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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지쳐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잔다
모두들 지쳐 점심 식사 후 낮잠을 잔다 ⓒ 양승경
7월 2일부터 22일까지 20박 21일 동안 대구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597.5Km를 걸어야 하는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올해의 테마가 ‘백두대간 대장정’ 이었기에 험난한 령을 세 개나 넘어야 하는 힘든 코스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해서 제 자신이 단단해 질 수만 있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각오로 마음을 독하게 먹었습니다.

그러나 대장정이라는게 결코 마음만으로 쉽게 할 수 있는게 아니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발바닥에 차오르는 물집과 아파오는 근육, 게다가 기간 내내 내리던 비는 우리의 행진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비에 젖은 신발을 신고 물에 팅팅 부은 발로 걷다보면 물집은 악화되기 일쑤였고, 아픈 물집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걸음은 다리와 골반의 통증으로 이어졌습니다.

성하지도 않은 몸 상태로 597.5Km의 먼 길을 혼자서 걸으라면 아마 어느 누구도 걸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이끌어 주고 내가 이끌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믿어주고 나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의 연대의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나 하나 강해져서 돌아가면 큰 수확'이라고 여겼던 처음의 제 생각은 너무도 이기적인 것이었습니다. 20여일의 고된 대장정 기간 동안 나를 지탱하고 붙들어 주었던 것은 ‘나 하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143명의 동지들’ 이었으니까요.

대장정 초반, 힘들기만 했던 하루의 행진도 10여일이 지나면서부터 차차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집과 근육의 통증까지도 즐길 정도가 되었을 정도니 말입니다. 너무 힘들어 옆사람에게 말도 걸지 않고 앞만 뚫어져라 보며 걷던 대원들도 이제는 노래까지 부르며 걷는 것 자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목적지인 통일전망대도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대장정 동안 큰 힘이 되어준 조원들과 함께
대장정 동안 큰 힘이 되어준 조원들과 함께 ⓒ 양승경
드디어 대장정의 마지막 날. 우리의 완주를 축하해 주려는 듯, 그 날도 어김없이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습니다. 대장정 기간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비.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비를 맞으며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비 마저도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완주의 기대감도 컸지만, 대장정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요. 한여름이었음에도 이 날의 비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더욱 더 싸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중식지에서는 모두들 추위에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원들이 서서히 하나로 뭉치면서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에 떠는 상대방을 녹여주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몸을 부볐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는 20일 동안 이렇게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후 다시 30여분의 행진이 이어졌고, 곧이어 통일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외쳤던 통일전망대! 우리의 목적지! 대구에서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걸어온 이 곳!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아나왔을까요. 성하지도 않은 다리로 모두들 “와아!” 함성을 지르며 통일전망대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나 하나의 승리가 아닌 우리 모두의 승리였습니다.

완주식에서 조원들과 함께
완주식에서 조원들과 함께 ⓒ 양승경
오늘로 정확히 대장정을 마친지 다섯달이 되는군요. 저는 대장정을 통해 제 인생의 가장 훌륭한 보물을 얻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강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너무나 소중하고도 멋진 인연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고통 속에서 함께했던 우리의 우정들이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대장정 이후 사람들은 저에게 이렇게 묻곤 합니다. 또다시 대장정을 하라면 할 수 있겠냐고 말입니다. 그럼 저는 주저없이 대답합니다. 나를 믿어주고 내가 믿어줄 사람들이 함께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자. 우리는 하나다 국토대장정. 젊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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