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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에 위치한 전시장에서 만난 한대수씨
ⓒ 김진석
"흔히 사람들은 선진국인 뉴욕이나 파리에 가면 으레 화려하고 좋기만 한 줄 알지. 하지만 그게 아냐. 어디에든 우리의 모습이 있고 공통적인 작은 삶이 있어. 모든 현대인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거짓없이 보여주고 싶었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고통과 서로의 자화상을 발견해 인류애와 동정심을 느꼈으면 해."

한국 최초의 히피이자 마지막 히피. 한대수(53)가 돌아 왔다. 노래와 시로도 풀지 못한 '목마름’을 사진으로 풀기 위해 전 세계를 유랑하며 많은 이들의 고독을 훔쳤다. 그들의 기록이 사진집 <작은평화>로 출판되어, 14일부터 26일까지 홍대 앞 예술서점 아티누스 전시관에서 40여 점이 공개된다.

코리아헤럴드와 뉴스위크에서 사진기자로 재직하고, 광고 사진작가로도 25년간 활동해온 한대수씨에게 사진은 음악과 함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사진집 'Human Openings'(1997)와 '침묵'(2002)에 이어 출간된<작은 평화>는 1967년부터 2003년 가을까지 뉴욕을 비롯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만난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포착했다.

'인생은 신기루라네'라는 작은 인사말로 시작하는 <작은평화>는 그 흔한 목차도 없고 페이지 숫자도 없다. 이에 한씨는 "쪽수에 번호를 달면 흐름이 끊겨서 싫다" 며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봤으면 한다" 고 귀띔했다.

그는 책을 빌려 "사진으로 권태로운 삶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고 전하며 "사진집 <작은 평화> 에서 보여준 고독과 슬픔을 통해 우리가 인생을 같이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고 말한다.

사진작가 배병우씨는 책을 통해 "한대수의 사진은 자유를 열망하는 만큼 고독하고 불운했던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자 오히려 음악보다 더 그의 분신에 가깝다" 며 "그의 행동과 생각이 고스란히 투영된, 세계를 방랑하는 한대수 그 자체이다"고 평했다.

ⓒ 김진석
전시관에 들어서면 새하얀 벽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형을 거부한 글씨들이 4B연필로 쓰여 있다. 손으로 만지면 금세 번져버리는 그 자유로운 글씨들은 사진의 제목을 대신하고 있었다.

연신 "연필 글씨가 재미있냐?"고 묻는 그에게 기자가 "선생님을 꼭 닮았네요"라는 답변을 하자 그는 "정말이냐?"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였다.

첫 사진 전시회를 마련한 한씨는 "마치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 같다" 며 그의 심정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는 자신을 굉장히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안 아프게 썰어줬으면 좋겠어(웃음)"라고 말을 이었다.

"글쎄. 대중들이 과연 사진가 한대수를 인정해 줄까? 기자 양반은 사진가랑 음악가랑 어느 게 더 재미 있어? 난 똑같은 사람인데. 솔직히 말하면 대중들의 반응은 상관 없어(웃음). 그냥 즐겼으면 좋겠어. 아마 음악가 한대수보다 사진가 한대수로 인정받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말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는 말이 없는 공백을 계속 유쾌한 웃음으로 채웠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그 또한 솔직히 긴장이 된다며 더 큰 웃음으로 대신했다.

직접 일일이 손수 인화까지 하며 본격적으로 사진집을 준비했던 올 해 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인생의 시기를 겪었다"며 "멍든 마음을 달래기 위해 더 사진작업에 매달렸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고통이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렇게 창작으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사람으로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왜들 더 어렵게 만들려는지 모르겠어. 인류는 쓸데없는 전쟁에 있어 단 한발자국도 진보하지 않았어. 화폐전쟁, 종교전쟁, 기름전쟁 등. 현대는 죽음을 향해 경쟁적으로 치닫고 있는 것만 같아. 신문을 봐도 매일 누구 죽었다는 기사뿐이야.

미사일 하나 만들 돈이면 거리의 수천만 노숙자를 살릴 수 있는데 이 얼마나 웃기는 세상이야? 사는 게 도무지 말이 안 되고 너무 슬퍼서 자꾸만 눈물이 흘러. 아무리 살아봐도 슬픔은 견디는 것 말고는 대책이 없는 것 같아(웃음)."

그는 자신의 삶을 고독과 소외로 규정지었다. 비극이 넘치면 희극이 된다. 그가 쉴 새 없이 웃는 이유였다. 웃지 않으면 삶이 고독해 좀처럼 견딜 방법이 없다는 그는 <작은 평화> 속에 다름 아닌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흔히 사람들은 선진국인 뉴욕이나 파리에 가면 으레 화려하고 좋기만 한 줄 알지. 하지만 그게 아냐. 어디에든 우리의 모습이 있고 공통적인 작은 삶이 있어. 모든 현대인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거짓없이 보여주고 싶었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고통과 서로의 자화상을 발견해 인류애와 동정심을 느꼈으면 해."

ⓒ 김진석
그의 방황은 사진 작업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상업 사진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여러 사진들을 실험해 보았다는 그는 '리얼리즘'에 둥지를 틀었다. 꾸며진 사진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에게 더 맞는 것 같다는 그는 카메라를 뺏길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특히 한국 사람을 찍는 게 가장 어려웠다는 한씨는 사진을 찍기 위해 적잖은 욕을 먹었다고 한다. 또 어떠한 봉변을 당하더라도 한씨는 앞으로 계속 '리얼리즘'을 고집하며 사진작업을 할 예정이다. 포장되지 않은 현대인의 적나라한 모습이 서글프지만 아름답다는 게 사진을 찍게 만드는 그의 변.

