서 자존심만 유지하고, 생활고는 우유배달을 통해 메워 간다.

생활고를 위해 가장 자존심과 거리가 먼 직업을 선택하면서도, 생활고와 전혀 상관없는 '강사'라는 직책을 통해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그나마 남은 강의마저 박탈되면서, 결국은 백화점 직원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새벽에는 우유아줌마로 대학에서는 강사, 그리고 그나마 강의가 없어지면 백화점 직원으로라도 살아야 하는 강사의 비참한 현실을 잘 묘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강사들이 기분 좋게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단순하게 비참한 현실을 너무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현실을 바라보면서 비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강사에 대한 '희화화'와 지식인에 대한 '조롱'에 기초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귀여운 여인>은 최승은의 모습을 통해 아무리 공부를 해도 우유아줌마와 백화점 점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재벌 2세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최승은의 모습은 현실에 대한 강조의 범주를 넘고 있다.

물론 이것을 통해 배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일상인들로 하여금 '공부해 봐야 아무 필요 없다'라는 인식을 심어 줌으로써, 그 삶에 만족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를 위해 지식인들의 역할과 전문성마저 무시하는 것은 강사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생활고를 위해 우유배달을 하는 것은 현실에서 강사들이 학원출강을 하고 과외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과 전문성까지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수의 강사들은 눈코 뜰 새 없다. 강의 준비와 논문 쓰고 연구에 몰두하는 작업만으로도 밤잠이 모자란다. 호구지책을 따로 가지고 있는 강사들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러한 노력과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기 보다, 강의가 없다고 해서 백화점 직원으로 취직하고 재벌 2세와의 결혼을 통해서 신분상승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그린다.

학자로서의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어야 한다. 한시도 책을 손에서 떼는 것을 불안해 하며, 그 패턴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연구하는 정신노동은 하루 종일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논문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제대로 된 한 편의 연구 논문이고, 저작물이다.

강사가 '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교수'만을 꿈꾸는 것은 가장 잘못된 지식인 사회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지식인들의 사회를 바로 이러한 사회로 묘사하면서 조롱의 눈길을 보낸다.

특히 최승은의 국내 박사학위는 '무능력'으로 상징되고, 김유진(김세아 분)의 외국 박사학위는 '능력'으로 상징되는 이중 구도는 지식인의 사회를 바라보는 드라마의 왜곡된 구조를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잘못된 사회를 바라보면서 조롱하고, 그것을 통해서 얻는 카타르시스는 분명 의미가 있다. 특히 드라마는 이러한 왜곡의 구조를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서 현실을 비판해야 한다. 교수 사회나 지식인 사회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는 이러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역할과 의미까지 완전하게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처럼 강사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시점에서 강사에 대한 조롱은, 더 이상 지식인 사회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로 이행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돈이 없어서 우유배달을 할망정, 자신의 역할과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강사의 삶을 묘사할 수는 없었을까? 물론 그렇지 않은 지식인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에서 이것이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해야 할 일과 전문성만큼은 보호해 주는 드라마의 건전한 비판정신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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