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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생활의 발견>표지
ⓒ 현실문화연구
그간 서울을 한 번도 떠나 살아 본 적 없던 나는 최근에야 서울 근처로 비껴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아침과 밤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서울이란 도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소중한 친구들이 하나 둘씩 이민을 가거나 지방으로 터전을 옮기면서다. '그래, 잘들 가거라, 나는 모든 것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이 도시에서 끝까지 살아내리라.'

<서울생활의 발견>은 내게 서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이 책은 서울에 대한 탐구나 연구가 아니다! 도시인의 일상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장소로서의 서울을 만날 수 있다. 사실 표지의 사진과 함께 명조체로 새겨진 제목은 도시 비평의 굳은 이미지를 물씬 풍긴다.

다행히 8명의 글쓴이들 중 시인 함성호의 이름을 보고 다시 목차를 더듬었다. 거기엔 미술가와 사진작가, 미술비평가, 도시계획자, 건축비평가가 쏟아내는 도시 비평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었다.

가시적인 외형이 아닌, 삶의 실제와 현장을 통해 드러나는 서울의 의미들을 마주 대할 때 서울의 본질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서울을 발견하는 일은 내 생활을 발견하는 일이며 그것은 나의 정체성의 근간을 추스르는 일이다.

강수미의 '서울의 환상'. 비정한 도시, 보잘것없는 도시에서도 서울시민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공간을 마련한다. 부박한 거처로 달동네가 생기고 대문 골목길이나 계단 한 편에는 장식용이 아닌 일용할 식물이 자란다.

이런 서울의 소시민은 남대문 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건너편의 명품브랜드 광고 현수막의 모델에서 환상의 나를 투사하고 꿈꾼다. 하지만 종로에서 서울 시민은 환상을 보려 고개를 높이지만 종로타워는 기만하는 사람인 양 우리를 내려다본다.

'사진과 삶의 지속'은 사진작가들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골목길의 풍경, 황폐한 도시 속에서도 한쪽에 온전한 푸른색을 나타내고 있는 풀들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 '숨막히는' 서울 풍경
ⓒ 박소영
'천변시대'는 청계천 사람들을 변호한다. "어둠 속 어디에선 그 어둠에 등을 기대는 사람이 있는 법"이라며 "청계천이 도시공원이 됐을 때 이 어둠에 기대어 살던 이들의 설자리를 먼저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만의 북한산'은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글이다. 글쓴이 이영준은 30년을 북한산 주위에서 살아 북한산의 변화는 곧 자신의 정체성의 변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북한산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너무나 피폐해진 때문이다.

'서울의 나이테, 후암동'은 구체적인 삶의 흔적들이 묻어 있는 여러 사진들을 통해 도시 계획의 실패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러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그 한계를 극복하며 살아감을 정감 어린 눈으로 말한다.

후반부에 실려 있는 '인사동'은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노래한 시인 김수영의 구절이 소개된다. 또 인사동 자영업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인사동은 우리에게 기댈 곳이요, 희망을 품게 하는 곳임을 확인시켜 준다.

'생활의 발견'이란 무엇일까. 줄줄이 늘어선 건물들과 좁은 골목의 주차전쟁이 악다구니 같은 생존경쟁을 떠올리게 할지라도, 겉치레의 시각적 포장이 자주 중요한 의미들을 밀어낸다 할지라도, 바로 그 현장에서 언제나 고정된 의미를 피해 달아나려는 어떤 생성을 읽어야 한다.

그 생성이란 불량 주거지역으로 낙인 찍힌 달동네에서는 플라스틱 '바케스'와 고무 '다라이'에 고추상추를 심고 도시계획에 걸려 한쪽 벽이 없어도 천막으로 막은 채 살아가는 일상의 힘이다. 그 무력해 보이지만 구체적인 힘은 자신의 삶이 엮어지는 서울을 제한과 갈등의 구조로 파악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인간의 삶을 위해 아름답게(?) 꾸며놓은 도시 서울, 이제 고층빌딩은 더 이상 거부해야 하리라. 때론 먼지 쌓인 만물상 같은 서울, 소시민이 얼키설키 미로를 만들어 내듯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하는 서울, 인간미가 느껴지는 서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서울을 떠나고 싶은 이들, 그리고 기필코 서울에 남아 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서울생활의 재발견

강수미 지음, 현실문화(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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