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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야! 나 넘어진다. 살살 끌어라.' 마을에 아이들이 없어 단 둘이 비료 포대로 눈썰매 놀이를 하고 있다
ⓒ 김도수
주말에 김장독 속에 든 김치를 꺼내러 고향 시골집에 가 하룻밤 묵고 있으면 아이들은 불편해 하며 도시에 있는 아파트 집으로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따뜻하고 편리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이 모든 게 불편한 시골집에서 주말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날씨가 따뜻한 계절이면 마을에 아이들이 없어도 둘이 마을 곳곳을 쏘다니며 재미있게 잘도 노는데 추운 겨울철이니 밖에 나가지도 않고 방안에만 틀어박힌 따분한 하루가 되어 시골집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앞장서서 잘도 따라 다니던 아이들이 이제는 조금 컸는지 시골집에 가기 전 “오늘은 시골에 누구 안 와요?”하고 친척들 중에 또래 아이들이 오는지 먼저 물어본다. 아이들이 아무도 없는 심심한 시골에는 이제 가지 않겠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 돌담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이 못 볼 것을 보았는지 돌담에 얼굴을 내밀며 환하게 웃고 있다
ⓒ 김도수
겨울철, 시골은 아파트에 비해 모든 게 불편하다. 그러니 아이들이 시골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이 시골에 가서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은 화장실이다.

아파트에서 잠자다 쉬 마려우면 아이들 스스로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 뒤 다시 잠을 자면 되지만 시골은 그렇지 못하다. 한밤 중 화장실에 가려면 엄마 아빠를 깨워 두툼한 옷을 껴입고 뜰방에 놓여져 있는 차디찬 신발을 신고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실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고향 마을은 강변에 있어서 그런지 강바람이 매우 차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 듯하여 한밤중에 화장실 간다는 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여간 심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향집 화장실은 돌 두 개가 나란히 놓여져 볼일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돌 두 개 앞에는 왕겨와 조그마한 삽이 하나 놓여 있는데 마을이 생길 때부터 옛 어르신들이 사용하던 방식 그대로인 재래식 화장실이다.

아파트 좌변기만 사용하다가 화장실에 들어서면 돌 두 개만 덜렁 놓여져 있으니 아이들은 '응아'가 마려우면 돌 위에 앉아서 볼일을 못 보고 마당 한켠에 앉아 볼일을 봤다.

몇 년 지나니 아이들이 성장하고 또 시골환경에 잘 적응을 해서 그런지 지금은 자연스레 화장실에 들어가 아파트 좌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것처럼 돌 위에 착 앉아 응아를 한다.

▲ 징검다리와 홍시. 징검다리에 눈들이 쌓여가고...
ⓒ 김도수
칼바람 쌩쌩 몰아치는 새벽녘, 아들 녀석은 응아가 마렵다며 평소 엄마를 깨우더니 나를 깨운다. 아들 녀석은 화장실이 무섭고 컴컴하다며 화장실 안에다 나를 세워놓고 말을 건다.

“아빠, 아빠는 어릴 때 밤에 응아가 마려우면 어떻게 했어요?”

“응, 나도 너만큼 어릴 때는 잠자는 엄마를 꼭 깨워서 화장실 안에 세워두고 응아를 했지.”

“아빠, 근데 엉덩이가 시려요. 앞으로는 밤에 응아가 안 나오도록 저녁밥을 적게 먹어야겠어요.”

“응, 그래라. 그러나 적게 먹어도 가끔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올 수도 있으니 그 때는 아빠를 깨우면 돼. 알았지.”

한밤중에 아파트에서는 볼일을 쉽게 보던 아이가 시골집에 와서 영하의 온도에 엉덩이를 드러내 놓고 한참 동안 볼일을 보고 있으니 엉덩이가 무척 시렸겠지.

