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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손가락이 컴퓨터 자판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가끔은 모니터 화면에 대화창이 뜨면 채팅을 하기도 했다. 나이 어린 소녀의 대화창 글에 육두문자가 보인다. 얼굴은 아주 어려 보이는 데 세상풍파 다 겪은 사람처럼 세상을 저주하는 글도 보인다.

어린 소녀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파주시의 한 청소년보호단체 자원봉사자 사무실. 이 사무실은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 자원봉사자'사무실로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의 쉼터이기도 하며 청소년들의 상담실이기도 한 곳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청소년 보호를 위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는 관계로 퇴근을 한 후 자원봉사자 회장겸 파주시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단 단장으로 있는 친구(보험업·50세)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들렀다. 친구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어린 여학생 혼자서 컴퓨터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컴퓨터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사람이 들어 온 것도 모르고 있었으며, 컴퓨터에서는 계속 육두문자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봐, 학생은 어느 학교에 다녀?"
"저요? 서울서 다니는데, 지금은 학교에 안가요."
"왜 안가?"
"저, 집 나왔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왔니?"
"어제 채팅으로 사귄 친구들 만나러 와가지고 소주먹고 담배 피우다가 어떤 아저씨한테 걸려서요."
"그럼, 넌 어제 어디서 자고 밥은 먹었니?"
"네. 여기 계신 할머니하고 같이 자고 밥은 할머니랑 먹었어요."


할머니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친구의 모친(75)이다. 서울 답십리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 아이는 15세로 중학교 3년생이란다.

가출해 pc방 등을 떠돌다가 채팅으로 사귄 친구들을 만나러 경기도 파주까지 오게 되었고 밤 늦은 시간에 어린 학생들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 것을 목격한 지역 회원(파주 모 병원근무)손에 이끌려 이곳 사무실에 인계된 것이다.

중3학년이라는 이 아이는 나이에 비해서 더 어려 보였다. 초등학생으로 보일 만큼 왜소해 보이는 아이였다. 업무차 밖에 나갔던 친구가 돌아와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더니 대충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낮에는 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에 보내 목욕을 시키고, 속 옷도 한 벌 사서 입혀서 아이의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너무나 끔찍하고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이 사회의 성인 남성들에 대한 치를 떨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을 대충 요약해보면 이렇다. 가출을 해 여기저기 pc방 등을 전전하며 떠돌다가 수중에 돈이 떨어지자, 채팅으로 만난 성인들과 원조교제도 몇 번 하게 되었단다.

어떤 못된 30대 중반 아저씨는 밤새도록 자신을 괴롭혀 하혈을 하고 쓰러졌는데 자신을 내팽개치고 달아나버렸다는 것이다.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정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더 처참했다.
"언젠가는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나면 죽일 거예요. 돈을 벌어 조폭 오빠들을 사서 말이에요."

몇 시간 후 학생의 어머니가 울면서 아이를 데리고 갔지만 마음이 여간 무겁지 않았다. 전국에서 가출을 하는 청소년들이 어디 이 학생 말고 한 둘이겠는가?

가정사정으로 혹은 성적을 비관하여 친구들의 꾐에 빠져 많은 청소년들이 가출을 하여 이 사회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이 어린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뻔하다. 돈 때문에 성매매를 하게 되고, 심지어는 티켓다방에 취업을 하기도 한다.

섹스 공화국

국무총리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는 12월 18일 5차 청소년 대상 성 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를 했다. 2001년 8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모두 1926명의 청소년 대상 성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 바 있으며 앞으로는 신상공개자들의 얼굴까지 공개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청소년보호위원회에 따르면 성폭력은 줄고 성 매수나 성 매수 알선은 증가 추세라고 한다. 원조교제 및 성 매매에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청소년보호위원회에 따르면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청소년들과 성 매수시 약속한 만큼의 대가를 주지 않거나 전혀 대가를 주지 않는 경우도 31%나 되며, 성 매수의 피해자의 연령대가 주로 15~16세의 어린 나이라는 점이다.

한국형사 정책연구원이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전국의 성매매 관련업소 5403곳을 조사한 결과 국내 성매매에 종사하는 종사자 수가 33만명에 이르며, 경제규모로는 연 24조 원으로써 국내 총생산(GDP)의 4.1%로 국내 농어업(4.4%)의 비중과 맞먹는 규모라는 충격적인 조사가 있었다. 가히 섹스 공화국이라고 할만한 수치들이다.

청소년들의 생활권과 생존권의 보장은 당연히 국가나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청소년의 성장과 발달은 단순히 인위적이고 폐쇄적인 학교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성 세대가 자신들의 문화적 풍요와 경제적 부를 축적하기 위해 조성해 놓은 각종 유해환경에 청소년은 방치돼 있기 때문에 유익한 요소보다 부정적인 문화적 요소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인터넷의 독특한 매력과 재미와 흡인력에 의하여 자의반 타의반으로 음란물을 접촉하게 되고, 끊임없이 빠져드는 게임중독과 원조교제, 성폭행, 초상권 침해 등 강력범죄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원조교제를 했다는 가출 여학생을 보니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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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소시민들의 살아가는 애환과 이웃들의 이야기및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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