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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궁중요리전시에서 본 음식중에 떡을 쌓은 그릇, 이 그릇이  축의금 대신 사용되었다는 소래라는 그릇과 비슷하게 닮았다고 한다.
지난번 궁중요리전시에서 본 음식중에 떡을 쌓은 그릇, 이 그릇이 축의금 대신 사용되었다는 소래라는 그릇과 비슷하게 닮았다고 한다. ⓒ 궁중음식연구원
메밀국수는 집에서 만들지 않고 메밀국수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에서 샀다. 미리 주문을 하면 깊숙한 유기그릇에 갓 뽑은 메밀국수를 차곡차곡 집어넣어 "유기그릇 하나 당 얼마" 하는 식으로 팔았다고 하는데 그 단위를 '밥소래'라고 했다.

이 '메밀국수 밥소래'의 흔적은 현진건의 소설 빈처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늦게야 점심을 마치고 내가 막 궐련〔卷煙〕한 개를 피워 물 적에 한성은행(漢城銀行) 다니는 T가 공일이라고 놀러 왔었다. (중략)
그는 성실하고 공순하며 소소한 소사(小事)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물이었다. 동년배(同年輩)인 우리 둘은 늘 친척간에 비교(比較) 거리가 되었었다. 그리고 나의 평판이 항상 좋지 못했다.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 애는 돈푼이나 모을 것이야! 그러나 K(내 이름)는 아무짝에도 못 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諺文) 섞어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고 제 주제에 무슨 조선에 유명한 문학가가 된다니! 시러베아들놈!"

이것이 그네들의 평판이었다. 내가 문학인지 무엇인지 하는 소리가 까닭 없이 그네들의 비위에 틀린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네들의 생일이나 혹은 대사(大事) 때에 돈 한푼 이렇다는 일이 없고 T는 소위 착실히 돈벌이를 하여 가지고 '국수밥소래'나 보조를 하는 까닭이다.... <현진건 /빈처 중>


은행에 다니는 T는 매사 성실해서 친척 애경사에 메밀국수 한 밥소래 정도는 빠지지 않고 늘 부조해 왔지만 소설가인 주인공은 말이 소설가지 변변하게 버는 돈이 없는 고등 실업자 신세가 되어 친척 애경사에 당연히 해야할 부조조차 못해서 욕을 먹는다. 이 장면에서 할머니 이야기 속에 나왔던 그 낯익은 음식의 흔적을 찾게 되었으니 어찌나 반갑던지…. 상상이 활자화되어 현실 속에 나타난 그 느낌은 마치 동화 속에서만 보았던 주인공이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잘 불지 않는 메밀국수

하여간 손님들마다 부조로 들어오는 메밀국수 한 밥소래의 양은 꽤 많았다고 하는데, 그 메밀국수를 뜨거운 육수 국물에 건져 올려 뜨겁게 한 다음 그릇에 담고, 고기 고명을 듬뿍 올려놓는고, 황백 계란 지단으로 멋 낸 다음 뜨겁게 간을 한 양지머리 곤 국물을 넣어 잔치음식과 하께 손님상에 놓았다고 한다.

이 때 고기 고명이라 하면 불에 장시간 물을 넣고 푹 고아 연해진 소 양지머리와 사태덩어리를 먹기 좋게 썰어 파, 마늘, 국간장, 참기름 등으로 조물조물 양념해 놓은 것인데, 그 뜨거운 국물과 어우러진 메밀국수의 부드러움과 감칠맛이란 상상만 해도 정말 기대되는 맛임에 틀림없다.

할머니의 맛있는 메밀국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물에 삶아 놓았다가 건져 올린 밀가루 소면은 시간이 오래 되면 불어서 먹지 못하게 되는데, 그 메밀국수는 익혀서 놋그릇에 건져 올린 것인데 불지 않나요?"
"오래 되면 불기는 하겠지 그래도 그 메밀국수로 손님상을 다 차리니 생각보다 빨리 불지는 않는다고 해야겠지."

하루종일 손님을 치러 낼만큼 불지 않는다는 그 메밀국수라…. 참 신기한 메밀국수가 아닐까?

"어떻게 만들었길래 불지 않을까? 참 신기한 국수네요."

할머니의 메밀국수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나지만 나의 호기심은 어렸을 때나 나이 들었을 때나 심심할 때마다 이야기 속의 메밀국수의 흔적을 쫓아다녔다.

요즘 가끔 냉면 집에서 뜨거운 국물에 냉면사리를 말아 내놓는 온면을 볼 수 있는데, 혹시 이야기 속의 메밀국수가 아닐까 해서 어머니를 사드린 적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메밀국수의 기억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요즘 접하는 메밀국수라면 메밀냉면 사리나 막국수 아니면 일본식 메밀국수인 소바인데, 일본 메밀국수인 소바는 메밀가루를 반죽해서 밀대로 밀어 국수를 잘라내는 방식이므로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논외로 하더라도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냉면 사리나 막국수의 경우 막국수는 국수색깔이 너무 까맣고, 냉면사리는 굵기는 비슷해도 금방 불는다. 이런 점에서 예전 잔치국수로 쓰인 메밀국수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도대체 메밀가루에 무엇을 같이 섞어서 반죽했길래 오래도록 불지 않고 하얀 소면굵기의 메밀국수를 만들 수 있었을까?

적지 않은 나이를 먹는 동안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결국 어머니의 기억의 맛을 충족시키는 이야기 속의 메밀국수의 흔적은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문득, 어쩌면 예전과 같은 메밀국수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예전 어머니의 머리 속에 각인되었던 그 모양과 맛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뀐 만큼 과거의 입맛과 요즘의 입맛이 다른 것이라면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예전과 같은 맛을 느낄 수 없지 않은가.

비근한 예로 우리가 아무리 옛날 자장면이란 이름을 가진 자장면만 골라 먹는다고 해도 예전 그 어렸을 적 자장면의 오묘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더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나의 추측이 보기 좋게 틀려서 어머니 기억 속의 그 메밀국수 만드는 곳을 찾게 되어 한 젓가락 후루룩 먹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꿈꾸면서 끊임없이 뜨거운 메밀국수의 맛에 관한 공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저와 함께 따끈한 메밀국수 한 그릇 함께 찾아보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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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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