시골집에서 잠자다 화장실에 가려면 대부분 아들 녀석은 엄마를 깨우고 딸내미는 나를 깨운다. 딸내미가 저녁밥 먹으며 “아빠, 오늘 밤은 내가 물을 많이 안 먹었으니 잠자다 일어나지 않아도 될 거예요”하니 옆에 있던 아들 녀석도 덩달아 “엄마, 걱정 말아요. 저도 물을 조금 먹었으니 오늘 밤은 엄마도 일어나지 않아도 될 거예요”하며 엄마 아빠를 서로 번갈아 쳐다보며 웃는다.

요강을 사다 방에 갖다 놓으면 아주 편하고 좋으련만 겨울철 맑은 밤하늘에 총총 떠 있는 별 친구들을 아이들이 볼 수 없어 나는 요강을 사다 놓는 일은 포기하며 지낸다.

▲ 눈 내린 날, 고드름 열리고. 어머니 홀로 고구마를 삶아 점심을 때우고 계시지는 않는지...
ⓒ 김도수
아이들이 저녁밥을 먹고 나서 물을 많이 먹지 않는 날이면 그냥 지나치는 밤도 있지만 겨울철 긴긴 밤을 참을 수 없어 나도 꼭 새벽녘에 한번 정도는 일어나 오줌을 누러 밖으로 나간다. 아파트 백열전등 아래서 흐릿한 눈으로 오줌을 누다가 별빛 흐르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누는 오줌은 맑고 시원해서 뒤끝마저 시원스럽기까지 하다.

오줌을 누며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느새 미지의 세계를 헤매며 별들과 함께 내 몸이 반짝거리는 착각에 빠진다. 오줌을 누고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와 잠을 청하면 밤하늘에 총총 떠 있던 별들이 안방 천장까지 따라와 나를 잠 못 들게 한다. 한동안 이불 속에서 또 별을 헤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나 딸내미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면 나는 꼭 하늘을 한 번 쳐다보라고 한다.

“애들아! 하늘 좀 쳐다봐라.”
“아빠, 오늘 밤 별이 진짜로 많이 떴네요.”
“응, 진뫼에서 뜬 별은 총총하기도 하지.”
“아빠, 별들이 꼭 우리들 머리 위에 떠 있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 겨울철이면 어둠이 내리기 전 꼭 요강을 씻어 마루에 갖다 놓았다. 그것은 내 하루 일과 중 큰일이었다. 올망졸망 식솔들이 구들장 식어 가는 새벽녘이면 새우잠을 자며 서로 이불을 끌어 잡아당기곤 했는데 나는 그 때마다 잠에서 언뜻 깨어나 오줌이 마려워 마루로 나갔다.

새벽녘 마루에 나가 오줌을 누려고 요강 뚜껑을 열어보면 요강은 언제나 오줌이 가득 차 있어서 마당 한 켠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컴컴한 화장실로 가야만 했다.

큰 것이 마려우면 엄마를 깨워 함께 가면 되지만 오줌이 마려우면 엄마를 깨울 수 없어 혼자 화장실로 볼일을 보러 갈 수밖에 없었다. 전등불도 없는 컴컴한 화장실 앞에 서면 나는 너무 무서워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화장실 입구 돌담 구멍 속으로 오줌을 갈겨 쌌다. 몸은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머리 위에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보면 세상은 환해져 내 영혼에 한줄기 맑은 바람이 쏴하게 지나갔다.

어린 시절 돌담 구멍 속으로 오줌을 갈겨 싸며 쳐다보던 별빛 쏟아지던 밤하늘 은하수가 아직도 내 머리 속에 반짝이고 있다. 고향 마을에 또래 아이들이 없어 심심하다 해도, 컴퓨터가 없어 오락게임을 못해서 안달이 나도, 밤이면 엉덩이가 시려서 화장실 가는 게 심란해도, 아이들 머리 속에 오래도록 따라다닐 별빛 흐르는 고향의 밤하늘을 아이들 가슴 속에 안겨주며 살고 싶다.

아이들이 새벽녘 화장실에 가면서 쳐다보는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을 가슴 속에 늘 안고 살아간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밤하늘의 별을 따다 선물해 주는 ‘별 따주는 아빠’가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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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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