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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발사들
사랑의 이발사들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는 12월 11일(목), 인덕원 대림아파트 경로당 박명환 노인회장의 훈훈한 제보 따라 평촌 벌말 경로당을 찾았다. 오전 11시, 할아버지 몇몇이 모여 사랑의 이발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의 이발사들이 도착하며 조용하던 경로당이 젊은이들의 목소리로 생기가 넘친다. 요구르트를 돌리며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돗자리가 펼쳐지고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졌다.

이발사에게 맡기고 지긋이 눈을 감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능숙한 솜씨로 춤추는 가위 아래서 더부룩했던 할아버지의 머리는 이내 정갈한 모습으로 탈바꿈되었다.

김동학(73세) 사무국장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년이 넘도록 어찌나 열심히 봉사를 하는지, 하두 고마워서 우리 경로당 자체 내에서라도 감사패를 생각하고 있었어요"라며 칭찬을 한다.

최면식(87세)할아버지는 "나, 낼 장가든다고 멋있게 잘라 달라고 그랬지" 익살스럽게 농담까지 던진다.

이종호 점장
이종호 점장

"아 글쎄, 무료로 머리를 깎아 주는 것도 고마운데 이발이 끝나면 청소도 말끔히 해 놓고, 젊은 사람이 여간 정성이 안이야."

김명주(84세)할아버지는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영업 시간을 쪼개가며 이런 일 하는게 워디 쉬운 일인가. 우리가 고마워서 대접해야 하는데 노상 올 때마다 음료수나 사탕을 나눠주니..." 노인들의 칭찬은 끝이 없었다.

칭찬의 주인공은 남성헤어컷 전문점인 평촌 블루클럽 이종호(40세) 점장이다. 2001년 11월, 이곳에 문을 연 후 매월 2째 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종업원인 두 이발사와 함께 노인들에게 무료 이발을 해 오고 있다.

이 점장은 케이블방송에서 사진기자로 있을 때부터 블루클럽을 이용하며 남성전용 미용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인덕원 체인점을 오픈 했지만, 그렇다할 기술은 없다.

부인 정문자(36세)씨가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적극적인 협력자로 나섰지만, 아직은 배우는 단계다. 이 점장의 하는 일은 보이기 위한 체면 따위는 없다. 손님에게 차 접대와 청소. 노약자와 어린이 머리 감기기 등 그저, 굿은 일은 도맡아 하는 서비스 맨 일뿐이다.

이발 후, 청소까지
이발 후, 청소까지

할아버지들이 이발하는 경로당에서도 거울을 닦고, 일하기 편하도록 돕는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미용실과 경로당의 거리는 50m 정도의 위치다.

봉사한다고 문을 닫으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불편을 주는 일이기에 한 이발사는 미용실에 남아서 손님을 받고, 두 명은 봉사하는데 투입시키고 있다.

이 점장은 "이웃을 사랑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아직 내세울게 없다"며 겸손해 한다. "할아버지! 혹시 편찮으시든지 어디 방문하느냐고 무료 이발 시간을 놓치면 언제고 블루클럽으로 오세요"라고 말한다.

마침, 신태환 할아버지가 "동부인해서 여행 가느냐고 이발의 기회를 놓쳤다"며 찾아왔다. 이 점장은 "그냥 가세요" 했지만, 할아버지는 "나도 영업을 해 봤지만, 영업장까지 와서 이건 경우가 아니지" 작은 실랑이를 벌이면서까지 요금을 지불했다고 한다.

이발 끝난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산뜻하고 정갈해 보인다. "더 하실 분 없으세요." 다 끝나 갈 무렵, 재차 확인을 한다. 할아버지들 틈에서 "왜 남자들만 해 주는 거여" 할머니 한 분이 다소 불만에 찬 기색을 보인다. 남성전용이다 보니 할머니들 까진 생각을 못했다.

거울을 닦는 이종호 점장
거울을 닦는 이종호 점장

"할머니! 제가 배우는 단계라 잘은 못하지만 다듬어 드릴게요" 부인 정문자씨가 양말을 벗고 머리카락이 수북한 돗자리위로 성큼 들어섰다. 금새 할머니의 표정이 밝아진다.

"제 식구가 배우는 단계라서 아직 잘은 못하거든요" 이 점장의 말에 "암시렁케라두 잘러만 주면 고맙지" 백발에 검버섯이 핀 할머니의 얼굴이 유난히 쪼글거려 보인다.

이 경로당에는 100여 명의 노인회원들이 있다. 이 점장은 내년에는 앞에 있는 목욕탕이 문을 열어 미용실이 번창하게 되면 노인들께 식사라도 대접해 드릴 생각이다.

그리고, 부인 정문자씨의 기술이 연마되는 대로 할머니들의 커트와 누워있는 환자들까지 봉사할 기획으로 생각이 많다고 한다. 자라나는 세 딸이 올 곧게 자라도록 부모로서 언제나 산 교훈이자 표본이 되고 싶은 게 이 점장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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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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