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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장철영
"지난 2000년 원칙을 어기고 비정통적 방법으로 총장이 임명된 것이 지금의 학교 위기를 몰고 왔다고 생각해 총장 선거에 출마했다. 현 총장 체제 하에서는 인근 대학들도 다 받은 교육부의 일정 지원금도 못 받는 등 학교의 외적 성장이 침체된 데다가 현 총장이 교직원과 학생들의 지지를 상실해 리더십이 부재한 채 학교 행정이 표류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원칙을 안 지키면 교육이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싶었다."

이번 교협 선거에서 학교 위기 해결사로 '119 홍'이란 애칭을 얻으며 1위를 차지, 가장 유력한 총장 후보로 떠오른 홍경표 교수. 그는 지난 4년간 학교가 방향타를 잃어가는 것을 보면서 "'4년 전 1, 2차 선거에서 1위를 했는데 억지로 무리하게라도 총장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동료 교수들의 안타까움을 듣고 무한한 책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9월 중순경만 하더라도 총장 출마 의사가 전혀 없었던 홍 교수는 동료 교수들의 강권에 밀려 뒤늦게 교협 선거를 준비했다. 이 과정 중에 10월 6일 일생 그의 동지였던 남편(박종률 전 통일민주당 사무총장, 8·12·13대 국회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도중에 출마를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남자들은 그런 일이 생겨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여성으로서, 가정사에 얽매인 개인적 문제를 극복하고 동료 여교수들에게 길을 열어주자고 결심했다."

당시 그는 스스로에게 "I cry tomorrow"란 주문을 걸면서 고비를 넘기곤 했다고 한다. 앞으로 남편을 위해 울 날은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해내자는 심정으로.

홍 교수는 "남편의 민주화 투쟁으로 나조차 요주의 인물로 찍혀 취직이 힘들던 1982년, 한남대에서 날 받아들여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라도 한남대를 도약시키는 총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번 선거에 그대로 반영된 여교수들의 자매애와 연대 의식에 감사했다. 현재 300여 명의 교수 중 30여 명에 불과한 여교수들은 그를 중심으로 출신 지역, 학교를 불문하고 '여교수'란 공통분모로 뭉쳐 "여성끼리 뭉치고 화합해 즐겁게 살자"를 직장 생활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조금만 무엇을 하려 하면 '설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이번 선거에서도 여교수들은 발자국 소리를 죽여가며 나를 위해 선거 운동에 최선을 다해줬다. 여교수들은 아직은 소수 집단이지만 그 결속력과 실행력으로 남성 교수들의 의식을 전환시켜 나가고 있다."

90년대 중반 문과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하며 종합대 최초의 직선 여학장으로도 주목을 받았던 홍 교수는 한남대가 교육부로부터 '우수 대학' 평가를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교육부의 BK(Brain Korea)21 프로젝트를 한남대에 유치하는 등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검증된 능력 때문에 동료 교수들은 "홍 교수를 중심으로 학교의 패러다임을 한번 바꿔보자"는 의욕에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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