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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백제탈놀이는 기필코 복원해야 합니다.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싶습니다. 내 세대에는 빛을 못 볼지도 모르지만 후대에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탈춤을 본다면 바랄게 없어요."

탈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의 눈빛이 순간 번득인다. 30여 년 동안 탈춤에 심취해 살아온 김구용(51·남대전고) 교사는 여기에 젊음과 돈을 투자해왔다. 한마디로 탈춤 인생.

군 복무 시절 경기도 양주에서 온 후임병이 선보인 생전 처음 보는 탈춤의 동작에 매료된 후 그는 제대하자마자 양주별산대놀이를 배우기 위해 무작정 양주를 찾았다. 그 후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 안 춰본 탈춤이 없을 정도였고 그러던 중 그가 접한 것이 바로 백제 기악(伎樂)이다.

백제 기악은 쉽게 말해 탈을 사용한 전통 가무극이다. 우리나라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일본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제인 미마지가 6세기 경 기악을 배워 일본에 전하고 귀화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백제에 기악이라는 탈놀이가 있었다는 기록만으로 연구를 진행해 오던 그는 3년 전 백제기악의 복원과 공연을 위해 사단법인 '백제탈놀이 연구회 미마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방대한 탈놀이 연구 업적에도 아직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에 백제 탈춤 복원 공연을 우리나라 최초로 열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기악에 참 '진'(眞)을 첨가한 진기악이란 명칭으로 복원 작업을 끝낸 후 한국에서 공연을 했는데 이 때는 언론에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일정시대에 빼앗긴 골동품을 다시 돌려받는 것처럼 말이죠. 그날은 분통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나게 탈춤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백제 탈놀이 복원을 진행하면서 그가 느끼는 것은 복원의 범위나 규모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크다는 것. 지금도 힘든 과정은 계속된다. 초중고 교사들 중심으로 매년 공연을 하고 있지만 예산도 인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에 함께 공연했던 교사들은 힘들다며 하나둘씩 떠났다.

김 교사는 "대전에서 진행 중인 지하철 1m 분량의 공사비만 있어도 월드컵 경기장 공사비 2천분의 1만 있어도 백제탈놀이는 훌륭하게 복원될 수 있는데 말이죠"하며 고충을 토로했다. 일본인, 미국인에게도 탈춤을 가르쳐 주었던 그는 외국인도 높은 관심을 나타나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그렇지 않은 현실이 못내 아쉽다.

기악이 호응 못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 자문위원들이나 학자들이 탈춤의 기원을 기악이 아닌 무속기원설에서 찾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통연극의 기원을 모두 백제기악에서 찾지만 우리나라는 탈춤에 대한 정의가 분명치 않아 기원이나 형성과정은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에 김 교사는 백제 탈놀이에 대한 책을 대략 3권에 걸쳐 집필하고 있다.

"우리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야 합니다. 일본의 전통연극인 가부키(歌舞伎)는 국가에서 보존을 해 줘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동시에 중국의 경극과 세계 연극사에서 높이 평가되지만 우리나라 탈춤은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스페인에는 플라멩고 같은 자랑스러운 춤이 있고 서양에는 오페라, 뮤지컬이 있듯이 우리나라의 탈춤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전통이니까 무조건 보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직접 와서 확인해 보십시오. 재미있나 없나를 보고 승부를 걸고 싶습니다"하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의 탈춤 인생은 기지촌에서 커 온 어린시절과 무관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미군들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그에게 미국 문화에 대한 환상은 일찍이 없었다. 통기타, 청바지가 유행하던 시절에도 그의 관심은 장구, 탈춤 등 우리 전통문화였다.

"요즘은 서양문화를 쫓는 것이 문화의 척도가 됐어요. 외모의 기준도 서양에 맞춰져 성형수술이 범람하고 있죠.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만 있으면 외모 지상주의도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제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탈춤을 추는 것은 내 문화만 가지고도 문화인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죠."

오는 11월 공연을 앞두고 그는 의상 고민하랴 탈 만들랴 바쁜 하루를 보낸다. 이번 공연을 위해 30여개의 탈이 필요한데 한 개 제작비용이 3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직접 제작에 나섰다. 새벽까지 탈을 만드는 날도 부지기수.

지칠 만도 하지만 그는 "탈을 만들 때 한 가지 표정으로는 역할을 표현하지 못하니까 모든 동작을 수용할 수 있는 표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재미나요"하며 여유를 부린다.

그의 머리 속에는 탈춤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다. 전수회관을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는 것과 취직을 못한 젊은이들로 구성된 프로팀을 만들고 싶다는 것. 이 외에도 백제의상을 입고 백제 음식을 먹고 백제의 춤·놀이·무술·탈놀이를 접할 수 있는 '백제민속촌'을 만들고 싶다는 것은 그의 또 다른 구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탈춤을 추곤 한다는 그에게 인터뷰를 마치며 탈춤 한 동작을 부탁하자 덩실덩실 흥을 돋구는 동작을 선보인다. 탈춤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탈춤을 출 때 탈춤 인생 김용구 교사는 제일 큰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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