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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 김비아
참으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이를 만나고 왔다. 지리산, 그리운 지리산. 장엄함으로 친다면 남한에서 그를 따를 곳이 있을까.

십 년만의 재회였다. 그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을 지닌 채로, 모든 존재를 품에 안아 줄 듯한 넉넉한 가슴까지 아마도 나는 이만한 애인을 쉽게 찾지는 못하리라.

산 같은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산의 마음, 변함 없는 그 마음이. 작은 이익에도 쉽게 부서지고, 가랑잎처럼 이리저리 흩날리는 마음들을 보며, 산처럼 든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자신을 바로 세우기 어려운 세상살이 속, 산의 굳건한 어깨를 바라볼 때면 항상 깊고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갖가지 업무로 복잡한 날들의 연속인 지난 주에는 정말 어디론가 탈출하고픈 마음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마주친 걸작의 지리산 사진들은 내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 그곳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천왕봉까지 오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잊고 미소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장터목 산장 쯤에서 가슴 깊이 숨을 들이쉬며, 지는 해와 어두워가는 산들의 실루엣을 마냥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리움으로 며칠을 보내고는 도저히 떠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운 산을 두고 뭐하러 멀리 가느냐는 식구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나는 다른 산이 아닌 꼭 지리산에 가고 싶었다. 그곳이라야지 내 마음을 달래줄 것 같았기에.

짐을 챙기면서도 마음은 벌써 지리산 어느 모퉁이에 가 있었다. 대체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설레 보기도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 설레고 들뜬 내 모습에 또 한번 놀랐다. 설악의 아기자기함도, 백담사 계곡의 맑음도 일품이지만, 내게 있어 최고의 장소는 지리산, 어쩌면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 김비아
중학교 2학년 여름, 가족들과 함께 처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법계사에서 1박하는 날 비가 새어 새벽에 깨어서 텐트 속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일, 세석평전의 들꽃, 길목마다 버티고 섰던 고사목. 내려다보면 겹겹의 산들, 자욱한 안개. 그 후로 많은 곳을 다녔지만, 지리산은 여전히 특별한 기억으로 내게 남아 있다. 어린 마음에 느꼈던 그 산의 거대함과 신비는 좀체로 잊혀지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스쳐가며 들었던 가슴저린 역사의 한 토막은 내 기억 속 지리산을 더욱 특별한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지막으로 갔던 때가 1993년, 대학 1학년생이었던 스무 살 여름이었다. 그 후로 꼬박 십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이 서른이 주는 무게감. 지난 10년 동안 나는 어디에 있었으며 무엇을 했던가.

나는 현실주의자는 못 되었다. 세상은 내게 이해되지 않았으며, 한없이 불공정했고, 알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나는 늘 그것과 대립했고, 그러면서도 늘 방관자였고, 그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다.

또한 나는 오랫동안 가르친다는 것에 대하여 대체로 절망해 있었다. 이상은 높았으나 현실에선 끝없이 패배했고, 힘겨운 학기가 끝나고 찾아오는 방학이면, 그것을 탈출구 삼아서 되도록이면 멀리, 나라 밖으로 여행하는데 보냈다. 서른, 비로소 나는 내 안의 작은 가능성을 믿게 된다. 절망과 희망 사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의 반복, 그 길을 지나 어쩌면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 더불어 흘러갈 수 있을 것도 같다고, 현실에서 이상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생각.그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갈 거라는 다짐들. 서른이란 나이는 그동안 내게 기피의 대상이었던 세상을 다시금 내 앞에 펼쳐서 보여준다. 긴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온 여행자의 마음으로 나는 지리산에 와 있었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다소 험한 중산리 대신 백무동 코스를 선택했다. 토요일 오후에 일을 마치고 저녁 어둠이 깔린 후에야 백무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룻밤 자고 다음날 새벽 6시반에 산행을 시작했다.

백무동에서 천왕봉까지는 왕복 약 17㎞, 길을 걷는 내내 행복하다. 이 산이 나를 받아줌이 고마웠고, 그와 호흡을 공유하며 그의 몸 위로 한 걸음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내게 신선함, 자유, 활기를 선사한다. 아니 지리산에 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뻤다. 십 년만의 재회인데 어련하리.

