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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원로들이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은 '소탐대실' 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우리 사회 원로들이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은 '소탐대실' 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 신미희

우리 사회 원로들이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은 '소탐대실' 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강력히 충고하고 나서 주목된다.

방송, 종교, 문화, 언론·학술, 법조 등 각계를 대표하는 사회원로 30명은 2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TV수신료 관련 방송법 개정을 바라보는 입장'을 발표했다.

원로들은 이번 발표에서 한나라당의 수신료 징수 분리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관련 방송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또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걸맞은 합리적인 방송법 개정안과 수신료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원로들은 특히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보호해 주어야할 정치권이 공영방송의 근간인 수신료제도를 통해 방송을 통제하려는 발상을 하고 있다면 이는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과 맞먹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공영방송제도는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세계 50여 개 나라가 공영방송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면서 "공영방송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가 공적 재원마련을 위해 수신료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입장 발표에는 강원룡(평화포럼 이사장) 초대 방송위원장을 비롯해 서영훈(한국적십자사 총재) 전 KBS 사장, 이상희(전 서울대 교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박형규 목사, 강석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강만길 상지대학교 총장, 한완상 한성대학교 총장, 리영희 한양대 석좌교수, 함승헌 전 감사원장 등이 참여했다.

이상희(서울대 명예교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영방송 운영을 위한 수신료 징수는 국제적으로도 상식적인 일"이라며 "(한나라당의) 분리징수 주장은 전혀 명분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 이사장은 오히려 "시청자 입장에서 20년 전에 월2500원으로 정해놓은 수신료가 아직도 그대로인 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이 이사장은 "자신에게 별로 맞지 않으니까 한나라당이 KBS를 골탕먹이려고 하는 측면이지, 대의명분도 없고 공당으로서 내놓을 수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한 뒤 "우리가 나서서 말리는 게 한나라당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로언론인 정경희씨는 "국회의 5·6공 세력이 다시 회생해서 공영방송을 짓밟으려는 게 아니냐"면서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려는 목적은 특정 프로그램을 문제삼아 방송의 근간을 무너뜨리겠다는 쿠테타적인 발상으로 묵과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태진 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 역시 "수신료를 분리징수한다는 것은 결국 KBS 재정을 압박하겠다고 것인데 이는 KBS 공영방송의 기능을 마비시키겠다는 얘기로 있을 수 없는 일"로 규정했다.

강대인(건국대 언론대학원장) 전 방송위원장은 지엽적인 사안을 빌미로 방송법 개정에 나선 한나라당의 정략을 비판했다. 강 전 위원장은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맞는 방송법 개정이 급선무라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한편, 한나라당은 애초 27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었으나 특검법 파동으로 등원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서 문광위는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고흥길 한나라당 문광위 간사는 26일 <중앙일보>와의 대담에서 "현 분위기로 (27일 문광위 의결은) 힘들 것 같다"며 "그렇다고 소멸되는 건 아니고 이번 회기가 안되면 내년 2월에 기회가 또 있다"고 밝혀 수신료 분리징수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수신료 관련 방송법 개정을 반대하는 사회원로 명단

[방송계]
강원룡(초대 방송위원장·,평화포럼 이사장)), 강대인(전 방송위원장·건국대 언론대학원장), 김정기(전 방송위원장·한국외대 교수), 김학천(전 EBS 사장, 건국대 교수), 박용구(초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백낙청((재)시민방송 이사장), 서규석(6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서영훈(전 KBS 사장·한국적십자사 총재), 이상희(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김태진(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

[종교계]
강석주(전 조계종 총무원장), 박형규(목사), 박경조(신부), 이해동(목사), 영공(전 해인사 주지), 종산(조계종 원로회 부의장), 진관(불교인권위원회 대표)

[문화계]
고은(시인), 김지하(시인), 신경림(시인), 정지영(영화감독)

[학계·언론계]
강만길(상지대학교 총장), 이문영(고려대 명예교수), 리영희(한양대 석좌교수), 임재경(언론인), 정경희(언론인), 한완상(한성대학교 총장)

[법조계]
한승헌(변호사·전 감사원장), 최병모(변호사·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표)

[시민단체]
이명순(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다음은 사회원로들이 27일 밝힌 입장 전문이다.

