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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유성호
녀석은 물과 볕이 보충되자 하루가 다르게 커갔습니다. 한나절만에 물을 반컵씩 빨아먹는 녀석을 보노라면 '먹깨비'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키로만 자라던 녀석은 어느 날부터 고유의 유전신호를 받아서인지 가로로 가지를 뻗기 시작했습니다.

가로로 뻗어나는 가지는 높이로 자랄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습니다. 처음 녀석이 자리잡았던 부엌 창턱은 이제 비좁아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또 양갈래로 가지를 뻗은 녀석의 자태가 그럴듯해 실내장식용 소품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에 거실 안쪽 식탁으로 강제이주(?) 시켰습니다.

ⓒ 유성호
녀석은 강제이주지인 볕도 없는 식탁 위에서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텨 나갔습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식물적 본능을 자극했는지 이주 초기에는 볕을 받을 때보다 더 푸르고 힘차게 가지를 뻗는 듯 했습니다. 저는 녀석이 볕이 없어도 잘 사는가 보다 싶어 열심히 물만 갈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푸르던 녀석의 이파리들이 하나 둘 누렇게 변색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랄 만큼 자랐나'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녀석을 돌보는 일을 아내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 죽어 있는 이파리를 떼어내고 가지를 잘라주는 일만 했습니다. 손을 타는지 녀석은 점점 기력을 잃어갔습니다.

아내는 "햇볕을 못 받으니 죽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녀석에게 필요한 것은 죽은 나뭇잎을 떼어주는 일이 아니라 원초적인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서둘러 녀석을 양지바른 베란다로 옮겼습니다.

ⓒ 유성호
가지를 자르고 죽은 이파리를 떼어내는 것이 녀석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란 생각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린 녀석의 몸에 쇠붙이 가위를 들이댔을 때 느꼈던 공포와 채 죽지도 않은 이파리를 당겼을 때의 아픔.

그리고 다람쥐꼬리 만한 햇볕 한줌조차 없는 침침한 거실에서 느꼈을 법한 삶의 갈망. 녀석이 죽어간 이유를 돌이키자 저의 이기심이 부끄러웠습니다. 눈요기로만 녀석을 바라본 한 인간의 이기심이 녀석을 사지로 몰아 넣은 것입니다.

오랫만에 볕을 쬐고 있는 녀석은 행복할까요. 정말이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인간에게서 받은 심신의 상처를 볕에 말끔히 표백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애완동물과 관상식물을 키우며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녀석의 튼실한 회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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