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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 전쟁의 승리를 선언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이라크의 저항은 날이 갈수록 거세다. '저항의 날'인 지난 1일에는 미군의 치누크 헬기가 이라크의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받아 16명이 사망, 종전후 최대 피해를 기록했다. 이로써 종전후 사망자는 총 139명으로 늘어났다.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후세인의 종적은 간 곳 없고 애꿎은 이라크 민간인의 피해만 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라크 저항의 힘은 필시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다. 필자가 1년간 살펴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쿠웨이트 이란 등의 이슬람국에는 강한 종교 정신이 그들의 내면에 바닥 깊이 깔려있다. 생활 이전에 종교가 우선이요 국법이 종교의 율법에 기초해 제정되었으며 문화 또한 종교 정신에 합치되는 범주에서 만들어지고 전승되어 왔다.

그들이 가진 생활화된 종교 정신은 타 종교의 그것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진 유태교의 힘이 선민(選民)사상에서 출발한다면 아랍민족이 가진 이슬람교의 위력은 중동과 아프리카 서남 아시아에 걸친 20여국이 이룬 범이슬람권에 토대를 둔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예로서 공동 운명체를 자처하는 동질성에 그들은 서있다. 그들이 한데 합심하는 뿌리에는 아랍어라는 공통언어가 자리잡고 있다. 마치 중국이 중국어라는 동일 언어로 동남아시아 일대에 거대한 화교(華僑) 문화를 일군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 대만 홍콩은 물론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지아 등 중국계 민족이 장악하고 있는 상권의 힘은 대단하다. 같은 언어는 동일한 문화를 향유하고 흡사한 민족성을 창출한다.

부시 정권은 유태계 인사가 장악하고 있는 행정부내 매파의 지원을 받아 이슬람계의 분열을 획책(劃策)해 일단 전쟁의 주도권은 잡았으나 최근 사우디 정부가 '이라크 정부의 요청없이 파병은 없다'는 강경 대응에서 보여주듯 '피는 물보다 진한' 동일 문화권의 끈끈한 단합과 유대는 바로 읽지 못한 듯하다.

한국군 파병이 논의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국익 추구'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추종하는 명분없는 파병이다.

인근의 국경을 넘어 이라크 군에 합류하는 숫자가 날로 늘고 성전의 깃발은 높이 휘날리고 있다. '알라신은 위대하다'는 그들의 저항 구호가 이를 대변한다.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신보수주의가 갖는 저력이 바그다드의 후세인 동상은 무너뜨렸으나 이라크 국민의 알라신에 대한 종교적 신념은 회유하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내세운 미국의 반독재 논리가 그들의 뿌리깊은 문화적 사고를 설득하기에는 여전히 허약하다. 문화적 깊이가 얕은 미국이 주창한 '힘의 정치'가 거대한 종교의 저항 물결에 밀리는 형국이다. 진정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인 듯하다.

이라크의 저항과 대조되는 한국 사회

이러한 이라크의 저항과는 대조적으로 필자의 눈에 비친 '무너지는 문화 현상'이 있어 짚고 넘어 가고자 한다.

빙상계의 반칙왕 안톤 오노가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우리는 그의 교묘한 '할리우드 액션'과 부당 판정으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의 금메달을 '도둑맞은'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사건은 당시 반미 감정의 단초(端初)를 제공했고 그 후 여중생 장갑차 사망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인 반미의 횃불을 지폈다. 우리 동포들은 미국의 CNN에 연일 보도된 광화문의 대대적인 촛불시위를 어정쩡한 처지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10월31일 할로윈 축제 때 서울의 밤거리가 취해 있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할로윈 파티와 클럽에다 호텔 칵테일까지 가세하였고 새벽 3시가 넘도록 할로윈 복장이 거리를 활보하였다는 내용이다. 과격하게 성조기를 태우며 화염병을 던지며 외쳐대던 투철한 자주 정신은 어디가고 기껏 영국에서 재수입된 '귀신 문화'에 거리가 흥청거렸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반미 시위와 대비해 코드가 맞지 않는 대목이다. 값싼 여중생의 죽음을 망각한 행위라 쳐도 무리가 없다.

설날과 추석 이외에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일년 사절기를 통해 훌륭히 전래되는 미풍양속이 버젓이 존재하건만 반만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를 지닌 한민족이 문화로 치자면 열등국이요 독립의 역사가 미천(微賤)한 나라인 미국으로부터 발렌타인과 화이트 데이도 모자라 그리도 배울 것이 없어 할로윈(Halloween)까지 들여왔단 말인가.

오늘의 미국을 이룬 근간인 도덕정신과 합리주의와 인본주의라는 핵심 사상은 외면한 채 이제 유럽에서마저 천대받는 앵글로 색슨족의 갈곳없는 유산을 뒤늦게 들여다 자라는 아동들에게 일러 그것을 '수입 명품'이라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젊은 피는 이라크에 바치고 타민족 문화는 수입하여 비싼 가격에 유통하는 꼴이다. 동거 문화와 스와핑(Swapping)이라는 상표의 물건도 따지고 보면 유럽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피어난 서구 문화의 파편이요 그것이 사회 일부층만이 즐기는 퇴폐 행각이라 친다면 할로윈은 놀이 문화로 야무지게 자리잡는 양상이라니 오호 통재라 이것이야 말로 막연한 사대주의와 맹목적 서구화의 기발한 발상 아닌가.

나아가서 반미와 친미 간 명확한 이율배반의 훌륭한 완성이 아닌가. 단군이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오늘도 대학로 문화 거리에 고뇌하는 지성이 있다면 답변 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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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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