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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한진중에서 한 노동자가 김주익 곽재규씨의 대형 영정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숨만 쉰다. 집에 영정을 모셔다놓고 옆에 있는 것처럼 생활한다." (고 곽재규씨 부인).
"뭐 바랄 게 있겠나. 자식이 없는데…." (고 이해남씨 부친).
"일도 손에 안 잡힌다. 노-사 문제가 순탄하게 풀리기만 바랄뿐." (고 이현중씨 누나).
"예전같은 생활로 돌아갔으면 한다." (고 김주익씨 부인).
"더 이상 희생하지 말고 다 잘사는 세상 만들었으면 한다." (고 배달호씨 부인).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있었다. 30여년 전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연상하는 많은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졌던 한 해. 그들은 한결같이 노동탄압과 손배가압류에 시달리다 최후 수단으로 목숨을 바치고 말았다.

그들은 분신하거나 목을 매달았고, 떨어져서 죽었다. 그들의 생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들이 남긴 '정신'은 끝이 난 게 아니다. 전태일 열사처럼 '노동열사'가 되어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한 해, 노동자들의 죽음과 관련해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수사기관의 부검 역사상 의료기관이 아닌 바깥에서, 죽은 현장에서 부검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죽은 지 두달만에 장례를 치렀는가 하면, 두 사람의 장례식이 동시에 거행되기도 했다.

▲ 지난 1월 14일 고 배달호씨의 대형 영정사진 앞에서 고인의 동료인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가 연설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월 9일 새벽 창원 두산중 민주광장에서 늙은 노동자 고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했다. 7월에는 세원테크 고 이현중씨가 경비대원과 충돌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입원 도중 8월 말에 사망했으며, 고 이해남씨는 10월 분신을 기도했다가 투병 중 11월에 사망했다.

지난 10월 부산 한진중에서도 연이어 두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김주익 지회장이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이던 도중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고, 보름 뒤 곽재규씨가 지하 11미터 도크에 떨어져 사망했다.

고 이현중·이해남씨는 현재 경북 풍산공원묘원에 같이 묻혀 있고, 고 배달호·김주익·곽재규씨는 현재 경남 양산 솥발산에 묻혀 있다. 이밖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산재 등으로 차가운 땅에 묻혔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그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의 유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노동열사' 가족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새해 바람은 무엇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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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배달호] 새해 1월 9일 1주기 추모제 열기로

▲ 배달호씨의 부인 황길영씨.
ⓒ 오마이뉴스 윤성효
며칠 있으면 고 배달호씨의 분신 1주년이 된다. 배달호열사정신계승사업회는 1주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새해 1월 9일 두산중 민주광장에서 '노동열사 배달호 1주기 추모제'를 열 계획이다.

그동안 투쟁 소식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고, 열사의 정신을 조명하는 토론회(1월 13일)도 계획하고 있다. 민주광장에 표지석도 세우기로 했다. 지난 28일은 고 배달호씨의 음력 제삿날이었다. 유족들은 양산 솥발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의 부인 황길영씨는 요즘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있다. 그녀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전태일평전>이 옆에 있어도 그냥 지나쳤는데, 남편이 죽고 난 뒤에 노동자들이 왜 자꾸만 죽게 되는지 그 뿌리부터 알고 싶어 책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책을 읽으면서, 노동자들이 값어치 없이 살아간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동안 고 김주익 지회장과 이현중씨 관련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노동자들의 죽음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면서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희생하지 말고 살아서 잘 사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의 유언에 따라 새해에는 더 열심히 살고자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고 이해남] 다소 활기 찾은 아버지 "자꾸만 움직이려 한다"

그는 아버지와 두 명의 자식을 남겨두고 떠났다. 아버지 이갑수(64)씨는 아직도 "안타깝다"는 말만 연신 해댔다. 공직생활을 하다 5년전에 퇴직해서 지금은 개인용달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요즘 다소 생활에 활기를 찾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이씨는 "집에 있으면 마음도 아프고 해서, 자꾸만 움직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29일 낮에 전화를 했을 때도 짐을 싣고 운전하는 중이라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통화를 했다.