"음악이나 사진이나 똑같이 어렵고 재미 있어. 사진은 이미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에 반응이 조금 느릴 수 있지만 음악은 좀더 강렬하고 빠르지. 아마 모든 예술 영역에서 음악만큼 강렬한 건 없을 거야. 실제 나 또한 음악을 듣고 울었던 적은 있어도 사진을 보고 울었던 적은 없거든. 사람들에게도 음악가 한대수 인상이 더 강해. 하지만 난 둘 다 좋고 또 같은 사람이야."

이어 그는 앞으로 사진이나 음악 등 어떠한 '일' 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달려 갈 거라며 나이가 들수록 일하는 기쁨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고 씁쓸해 했다.

"기자 양반은 내 나이가 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일이 소중해져.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50이 넘으면 일을 주려 하지 않는 게 슬픈 현실이지. 나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지 젊을 때는 몰랐어(웃음)."

젊은 시절의 특수한 경험, 장기간 유지하지 못한 연인과의 사랑, 끝나지 않는 정체성의 방황 등을 겪으며 그는 삶의 정답이 없음을 깨달았다. 태어난 것부터 후회가 된다며 허탈하게 웃는 한씨는 시기와 전쟁이 난무하는 세상이 참으로 고통스럽노라 토로했다.

다른 사람의 고독까지 흡수하느라 삶마저 늘 외롭다는 그는 작은 평화란 작은 관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하며 사진전의 의미를 정리했다.

"큰 평화는 작은 평화에서부터 시작하고 작은 평화는 아주 사소한 관계에서부터 시작해. 가장 가까운 가족, 부모, 친구, 부부 등 가깝기에 쉬운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어려운 관계야. 바로 내 옆에 있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인간 관계의 신뢰를 지키는 일부터가 바로 작은 평화의 시작이야."

"그의 예술은 인간적이고, 인간으로서 그의 삶은 예술적이다."
5인의 문화인들에게 묻다/ 내가 아는 한대수는 어떤 사람?

▲ '모두가 나에게 애정이 있어'. 한대수씨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기념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석

오후 5시 한대수씨의 사진전을 축하하는 공식 오프닝 행사가 열렸다. 항상 외롭다고 말하는 한씨지만 그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은 이들이 찾았다. 수많은 보도진들과 각계 문화인들이 함께한 공식 오프닝 행사는 그 답게(?) 아무런 절차나 순서가 없었다. 그가 아끼는 몇몇 문화인들을 만나 "내가 아는 한대수는 어떤 사람?" 이라는 질문을 던져 답변을 모았다.

김원(PAPER 아트디렉터/사진기자)

김민기씨와 같이 꺼지지 않는 마음 속 '불꽃'이었다. 통제와 단속의 시대였던 박통 시절 저렇게도 사람이 미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처음으로 그의 사진을 보는 터라 사진작가 한대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에 그만의 정열이 느껴진다. 구성도 대담하고 명암대비도 극명하며 그 분의 뜨거운 에너지를 볼 수 있다. 아마도 남달리 너무 뜨겁기 때문에 외로울 것이다. 뜨거움을 같이 공유할 사람이 없어 혼자 타올라야 하는 게 외로울 것이다. 미지근하다면 과연 외롭겠는가? 인간으로서도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

강산에(가수)

양호한 사람!(웃음) 예쁜 사람이다. 작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직접 사진을 보고 음악을 들어야 한다. 진정으로 훌륭한 아티스트다. 후배들에게 직접 가르치는 것은 없어도 우리 나라에서 저렇게 살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후배로서 좋은 영양분이 된다.

이상은(가수)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예술성 짙은 음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자신의 예술을 고집하는 그 모습이 후배로서 많은 귀감이 된다. 젊은 시절 활동 무대가 한국이 아니었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다시 밝은 모습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후배로서 따라 갈 수 있는 선배가 있어 너무 기쁘다. 동시에 창작을 멈추지 않는 그 분 삶이 스스로에게도 많은 자극이 된다. 앞으로도 계속 왕성한 활동을 부탁드린다.

이무영(영화감독)

그의 예술은 인간적이고, 인간으로서 그의 삶은 예술적이다! 삶과 예술이 유사하기에 예술의 완성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예술가는 어떤 작품을 내는 것 만큼이나 어떻게 살아가느냐도 중요하다. 작품과 예술가 실제의 삶이 다르다면 솔직히 재미없지 않겠는가? 나 또한 작품과 실제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중이다. 아무나 그 분처럼 살 수 없다!

조한혜정(연세대사회학과교수)

전형적인 예술가. 20세기 예술가이자 21세기 문화 기획 연출가. 예술가로서 삶의 조건을 다 갖췄다. 고향이 없기에 끝없이 고향을 갈구한다. 그 유목민족 성향과 관점이 곧 창조력으로 이어진다. 유목민적 절망과 고독 속에서도 창조에 대한 의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에너지로 승화시킨다. 예술가로서의 수명이 길 것이다. 어느 덧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때가 되었는데, 이젠 외로울때 후배들하고 좀더 자주 어울렸으면 한다.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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