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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변해야 산다고 하면서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 자기는 변화되기를 거부하면서 다른 사람 보고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만 옳고 당신은 틀렸다고 하지만 조금만 물러서서 관조하면 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다.

모두 아는 이야기지만 요즘 사회 지도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부패 현상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가재는 인간에 미치지 못하는 미물이지만 배울 점이 많다. 위험을 무릅쓰고 오랫동안 입었던 허물을 벗는다.

두렵지만 껍질을 벗지 않으면 새 옷을 입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래서 낡은 계명과 금기사항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을 가재에 비유한다. 새 껍데기가 단단해질 때까지 한동안 적에게 잡혀 먹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되지만 허물을 벗어 던짐으로서 다시 새롭게 변모하고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변화란 그런 것이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행복도 불행도 포기하는 것이 변화라고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해서 새 옷을 입지 못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요즘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우리의 전통이 무너진다고 개탄하며 걱정한다. 수직적 수평적 관계가 무너져서 위아래가 없는 사회가 되었으며,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세상이어서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이 말세가 되었다고 말하고, 전통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을 겪으며 전통을 파괴하고 극복하는 것 역시, 가재의 새 옷 입기와 같다. 어떤 사람이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고 오래된 계명과 금기사항에서 다소 자유스러워지려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다만 도덕적, 윤리적, 범주 내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의 행복추구 역시 그러한 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낡은 껍데기를 벗어 던지는 것에 주저해서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어떤 사안에 대해 창의적으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문제를 새롭게 혁신적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살아오는 동안에 당연시되었던 기정사실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개혁은 늘 그 자리에 머물게 되고 변화되지 않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옳은 방법인지도 모른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선각자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변화가 곧 기회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행동하며,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항상 버리고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며, 새로운 것에서부터 시작하려는 혜안을 가진 사람들이다.

반대로 기득권자들은 변화에 직면하면 낡고 오래된 안전장치 속으로 퇴각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더 많은 기득권을 인정받으려고 하면서 자기 주장을 펴고, 자신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좀처럼 귀를 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새롭고 낮선 것을 맛보거나 냄새 맡아보려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선각자들은 그것을 제일 먼저 받아들임으로서 새로움을 추구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출하며 얻는다.

또한 소인들은 쾌락을 추구하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이지만 쾌락은 절대로 아니다. 철학자 니체는 이미 100년 전에 "모든 쾌락은 영원을 구한다"는 말로서 행복에 대한 열망관계를 말했다.

하지만 영원한 쾌락을 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일 수는 없다. 쾌락은 더 높은 단계의 또다른 쾌락을 추구하다가 파멸한다. 행복을 시간과 관계지어서 말하기도 한다. 행복은 바로 오늘, 이 순간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높은 단계의 행복은 결코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관대한 운명이 가져다주는 선물도 아니며 오늘이 행복하다고 내일이 행복한 것도 아니다. 현재의 순간 순간들을 행복하게 살 수도 없다.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도 미래도 행복해 질 수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산다.

A.블롬베르크는 "행복한 것도 능력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한 능력은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처럼 철저한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고, 새로운 변신을 통해서 더 높은 단계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철학자들은 행복이란 언제나 자기가 만들고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하다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다시 말해 행복의 가치 기준은 자기 스스로의 잣대로 자기가 평가하는 점수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를 과대 평가하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철학자의 말을 듣기는 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절대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신앙에 매달리지만, 종교 역시 어떻게 하면 인간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제시하기보다는, 인간이 해서는 안 될 금기 사항만을 더 강조한다.

한편으로 사회상을 알리는 매스컴이나 매체들 역시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범죄와 재해 같은 끔직한 사건들을 더 비중 있게 다룬다.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금기사항을 말할 뿐이다.

아무튼 사람들이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행복을 버릴 수가 없고, 영원한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이며, 기득권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면에서 새 옷을 가재처럼 입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문제다.

하지만 가재처럼 잡아 먹힐까봐 두려움에 떨면서도 새 옷을 입어야 변화하고 발전한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전통이란 사슬을 과감히 끊고 나와 새 지평을 열었던 자들이 개척자들이고 선각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가 더욱 지속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히는데 기여해서 세상을 밝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도 오랫동안 입었던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려는 시도들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인다. 가재처럼 단단한 껍질로 변모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한번은 거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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