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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당신이 지금 지옥을 걷고있다면 계속 걸어가세요" 가슴 속 담아논 말을 써서 전시한 막말하기 코너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당신이 지금 지옥을 걷고있다면 계속 걸어가세요" 가슴 속 담아논 말을 써서 전시한 막말하기 코너 ⓒ 성폭력상담소 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마련한 ‘제1회 생존자 말하기 대회’가 지난 11월 29일 떼아뜨르 추 극장에서 비밀리에 열렸다.

성폭력상담소는 ‘말하기’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며 ‘성폭력’이라는 고통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이번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통해 치유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행사장에는 그동안의 성폭력 생존자들의 생각과 감정에 관해 알아볼 수 있는 전시가 1, 2층에 마련되었다. 이 곳에는 행사 참여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과 다양한 전시 작품, 그리고 참여 공간으로 구성되었고, 행사장은 구석구석 다양한 전시물들로 꾸며졌다.

골목길 건물 뒤로 숨은 옥외 입구를 찾아내면, 지금까지 갖고 있던 시름을 모두 털어 버리고 행사장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오길 바라는 '시름을 터는 발판'이 놓여 있다.

호두만한 석고 씨앗을 깨면 그 안에서 참여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덕담이 나오는 '100을 헤아리는 치유의 씨앗'과 준비된 종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곳으로, 이미 쓰여진 말은 천장으로부터 늘어뜨려져 있기도 하고 벽에 붙어있기도 한 '막말하기' 코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온 사람들 중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1:1 상담방과 휴게실도 마련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매우 소중”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말하기 대회 본 행사는 120여명의 신청자 중 불참자가 거의 없었으며 14여명의 말하기 참가자들도 모두 참석했다.

말하기 참가자들은 친족 성폭력, 데이트 성폭력,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 등 자신이 겪은 일들과 당시의 감정,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 생존자로서의 다짐 등을 시 낭송·퍼포먼스·미술 작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냈다. 또 일부 참석자들은 즉석에서 말하기 신청을 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오늘의 기억이 지치고 힘들 때 마음 한구석에 빛날 수 있길 기원할게요!" 석고씨앗속에 담긴 덕담.
"오늘의 기억이 지치고 힘들 때 마음 한구석에 빛날 수 있길 기원할게요!" 석고씨앗속에 담긴 덕담. ⓒ 성폭력상담소 제공
“지난 13년 동안 본 상담소의 반성폭력 운동과 생존자들과의 만남은, 생존자의 '말하기'가 치유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가슴으로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피해자가 아니라 용기있고 힘있는 그리고 변화하는 생존자로서 세상을 향해 이 경험을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이번 제1회 생존자대회의 취지를 설명한 성폭력상담소 정유석 간사는 “성폭력 생존자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밖으로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고 말했다.

모두 4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말하기 행사에서 듣기 참여자들은 말하기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고 격려하며 행사 내내 자리를 지켰다.

권김현영 간사는 “첫 참여자 때부터 터져 나온 눈물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고, 듣기 참여자들은 말하기 참여자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같이 아파했다”고 전했다.

이번 말하기 대회 듣기 참여자 중 한 사람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성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인식과 사회의 무책임이 변하지 않았다”고 개탄하며 가해자들의 의식이 전혀 변하지 않고 여전히 뻔뻔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대회는 말하기 대회뿐만 아니라 생존자들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부두인형을 통해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총괄 진행을 맡았던 권김현영 간사는 “부두인형을 가해자라 생각하고 마음껏 때리는 복수의 방이 가장 호응이 높았다”고 전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외국의 경우 15년 전부터 ‘스피크 아웃 데이(Speak out day)’라는 이름으로 말하기 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며 앞으로 매년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성폭력 범죄 발생률에 비해 신고율은 극히 낮고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수사와 재판 때문에 오히려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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