길이 좋아 어렵지 않게 1808m,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다. 산은 이미 겨울이라 쉴새없이 찬바람이 몰아쳤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로 겹겹이 펼쳐지는 산자락은 역시나 지리산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아름답다. 겨울을 앞두고 옷을 벗은 산은 그 몸의 선과 근육 하나하나까지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구비구비 섬진강 줄기가 내려다 보였으며, 푸르게 푸르게 펼쳐진 산들의 끝은 하늘.

▲ 장터목 산장에서
ⓒ 김비아
▲ 늦가을의 산은 그 몸의 근육과 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김비아
제석봉을 지나는 길에는 강풍에 몸이 날려갈 것만 같았다. 제석봉을 지키고 있는 고사목들, 한때는 대낮에도 어두울 만큼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는 이곳이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지른 산불로 이렇게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산꼭대기까지 찾아든 인간의 오만의 자국에 씁쓸해진다. 그러나 제석봉은 그 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상처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 제석봉에서
ⓒ 김비아
▲ 제석봉에서
ⓒ 김비아
▲ 제석봉에서
ⓒ 김비아
▲ 천왕봉 정상에서
ⓒ 김비아
오전 11시 경에 드디어 1915m 천왕봉 정상에 닿았다.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하다'라는 비석의 글귀를 지나서 눈 앞에 열린 광경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흘러가는 산들의 행렬, 놀랍게도 산맥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보인다. 남해다. 처음에는 설마 저게 바다일까 했는데 하늘과 같은 색으로 빛나는 그것은 분명 바다였다.

지리산에서 보는 남해는 진한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곳이 남한 최고봉임을 다시금 실감하며, 내 눈은 발 아래 세상, 시야가 허락하는 끝까지 달려간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이리도 아름다운 것을, 내려가서 우리는 또 얼마나 싸워야 하는 것인지.

▲ 아, 저 멀리 보이는 남해 바다
ⓒ 김비아
장터목 산장으로 다시 내려가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산에서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된다. 주위에서 권하는 따끈한 라면을 사양치 않고 맛있게 먹었다. 차가운 날씨 속 따뜻한 인정은 내게 살아가는 맛까지를 돌려준다. 하산할 때는 늘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이번엔 신기할 정도로 멀쩡했다. 다 내려오니 오후 3시가 가깝다.

내려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산, 언제나 의연한 너. 나도 너처럼 이 땅에 뿌리내리고 싶구나. 그렇게 당당하게 서고 싶구나. 지난 날에 나는 바람이고 싶었는데. 덧없는 세상, 누구에게도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바람. 그러나 이제 나는 산처럼 살고 싶다. 그만큼 깊게, 그만큼 넓게, 한결 같이, 든든하게. 그 소망이 내게 과분하다고 한다면, 들판에 피어나는 풀꽃이 되고 싶다. 짧은 시간이지만 땅과 만나고 하늘과 만나고, 땅을 딛고 하늘을 향해 온 마음으로 피었다 지는 풀꽃. 그렇게 머물렀다가 떠나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88고속도로 거창 휴게소에서 일몰을 맞았다. 다음엔 꼭 제석봉에서 일몰과 일출을,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까지, 그 모든 빛깔의 변화를 지켜보리라 마음먹는다. 하루의 산행은 그간의 그리움을 채우기엔 충분치 못한 시간이었나 보다.

이미 지리산은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나는 산이 있는 방향을 향해 말했다.

'변함없이 그곳에 있어서, 행복하다고, 고맙다고. 너는 언제까지나 지난 세월의 수많은 아픔과 추억과 희망을 고스란히 담고 그곳을 지키고 있겠지. 그리고 나는 언제고 다시 네게로 달려가 쉴 수 있겠지. 그때도 너는 한결 같은 모습으로, 세상 그 누구보다 넓은 가슴으로 나를 맞아주겠지. 안녕, 또 만나자.'

▲ 거창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일몰
ⓒ 김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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