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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프라인 <느릿느릿이야기> 제2집. 84쪽. 느릿느릿이야기 발행
오프라인 <느릿느릿이야기> 제2집. 84쪽. 느릿느릿이야기 발행 ⓒ 느릿느릿 박철
나는 평소 수명이 다된 형광등처럼 껌벅거리길 잘 하는 건망증의 달인(?)이다. 건망증이 심하면 정리정돈이라도 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올해 우연한 기회에 무엇인가 내 자신의 삶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여기저기 잡지나 신문에 상당한 양의 글을 써왔다. 그런데 그것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컴퓨터에 지난 2-3년 저장해 놓은 원고도 하드디스크 고장으로 공중분해가 되고 말았다.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홀가분해서 좋은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쩐지 허전한 것이 적자 인생 같은 느낌이 찾아들었다. 그래서 궁리를 한 것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거기에 다 글을 정리해 놓으면 도둑맞을 일도, 공중분해 될 일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느릿느릿이야기> 홈페이지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두어 달 동안 워밍업을 하다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는이야기>의 특징은 삶의 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결코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글을 올렸다. 처음 6개월은 매일 한 꼭지씩 글을 올렸다. 그동안 주로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은 유년시절 이야기, 교동이야기, 가족이야기, 자연을 통해 경험한 단상들이었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느릿느릿이야기> 홈에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초부터 박철의 <느릿느릿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91회 글과 사진을 올렸다. 그동안 단 한 차례 생나무 미역국을 먹었다. 괜찮은 성적이다. 그런데 솔직한 고백이지만, 단 한차례 생나무 미역국을 마셨던 글은 내 딴에는 깊이 생각하고 쓴 글이어서 지금도 애착이 가는 글이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처음으로 “여보, 책상위에 뱀 나타났어.”라는 제목의 글이 메인톱에 올랐는데, 조회수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3만7천만회가 넘게 조회되었다. 자동으로 많은 댓글이 올라왔다. 별의 별 내용이 다 있었다. 재미있다거나 격려성의 댓글도 있었지만 비난에 가까운 저급한 내용의 댓글도 있었다.

또 한번은 “그대의 마음에 바다가 있는가?”라는 글이 톱으로 올랐는데 어떻게 동해에서 일몰 구경을 할 수 있겠냐는 거친 항의가 들어왔다. 그렇게 강력하게 나오니, 30년 전 내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싶어 동해안 현지 공무원을 통해서 사실 여부를 확인 한 적도 있었다. 동해안에서도 여름철 날씨만 좋으면 근사한 노을을 볼 수 있노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상식을 기초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꼭 절대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느릿느릿 제1회 가족모임. 2003.10.3. 교동 지석회에서
느릿느릿 제1회 가족모임. 2003.10.3. 교동 지석회에서 ⓒ 느릿느릿 박철

<오마이뉴스><사는 이야기>에 글을 올리면서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을 대하든지, 자연을 대하든지 좀 더 깊이 있는 사유(思惟)와 관찰을 하게 된 점이다. 내면의 깊은 성찰을 동반하지 않고는 어떤 형태의 글이든 붓장난으로 끝날 위험이 있다. 나는 그 점을 늘 조심하고 있다. 가급적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지인들 가운데는 나의 이런 행적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나 크게 괘념치 않는다. 적어도 내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인기와 호사에 영합하는 속물은 아니라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한 꼭지의 글을 쓰기 위해 더 많은 묵상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한다. 내가 쓴 글이 번듯하고 격조 높은 글이 아니어도 만족한다. 저자거리의 값싼 물건처럼 취급되어도 좋다. 그러나 나름대로 나의 글은 적지 않은 산고(産苦)의 과정을 거쳤다고 자부한다. 그러니 부끄러워 할 일이 무엔가.

어사지간 교동섬에 들어와 산지 만 7년이 되었다. 시골에서 5년 정도 살다보면 사람들의 특성이 다 드러난다. 누구네 집에 숟갈이 몇 개 있는 것 까지 다 알게 된다. 사람을 만나도 건성으로 만나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신비감도 사라진다. 매사에 진지함은 떨어지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된다. 그러다보면 편안한 일상에 쉬이 빠져들게 되고 자기 발전은 멈추고 만다.

느릿느릿 가족들이 교동 들놀이패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느릿느릿 가족들이 교동 들놀이패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 느릿느릿 박철

사물에 대하여 깊은 생각과 관찰을 하다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 느낌이 강렬하게 찾아올 때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삼각프리즘으로 하늘을 바라볼 때, 황홀한 일곱 가지 무지개 색을 볼 수 있었듯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자연에서 전과는 확연히 다른 좀 더 심화되고 밀착된 느낌을 받는다. 사람과 자연과의 일체감이 아닌가. 그것이 가장 소중한 열매이다.

그동안 <오마이뉴스>는 나의 경직되고 방만한 삶을 반듯하게 정리해주고, 인생을 새롭고 조망(眺望)해주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사는이야기>를 통해 함께 마음과 뜻을 나눌 수 있는 벗들을 만나게 된 것도 내게 있어서 행운이고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국내 뿐 만아니라 외국에서도 <느릿느릿> 문을 두드린다. 참여하는 분들도 직업군도 다양하다. 현직교수, 교사, 변호사, 의사, 화가, 직장인, 자영업, 주부, 학생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느릿느릿이야기> 가족모임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격월간으로 잡지도 발행하게 되었다. 이번 주에는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이야기를 엮어 <시골목사의 느릿느릿이야기>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박철 산문집 <시골목사의 느릿느릿이야기> 나무생각. 270쪽. 9800원
박철 산문집 <시골목사의 느릿느릿이야기> 나무생각. 270쪽. 9800원 ⓒ 느릿느릿 박철
이심전심, <느릿느릿>의 소중한 마음과 뜻이 전해져, 느릿느릿 가족들 간에 깊은 친화(親和)와 신뢰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무엇보다 ‘느릿느릿’이라는 개념이 아직은 미미하지만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게 되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이 모든 것이 <오마이뉴스>가 엮어준 선물이요 열매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나의 삶의 꼭대기(Top)에는 <오마이뉴스>가 있었다. 나는 등산하는 심정으로 <오마이뉴스>를 올랐다. 나의 고민과 삶의 흔적이 <오마이뉴스>에 고스란히 배여 있다. 물론 산에 올랐으면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한다.

<느릿느릿이야기>라는 나무는 계속 자랄 것이다. 큰나무로 자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삶에 지친 사람들 누구라도 쉬었다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며, 목마른 사람에게는 한 바가지 맑은 샘물을 전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라는 창(窓을) 통해서 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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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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