그는 먼저 "손자들이 둘이나 있는데, 잘 지내야 하는데 걱정이다"는 말부터 했다. 그는 자식의 잃고 나서야 노동자들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자식이 죽고 난 뒤에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는가를 실감했다. 두어 달 동안 병원에서 간호를 했고, 한달여 동안 조합원들과 같이 지냈다. 사회적으로 볼 때 기업주들이 얼마나 노동자들을 무시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새해 바람을 묻자 단번에 "바람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식도 없는데…"라며 말꼬리를 흘렸다. 그러면서 내뱉은 말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기업주들이 노동자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절대로 노동자들의 자살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업주들이 돈을 모아 정치인한테 갖다 바칠 줄은 알았지, 노동자들 위하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새해에는 제발 노동자들이 잘 살았으면 한다."

▲ 지난 11월 19일 영남권 노동자 대회 당시 고 이해남 지회장의 영정(맨 오른쪽)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고 이현중] 정상을 찾아가는 세원테크 "열사여, 편히 쉬소서"

▲ 세원테크 노동자 이현중 이해남씨의 집회에 참석한 유족들
ⓒ 오마이뉴스 이승욱
고인의 부모들은 현재 경북 칠곡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65세인 아버지와 57세인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마음에 아직도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모양이다. 부모들과 같이 지내고 있는 고 이현중씨의 누나 이미정(36)씨가 부모들의 모습을 대신 전해주었다.

이미정씨는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아직도 감정이 덜 풀렸다"면서 "부모님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 겨울 농사준비도 하지 않고 지내신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히려 동생과 같이 지냈던 동료 조합원들을 걱정했다.

"장례를 치른 뒤에, 노조 간부를 잡아갔다가 아직도 풀어주지 않고 있다. 장례도 치렀는데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유가족들 중에는 다시 회사에 찾아가서 항의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세원테크 사태로 19명의 노동자들이 연행되었다가 구재보 노조지회 사무장만 구속된 상태다.

이미정씨는 새해 희망을 묻자 "구속자도 빨리 풀려났으면 하는 것 뿐"이라며 "동생이 먼저 갔기에 아픔은 크고, 다시는 우리 동생과 같은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 말했다.

충남에 있는 세원테크 공장은 점점 정상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조합원들은 파업 154일만에 복귀했으며, 이전 작업 현장 배치를 두고 회사와 노조 지회가 한때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12월 26일부터 허드렛일을 시작으로 이전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노조 지회에서는 회사에 "이현중·이해남 열사 편히 쉬소서"라고 쓴 펼침막(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고 김주익]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부인의 소망 "예전처럼 돌아갔으면"

고 김주익 지회장의 부인 박성희씨는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아이들 위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됐으면 하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최근들어 여러 언론에서 자살했던 노동자들에 대한 특집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취재를 요청해 오는 경우가 많아도 전화를 잘 받지 않으려고 한다. 어렵게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했을 때도 쉽게 통화가 되지 않았다.

29일 저녁 남편이 사용하던 이전 휴대전화번호로 전화를 했을 때, 그녀는 의외로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해왔다. 그녀의 새해 바람은 간단하면서도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었다. 바로 "예전처럼 되돌아 갔으면 한다"는 게 그녀의 바람이었다.

"아이들이 예전처럼 생활로 돌아갔으면 하고, 주위 분위기도 예전처럼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들 어렵고 한데, 모두가 잘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김주익 지회장의 부인이 아들의 손을 잡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고 곽재규] 울먹이는 부인 "생활이 정지된 느낌"

한진중 공장 지하 11미터 도크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던 곽재규씨의 사인에 대해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찰은 '실족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노조 지회에서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자살이라 보고 있다.

고인의 부인인 정갑순(50)씨는 "숨만 쉬고 산다"고 말했다. "생활이 정지된 느낌이다. 텔레비전 화면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며, 남편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착각을 할 때가 많다."

그녀는 두 딸과 친정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최근 남편의 49재 때 솥발산에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 큰 영정 하나를 집에 가져왔는데, 아이들이 매일 학교 다녀와서는 인사를 하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영정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녀도 역시 "영정을 보면 남편이 옆에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화선을 타고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새해 바람을 묻자 그녀는 "다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죽는 일이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지난 11월 16일 한진중공업에서 치러진 고 김주익·곽재규 장례식
ⓒ 오마이뉴스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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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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