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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의 새로 나온< Jhun In Kwon 3 Destiny > 의 첫 곡 '봉우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김민기의 곡으로 너무도 잘 알려진 음악이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길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한국문화의 성격 중에는 종적인 느낌의, 위에서 밑으로 줄 서게 하는, 그것이 있어서 필자는 여기서 그를 형이라 불러본다. 인권이형은 노래를 빌어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

형이 전에 올라가 보았던 봉우리와 흘린 땀, 흘린 외로움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에는 '다시 이제부터'라는 그 노래가 있기도 했다.

아름다웠던 날이 지나고/ 차가운 바람에 갈길 잊었나/ 돌아올 수도 없이/ 찾아갈 수도 없이/ 내 눈은 발끝만 보고 있네/ 나는 이제 어디쯤 온 건가/ 아직도 대답은 들리지 않네/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쯤 온 건가/ 내 눈은 햇빛에 어지러운데/ 머리카락이 내 눈 가리고/ 내 손은 만질 곳이 없으니/ 다시 가야겠지/ 다시 가고 싶어/ 다시 시작될 내일이 있으니.....

대한민국 곳곳에는 단 한번도 C반항(?) 과 복수C(?)를 실천하지 못하며, 그럴 수 있는 힘도 없고,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하다고들 말하고, 찬바람 부는 이 겨울에 마음 쓸쓸한 '반칙왕'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그들의 가난한 '소주가 있는 밥상'처럼,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는 노래들 중에, 형의 노래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형은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힘든 때를 만나 걱정하는 사람, '다시 이제부터'라는 노래를 들어본 사람들은 연주 시간이 짧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아낌을 받는 노래들 중에는 의외로 짧은 곡들이 많다. 사람들이 단순하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때로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노래'나 '시'들은 도처에서 그런 모습으로 발견된다.

길게 할말을 늘어놓아도 좋은 음악이 많겠지만, 가끔은 '비만형'의 음악도 발견된다. 엉덩이 보다 배가 더 큰 음악들이 있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형 조금 오래 걸렸지만 새판 나와서 반가워요. 그렇지만 별 무리가 없다면 언젠가는 형이 '한영애'처럼 뽕짝 '바톤 터치'를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고 싶고, 주변의 애호가들도 간혹 그렇게들 말하는데, 직접 만나본 적도, 말해본 일은 더욱 한번도 없다.

세대간의 '바톤 터치', 그것은 형의 아버지, 형의 형,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들의 형들이 때로 술에 취해, 어두운 동네 골목 어귀에서 오줌 누고 돌아서며, 구성지게 불러왔던 고전들을 다시 한번쯤 불러주면 어떻겠냐는, 그래서 '세대를 잇는' 노래를, 형의 음악언어, 혹은 형이 좋아하는 Rock으로 들어보고 싶다는, 그런 말이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형은 결과적으로, 하고싶은 말을 음악의 어깨를 짚어서 열어놓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고픈 욕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비유의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막스,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필요에 의해서 다른 이야기는 빼고, <언어란 의식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이며, (중략) 의식과 마찬가지로 언어는 '다른 인간과 교류'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그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비로소 발생한 것이다>. 나는 '사회적 교류의식'을 생각해 보며, '다른 인간과 교류하고 싶다는 욕구' 와 '그 절박한 필요성' 운운의 문장에 음악을 덧씌워 말해보고 싶다.

아니 음악이야말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음악의 언어적 측면을 말할 때만 유용할 것이다.

'음악은 분명 인간의 언어임'을 전제할 때, 음악은 언어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작은 의미의 언어를 강물에 비교해 보면, 음악은 막대하게 넘치는 홍수와도 같다. 음악은 큰 의미의 언어다. 그래서 음악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교류의식을 설명하는데 충분하고도 남는 소재일 것이다. 사실 언어를 넘어서 혁명과도 같은 일을 야기 시킬 수 있는 힘이 음악에는 있다. 그렇다고 형의 음악이 거기까지 간 것은 아니다.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인권이형의 하고싶던 이야기로 시작되는 새 음악들은 형이 속한 우리사회와 그 나름의 교류의식에서부터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음악을 통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말하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음악에서는 사람마다 언어가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형은 자기 음악언어를 갖고있는 사람중 한 사람일 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유의 음악적 표현력을 갖는다는 그 한가지의 일을 생각해볼 때,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만한 사람은 알 일이다. 그래서 형은 형인 것일지도 모른다.

형의 할 얘기에 대한 절박한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해주는 또 하나의 배려가 있다.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은 사진들이 그것이다. 형과 같은 나이 또래라던, 유명한 사진가 김중만 형의 사진이다. 고비사막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을 볼 때면, "이렇게 남기고 싶었구나"의 생각이 든다.

예전에 '레디오 해드'의 '엠네시악'이라는 음반의 한정판을 처음 구 했을 때, 16cm 곱하기 19cm의 크기여서 보통의 CD와 같이 놓기에는 너무 크고, 할 수 없이 책장에 꽂아놓을 수밖에 없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런데 형의 새 음반은 16cm곱하기 22.8cm정도로 더욱 크다. 어쩔 수 없이 책장에 들어 가야할 것이다. 의도적인 배려다. "누워있게 하지 않으려거든 책장에 꽂으시지요. 음악 들으면서 사진도 좀 보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혹시 형이 "디자이너가 그렇게 만들었는데, 나는 그런 생각 해 본적 없어"라고 말할까 걱정이다. "형의 노래를 아끼는 사람들은 아직 많아요. 힘내서 더 좋은 노래 많이 해주세요." 아! 잠깐, 비슷한 때에 나온 '정원영'의 C.D도 크기와 모양이 너무 비슷하다.

우리들의 사회는 어디든 먼저 들어가면 선배고, 나이 먹으면 형이다. 윗사람은 위로 또는 앞으로 가 줘야만 한다. 그래서 형이 친구 되어 남아있기 어렵다.

필자는 인권이형이 요즘 세대들에게도 친구로 남아 있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것이 생각 돼서 '형'이라는 단어를 조금 많이 사용해 본 것 같다.

No Music No Life. 그리고 행복한 성탄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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