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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정호의 음반
고 김정호의 음반
음악 애호가에게 11월은 잔인한 달이다. 젊고 유망한 뮤지션들이 줄줄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987년 11월 1일 사망한 고 유재하를 시작으로, 김현식, 김성재 등의 죽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11월에 집중되었다. 특히 이들은 한결같이 젊은 나이였고 작곡이나 가창력에 있어 높게 평가받는 뮤지션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들 개개인이 대중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일궈나갔다는 점에서 그 아쉬움은 더욱 크다.

그런데 앞서 나열한 뮤지션들에 비하면 1985년 11월 29일에 사망한 고 김정호의 이름은 젊은 음악 팬들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듯하다. 아니, 동시대를 지내온 이들에게도 김정호의 이름은 상당부분 잊혀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김정호라는 캐릭터 자체가 ‘주류’에서 다소 비켜서 있는 탓도 있겠지만, 주요 활동 시기가 1970년대 중반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김정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마땅한 천재적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한 명이다. 1970년대 중반 송창식과 더불어 포크를 대중화시킨 인물일 뿐더러, 편곡자 안건마와 함께 한국적인 음악 양식을 꾸준히 탐구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트로트를 중심으로 한 통속적 가요와 통기타 순수주의를 기반으로 한 포크 음악의 위계질서는 김정호의 숱한 명곡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또한 관현악기를 동원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편곡과 독창적인 리듬, 복잡하고 까다로운 화성 전개, 5음계로 이루어진 토속적인 선율 등은 분명 한국적인 대중음악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성과물이었다.

비록 활동 당시에는 순수한 포크를 상업화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오히려 대중음악이 침체 일로에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는 김정호의 음악 세계를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통기타 순수주의에 매몰된 포크 음악은 대중적인 가요 양식을 폄하했고, 영미권 음악에 지나치게 추종적인 양상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또한 대중음악에 있어 테크닉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것도 통기타 포크 중심으로 재편된 1970년대 음악계의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김정호의 음악은 그런 면에서 하나의 대안이자 한국적인 가능성을 보인 작품 세계로 평가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I도 화성 대신 II도나 IV도 화성을 사용하고, 5음계 중심으로 선율을 만들며, 기승전결의 단순한 구조에서 탈피한 김정호의 작곡법은 분명 독자적인 것이다. 더하여 정상급 편곡자인 안건마의 손을 거친 음악은 독특한 리듬 운용이나 관현악기의 고급스러운 활용을 통해 기존의 가요와도, 그리고 아마추어적인 통기타 음악과도 전혀 다른 새로운 경지를 이루어 냈다.

보헤미안의 성향이 짙은 노랫말이나 초월적인 보컬 스타일 또한 반드시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묘한 것은, 이처럼 까다로운 음악적 구조를 갖추고 있음에도 <하얀 나비>나 <님>, <이름 모를 소녀> 등의 대표곡들이 한결같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 음악들에서 풍기는 은근한 한국적 향취는 김정호의 음악을 여타의 흔한 가요곡들과 차별화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적이고도 독자적인 음악 탐구는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했다. 지병인 결핵으로 인해 김정호는 1980년대 내내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고, 유작인 <님>(1983)의 녹음 시점에서는 제대로 숨쉬기조차 힘든 악조건 속에 장장 5개월간이나 녹음해야 할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 결국 1985년 11월의 막바지, 33세의 이 천재 음악가는 50여점의 불멸의 음악만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영미 음악 중심의 한국 대중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끊임없이 대안을 모색했던 그의 음악 세계는 2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특히 국적 불명의 상업적인 음악들이 차트를 지배하는 현실이 김정호 시절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끝으로 한가지 더. 2001년 등장한 남성 듀오 브라운 아이즈는 자신들의 데뷔 음반에 <하얀 나비>를 리메이크해 화제가 되었다.

묘하게도, 한국적 R&B를 표방하고 나타난 이 그룹이 선택한 곡이 김정호의 <하얀 나비>라는 사실은. 고인의 한국적인 ‘어떤 것’에 대한 탐구가 어떤 형태로든지 이어져 나갈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하는 <하얀 나비>의 노랫말처럼 말이다.

이필원, 김두수 등 선후배 포크 가수 대거 참여
추모공연 실황 음반 발매 예정

▲ 고 김정호의 젊은 시절
<하얀 나비>처럼 우리 곁을 떠나간 천재 싱어송라이터 김정호의 추모 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매달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서울 YWCA 청개구리 홀의 11월 공연이 그것이다.

키다리 여가수 방의경의 공연을 시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포크 싱어들을 재조명하고 있는 청개구리 공연은, 이번에는 묘하게도 김정호의 기일인 11월 28일부터 열리게 된다.

세상을 등진 지 1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타의 요절한 가수들에 비해 주목도가 적었던 김정호. 그의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다시 살펴보고, 동료 포크 가수들의 애틋한 마음과 깊은 존경심에서 발로한 연주-노래가 있을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는 고 김정호의 미망인인 이영희씨와 김정호의 유작앨범인 <님>의 재킷 디자인을 해 주었던 포크싱어 연합회장 이필원씨(뚜아 에 무아의 멤버), ‘하사와 병장’의 리더 이경우씨, 국악인 김소연 명창, 김정호의 창법을 가장 적통으로 계승했다 평가받는 김두수씨, 비운의 포크 싱어 김의철씨 등이 출연해 자리를 빛내줄 것이다.

또한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기타가 선보여질 것이고, 공연 실황은 음반으로도 발매될 계획이라고 한다.

본래 청개구리 공연은 하루 공연을 하도록 되어 있으나, 서울 YMCA 측의 배려로 이번 추모 공연은 이틀에 걸쳐 있게 될 예정이다.

정확한 공연 장소는 명동 서울YWCA 1층 마루 홀이며 모든 청개구리 공연은 이와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공연 날짜와 시간은 11월 28일 금요일 오후8시, 11월 29일 토요일 오후4시이며 입장료는 좌석 2만원, 입석 1만 5천원이다. 공연 예약 문의는 서울 YMCA(전화 02-3705-6007), 기타 문의 사항은 청개구리의 인터넷 웹사이트(cafe.daum.net/folkfrog)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 배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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