"한나라당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하지 말라”

지난 10월 24일 한나라당이 TV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소속 의원 147명의 이름으로 국회에 상정한 이후 공영방송의 주요재원인 수신료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바라보며 우려를 금할 길 없다.

한나라당은 수신료 분리징수안의 취지를 “시청자의 방송선택권을 존중하여 방송수혜자인 시청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KBS가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나라당의 이 같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수신료분리징수가 공영방송체제는 물론 방송계, 더 나아가 언론계 전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한나라당의 이번 방송법 개정안 상정이 성급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KBS는 공공성과 공익성 위해 노력해야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방송공공성과 공익성확보를 위해 노력해야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국민의식이 성숙함에 따라, KBS 또한 국민의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KBS의 내부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정치권, 학계와 뜻 있는 시청자들이 격려하는 가운데 때로 따끔한 질책 또한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만들고 가꾸어 가는 것은 비단 KBS내부 종사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혹여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보호해 주어야할 정치권이 공영방송의 근간인 수신료제도를 통해 방송을 통제하려는 발상을 하고 있다면 이는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과 맞먹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도로 여야를 막론하고 극히 경계해야할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공영방송제도는 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고 그 공정성과 공익성을 실현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세계 50여 개 나라가 공영방송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공영방송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가 공적 재원마련을 위해 수신료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TV 수신료 통합징수제도는 지난 89년 KBS와 한전 측이 합의하여 실시해 오다가 지난 94년 여야합의를 거쳐 법제화한 것으로, 징수의 효율화를 통해 공평과세를 구현하고 공영방송 재원 안정에 기여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1981년 이후 수신료가 2500원으로 안정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통합징수의 효율성에 힘입은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안정적 재원마련 대책 없이 수신료 분리고지가 현실화된다면 수신료의 급격한 인상은 물론 KBS의 광고량 증가와 이에 따른 시청률경쟁격화 및 방송의 질적 저하를 막을 수 없게 되어 한나라당의 주장과는 달리 시청자권익은 오히려 훼손될 소지가 더 크다.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걸맞은 새 패러다임으로 접근하길

우리는 한나라당이 방송법 개정의 취지로 제시한 “시청자선택권확보와 공영방송의 충실한 역할수행”을 위해 보다 합리적인 수신료제도 개선안을 위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주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수신료 분리징수안 만을 담은 이번 방송법 개정안을 일단 철회해주기를 한나라당에 간곡히 호소한다.

현행 통합방송법은 지난 1999년 말, 정치권과 시민사회, 학계가 5년여에 걸친 여론수렴과 지난한 논의 끝에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정됐다. 방송정책권과 방송행정권을 공보처에서 독립적인 방송위원회로 이관하고,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해 국민의 편에서 공공성과 공익성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통합방송법의 근본정신이었다.

그럼에도 1999년의 통합방송법은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실현하는데 있어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방송환경도 크게 바뀌어 바야흐로 방송통신 융합시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방송통신융합시대를 포용한 새로운 패러다임 안에서 방송법개정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함께 방송의 독립성과 공익성실현을 위해 개정할 부분을 개정하고 그러한 기본틀 위에서 공영방송재원마련구조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미디어환경을 돌아보고 방송법을 재점검해야할 시기이다. 공영방송의 공공성 및 공익성 강화를 위한 대안 모색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계 및 시민사회가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수신료제도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수신료의 적정한 금액, 징수주체, 징수방식, 수신료 운용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합리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한다.

프로그램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미 방송위원회는 꼼꼼한 심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의 공정성이 문제된다면 이는 시청자들이 나서서 교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일이다. 정당이 나서서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문제삼을 경우 방송의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공론의 장에서 충분한 토론을 통해 사회 각계의 여론을 수렴한 뒤 방송법 개정 및 수신료제도 개선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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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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