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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스님 <山門, 치인리 십번지>
현진스님 <山門, 치인리 십번지> ⓒ 열림원
"해인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님들은 자동차를 몰고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며 인터넷도 한다. 결코 스님들은 동떨어진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다. 수행의 원형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방식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뜻. 지금의 고색 찬연한 산사에는 21세기 스님들이 머물고 있다."

왜 수행을 하는 것일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것이며, 그 깨달음은 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1983년에 출가, 지금 해인사에 머물며 수행을 하고 있는 현진스님은 지금 숨쉬고 있는 곳이 곧 깨달음의 자리이며 깨달음은 우리네 일상생활 그 자체 속에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깨달음을 얻으려 하는 것은 사람살이를 깨닫기 위함이요, 깨달음 그 자체도 곧 사람살이 속에서 나온다는 그 말이다. 그래서 요즈음 스님들 대부분은 자동차를 몰고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며,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을 하는 것일까?

"중노릇을 거듭하면서 늘어나는 것은 빨래 실력뿐이다…. 빨래를 할 때마다 '깨어 있다'는 의미를 떠올린다. 깨어 있다는 것은 순간순간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가 지금 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깨어 있는 삶이다."('빨래하는 스님' 몇 토막)

월간 <해인> 편집위원이며, <두 번째 출가>, <삭발하는 날>을 펴낸 해인사 현진스님이 산문집 <山門, 치인리 십번지>(열림원)를 펴냈다. 이 책은 오늘도 250여명의 스님들이 숲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해인사 스님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山門, 치인리 십번지>는 모두 4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장 '산사에서는 모든 일이 만행', 제2장 '스님들의 재미있고 평범한 일생', 제3장 '역시 공부가 제일 힘든 수행', 제4장 '산중한담'이 그것.

'해인사에 산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고 말하는 현진스님은 해인사 스님들이 빨래를 하고, 고무신을 닦고, 음식을 만들고, 문풍지를 바르고, 차를 마시고, 축구를 하고, 자동차를 몰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그 모든 행위들이 곧 수행이자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어느 스님이 그랬다. 자신의 중노릇은 고무신을 닦으며 보낸 세월이었다고. 장난스러운 말 같지만 맞는 표현이다. 고무신을 닦는 일은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으로 그 뜻을 바꾸어보면 더 공감이 간다. 나 또한 머리 깎고 고무신 닦으며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 보니 어느새 15년이 훌쩍 넘었다." ('고무신을 닦는 스님' 몇 토막)

그렇다. 고무신을 닦는 일이 곧 마음을 닦는 일이라고 말하는 현진스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 세상살이 모든 것들이 수행이 아닌 것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이 세상살이 모두가 곧 깨달음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데, 왜 스님들은 머리를 깎고 가람으로 들어가 수행을 하는 것일까. 스님들도 우리들처럼 자동차를 몰고 40화음 핸드폰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인터넷을 즐기며,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끼고 아픈 것을 보면 아프다고 느끼는 그런 인간이지 아니한가.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이 있어라. 탐(貪) 진(瞋) 치(癡), 삼독(三毒)도 이 같이 버려 한 순간의 죄업도 없게 하리라." (해인사 해우소에 붙어있는 글)

그렇다. 스님들이 머리를 깎고 가람에 들어가 수행을 하는 까닭은 바로 '버림'에 있다.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것, 자신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서다. 또한 그렇게 버리고 버림으로써 비로소 일상생활 속에 수행이 있고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깨치는 것이다.

"해인사에는 3대 훈련이 있는데, 첫번째가 예비군 훈련이고, 두 번째가 민방위 훈련이며, 세 번째가 소방 훈련이다. 예비군 훈련장에 다녀온 스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격 솜씨는 언제나 스님들이 앞선단다…. 화두에 집중하는 그 힘을 목표물에 명중하는 힘으로 전환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비군 훈련을 받는 스님' 몇 토막)

<산문, 치인리 십번지>는 차를 마시고, 경전을 넘기고, 참선에 몰두하며, 염불만 하는 것이 수행의 전부가 아니며, 예비군 훈련을 받으면서 사격을 하고, 축구를 즐기고, 녹차 대신 커피를 마시는 모든 것이 진정한 수행이며 깨달음이라는 것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책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 수련회 참가자들과 산행을 갔다…. 그때 뒤에서 따라오던 한 참가자가 급한 물살에 고무신 한 짝을 흘러보내고 말았다. 잠시 후 두 번째 냇가를 건널 때 남은 고무신 하나마저도 물살에 떠내려갔다…. 하나를 잃어버렸을 때는 가지고 있는 하나는 지켜야지 했는데, 두 쪽 다 버리고 나니 정말 마음이 편하네요."

산문, 치인리 십번지

현진 지음, 열림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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