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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의 목사리를 풀어놓으면 녀석은 주로 논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까미의 목사리를 풀어놓으면 녀석은 주로 논바닥을 헤집고 다녔다. ⓒ 윤태
애완견 ‘까미’를 기억하십니까? 지난 추석 때 애완견 한 마리를 서울에서 시골로 데려가는 과정과 시골에서 그 개와 함께 한 3박4일 동안의 ‘애절한 이야기’를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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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 일깨워준 애완견 ' 까미 '

당시 그 기사를 올리고나서 많은 독자 분들이 제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통해 격려와 당부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부득이하게 서울 처갓집에서 기르지 못하고 시골에 가서 소를 지켜야 했던 애완견 까미의 운명에 대해 참으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셨습니다. 추위는 잘 견디는지, 시골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후속기사를 기대하는 분들의 요청에 따라 까미에 대한 글을 다시 한번 올리게되었습니다.

지난 추석때나 지금이나 몸집에는 변화가 없다. 늘씬한 허리와 짧은 다리가 가장 큰 매력이다.
지난 추석때나 지금이나 몸집에는 변화가 없다. 늘씬한 허리와 짧은 다리가 가장 큰 매력이다. ⓒ 윤태
시골에 까미를 떼어놓고 서울로 올라오던 날, 제 차에 올라타려고 울부짖는 녀석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후로 나는 한번도 녀석을 잊어본적이 없었고 매일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녀석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했습니다. 이와 함께 시골에 종종 전화를 걸어 까미의 안부를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잘 있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엊그제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40여 일만에 까미를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독자분들은 1년이 지나도 까미가 분명히 저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녀석은 팔짝팔짝 뛰며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이미 부모님으로 바뀐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3박4일간의 짧은 옛 주인을 기억해준 까미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혹시 내 차에 탔던 기억을 할까 싶어 차문을 살짝 열어놓으니 녀석은 여지없이 운전석에 훌쩍 뛰어올라 포즈를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까미는 매우 강해졌다고 합니다. 더 이상 사람의 품안에서 자라는 애완견이 아닌 시골에서 최고의 재산인 소를 지키는 영악한 개가 됐다고 합니다.

한번은 목사리가 풀어져 2km가 넘는 논까지 어떻게 알고 달려 왔답니다. 추수를 하고 있던 참인데 아버지께서는 녀석을 벼포대에 담아 경운기에 태워 집에 데려갈 참이었는데 순간 탈출을 하고 말았답니다. 다시 논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사람들한테 붙잡혀가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녀석이 제 집에 들어앉아 있더랍니다.

까미와 흰둥이는 밥먹을때만 적이되고 평상시엔 절친한 친구사이다.
까미와 흰둥이는 밥먹을때만 적이되고 평상시엔 절친한 친구사이다. ⓒ 윤태
까미는 외양간 앞에 보금자리를 잡았습니다. 3년째 우리 집에 살고 있는 흰둥이와 함께 목사리에 묶여 1미터 반경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엉덩이에 더러 소똥닥지도 달고 낮선이가 지날 때면 흰둥이와 더불어 목청을 높이며 제 임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행여 소끼리 싸움을 하며 난동(?)을 벌일 때면 까미와 흰둥이는 더욱더 세차게 그리고 오랫동안 짖어댑니다.

낯선 사람은 불과 1분이면 개집 앞을 지나가지만 묶여 있는 소들은 뿔로 치고 받으면 최소 5분 이상은 지속됩니다. 따라서 이를 감시하는 두 ‘보디가드’의 함성이 크고 오래될수록 소들한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소가 격렬하게 뿔싸움을 하게 되면 서로의 얼굴에 상처를 입혀 피가 심하게 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소목사리가 풀어져 외양간을 뛰쳐나오게 되면 위험한 괴물로 변하기 마련이지요. 이쯤 되면 까미와 흰둥이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지 아시겠지요?

그러나 두 녀석들이 늘 합심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밥을 주면 까미는 저보다 덩치가 수십 배나 큰 흰둥이와 앙칼지게 싸우며 먹이를 독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때마다 밥그릇 근처에 얼씬도 못하는 흰둥이. 이런 점에서 아버지께서는 까미가 ‘강해졌다’고 하신 것 같습니다.

까미의 사진을 찍는 동안 뒤에 조카들이 서 있었다. 몹시 노한 모습인데....
까미의 사진을 찍는 동안 뒤에 조카들이 서 있었다. 몹시 노한 모습인데.... ⓒ 윤태
한편으론 까미가 안타깝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늘 논밭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녀석을 목욕시키거나 따뜻하게 돌봐줄 여건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녀석이 1미터밖에 안 되는 끈에 묶여 산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시골을 방문한 지난 일요일 하루동안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까미를 풀어 놓았습니다. 쏜살같이 아무 곳으로 달려가 뒹굴며 풀짝풀짝 뛰노는 모습을 보며 녀석이 자유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런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작고 새카만 까미가 늘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논밭을 오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들에서, 밭에서 돌아오실 때 부모님과 까미가 번갈아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말입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까미를 애완견으로서 잘 돌봐줄 사람이 있다면 보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까미와 이별을 하면서 이번에는 지난 추석 때처럼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잘 적응해왔고 이미 강해진 만큼 다가오는 추위를 잘 견뎌 내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곳에 떨궈내도 어떻게든 적응해 나간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까미.

그 당시에 애완견은 사람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묶어 기르게 되면 스트레스가 쌓여 죽게된다는 걱정과 함께 까미를 제발 시골에 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주신 독자 분들도 여럿 계셨습니다. 그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걱정마십사”전해드립니다.

한참을 뛰고난 까미가 꽃옆에서 포즈를 취해 줬다.
한참을 뛰고난 까미가 꽃옆에서 포즈를 취해 줬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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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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