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을 소리나는 대로 부르면 '이천사'쯤 되겠다 싶은 생각이 한달째 떠나지 않았다. 그 만큼 지난 한 해는 나와 우리 모두에게 시련의 한 해였다. 가는 해를 굳이 그렇게 싫어한 까닭에 어서 'e-천사'가 오길 바란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시간 관념이지만 몇 시간만 넘기면 해가 바뀌니 그렇게 미워할 일이 아닌데도 나는 악귀를 쫓는 심정이었다.
구랍(舊臘) 마지막 날 몇 몇 사람과 의미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북한산에 올라 서울 전역을 굽어보며 새해를 반가이 맞이하려 했다. 그 시각 도시의 빛깔을 생생히 <오마이뉴스>에 현장 중계할 욕심을 부렸다.
그런데 웬걸? 그 지긋지긋한 2003년 끝까지 질긴 인연을 놓지 않으려는 듯 같이 가기로 한 한 명이 빠지자 한 명마저 가기 싫다고 한다. 굳이 혼자서 못 갈 바 아니지만 취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용(蠻勇)을 부릴 만큼 칠흑 같은 어둠에 익숙하지 않아서다.
남들 다 가는 종로 보신각이나 남산에 올라 현장을 스케치하는 게 께름칙하다는 생각에 글이나 하나 쓰고 아내가 준비한 케이크를 가족과 함께 자르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해강이 솔강이가 '허천병' 난 것처럼 크림빵을 먹는 걸 지켜보다 무엇보다도 희망은 아이의 탄생 순간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글을 쓰다 말고,
"여보 삼성제일병원에 좀 다녀와야겠어요."
"이 늦은 시간에요?"
"뭐가 늦다고 그럽니까? 이제 겨우 10시 30분인 걸."
"그래도 마지막 날은 가족과 함께 보내야 되는 것 아닌가?"
"나 혼자 즐기러 가는 게 아니잖소. 금방 다녀올게요."
연말이다 보니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길을 돌아 동국대 정문 근처에 차를 세우고 무작정 병원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 여성전문병원 중 2위 그룹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독보적으로 아이 출산을 많이 하는 이 병원에서 우리 해강이와 솔강이도 얻은 터라 익숙한 데가 있어 맘이 놓였다.
가히 '아이공장'이라 부를 만하게 낳은 지 하루 이틀 지난 200여 명의 신생아가 간호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세상 모르고 자는 아이, 우유를 빠는 아이, 뭔가 못 마땅한지 보채는 갓난아이들은 여아는 빨강, 남아는 파랑 딱지를 달고 어울려 있다.
'어떻게든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 어떻게 눈에 띄게 할 수 있지.'
곰곰히 생각하다 유리만 있을 뿐 아이들과 간호사들의 움직임을 훤히 볼 수 있는 곳으로 다가가 디카를 들이밀어 몇 장을 찍어 나갔다. 막 태어난 아이들은 플래시 빛에 약하다는 걸 안 터라 형광 불빛만 의지한 채.
어슬렁어슬렁 10분여 작업을 하던 중 창가 쪽에서 우유 먹이는 간호사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손짓으로 명함 대용으로 갖고 간 오마이뉴스 취재수첩을 들어 보이며 손짓을 해댔다. '취재 왔어요. 아이 사진 찍어서 가려고요.' 안에서는 들리지 않는지 입구로 오라는 신호를 한다.
옳거니! 쾌재를 불렀다. 간호사에게 대충 설명을 했는데 이런 상황에 익숙해선 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홍보과에 연락을 해보겠다는 거다. 예상치 않은 결과였다. 애초에는 아이 사진만 몇 장 찍어 얼른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취재원은 내게 더 많은 걸 얻어 가라한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10여 분 후 홍보과 직원이 왔다. 급작스레 기획해 달려왔기 때문에 명함을 잊고 왔고 기획서마저 만들지 못했다고 했다. 직원은 여긴 간단히 스케치만 하고 2004년 첫 아이를 찍을 기회를 주겠다는 제의를 해 온다.
초상권 문제로 간단히 몇 장 찍고 분만실로 따라 내려갔다. 밤 11시 15분 잠시 짬을 내 <오마이뉴스>에 전화를 걸어 2004년 첫 아이 탄생을 취재하러 왔다고 했더니 꽤나 반긴다. 일감은 늘어도 <오마이뉴스>에도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어 고맙다는 말까지 들었다.
30분 전 방송사 취재진들이 몰려왔고 나는 유일하게 신문사 대표로 참여하고 있었다. 10분 전 가운과 모자, 입마개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분만실 내부는 예상과는 달리 평온했다. 우리 두 아이 낳을 때 밖에서 축하주 마시다 탄생의 순간을 보지 못해 평생 못된 남편으로 살아가게 된 나는 야릇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떨림의 이유는 새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빠뜨리지 않고 지켜볼 수 있다는 기쁨이었다. 가슴이 떨려오고 손이 떨렸다. 시시각각 시간은 다가오고 5분, 4분이 채 남지 않았다. 산모에게 몇 가지 주의를 전하고 준비 완료.
3, 2, 1! 회음부 절개를 하고 밤 12시 정각, 2004년 1월 1일 0시 00분 건강한 여자아이가 밝은 세상의 빛을 보는 최초의 순간이다. 순식간에 바다에서 붕 떠오르는 태양처럼 쏘옥 빠져 나오고야 말았다.
"공주님이십니다."
새 생명의 탄생, 희망의 시작, 이천사의 등장.
엄마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무에 그리 고맙다는 건지 안다. 인고의 세월을 몸과 마음에 담고 시련을 견뎌낸 엄마에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어디 세상에 고맙고 감사하지 않은 게 있으랴.
"응애~" "응애 응애 응애~" 핏덩어리 아이는 탯줄을 자르는 것으로 엄마와 새로운 만남을 약속했다. 몸을 닦고 손과 발 각각 다섯 개씩 달린 것을 확인하고 2.6kg 몸무게를 잰 뒤 잠시 숨을 돌린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겼다.
나는 그 순간에도 '천사'가 태어났음을 말하였다. 그래 너희는 정말 'e-천사'다. 엄마 말씀처럼 인덕 있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제 이 희망으로 다가온 천사가 이 겨레와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동량(棟樑)이 되게 하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올 한 해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가꿔나가야겠다.
마음이 급해졌다. 부모의 간단한 신상을 적은 뒤 옆방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난 남아를 카메라에 담고 뛰었다. 차에 올라 <오마이뉴스> 본사에 전화로 두 아이가 동시에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던 중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에 보니 새벽 12시 40분. 글을 새로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 더 바빠졌다. 웹 폴더에 저장하고 필요한 걸 고르라고 했더니 열리지 않는단다. 다시 몇 개 골라 보내고 글을 정리해 보내고 나니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이렇게 의미 있는 하룻밤을 보냈다. 희망의 새해를 보듬어 안아야겠다. 어제 밤부터 새벽까지 생명의 존엄함 앞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맥주 한 병을 사와 잠을 청하려던 중 현장 취재기를 써달라는 당부에도 자꾸만 무거워지는 눈꺼풀은 어쩔 수 없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 밝은 빛이 창가로 들어왔다.
덧붙이는 글 | 취재에 협조해 주신 <삼성제일병원> 관계자와 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밤늦은 시각까지 기사 손질하시느라 수고하신 오마이뉴스 기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고 복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