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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일 원장.
김유일 원장. ⓒ 권윤영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통일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싶습니다. 항상 부모님과 고향을 그리며 살아왔으니 일생을 마친 후에 부모님을 만나도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도 있지만 통일을 소원으로 그리며 살아가는 이는 몇이나 있을까. 통일이란 두 글자를 가슴에 품고 한평생을 살아가는 김유일(85. 대전 보명 한의원) 원장. 그의 소원은 통일이다. 그리고 통일이 신앙이 된지 오래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통일사업에 활발한 활동을 해온 김 원장은 남북통일 문제나 모임이 있을시 빠지지 않고 대부분 참가해왔다. 황해도 도민회장, 민주평화통일협의회, 일천만 이산가족재회 추진위원회, 민족통일협의회, 이북도연합회 등에서 임원을 도맡아 오며 각종 모임에도 초창기부터 참여해왔다. 대통령이 지목하는 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도 20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1·4후퇴 때 월남하여 대전에서 황해도민회라는 것을 창설한 사람도 바로 김 원장이었고 이 단체에서만 50여년을 임원진으로 있었다. 이북실향민 망향탑 건립추진위원장으로서 보문산 최정상에 건립된 망향탑도 그의 작품이다.

기네스 인증서 수상식에서의 김유일 원장
기네스 인증서 수상식에서의 김유일 원장 ⓒ 권윤영
그렇기에 지난 2000년에는 48년 동안 각종 통일 사업회의 8,640여회에 빠짐없이 참석했다는 기록으로 단일회의 세계 최다 참석이라는 기네스도 달성해 인증서도 수상했다. 월 15차례니 이틀에 한 번 꼴. 그의 통일사업은 현재에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김 원장은 1·4후퇴 당시 고향에 가족을 남겨두고 홀홀 단신으로 이북에서 월남했다. 그때부터 자나 깨나 고향 생각이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의 기억은 잊혀지지가 않아. 그 때 미군이 일시적으로 후퇴를 했었는데 잠시만 피해 있다가 다시 북으로 가자는 생각이었어. 내일 간다 모레 간다 하면서 지금까지 기다려왔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보모님은 나이가 많아 피난 나올 기력이 없었다. 처자식은 평양 근처에 있는 용매도라는 섬에 피난을 시켰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부모가 그립다고는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머리 속에 잊혀지지 않고 떠나지 않는 것은 자식 생각이다.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를 것이라는 김 원장의 표정이 일순간 그리움에 젖는다.

“이남 직후에는 차를 타고 가다가도 어느 부모가 어린아이를 때리고 있는 모습만 봐도 차에서 뛰어내려 말릴 생각이 들 정도였어. 깡통을 들고 얻어맞는 아이가 있으면 우리 아이가 그렇게 생활하지 않을까 한참을 보게 되고 말이야.”

기네스 인증서.
기네스 인증서. ⓒ 권윤영
지금은 희미해진 당시의 기억. 하지만 마음속에서 만은 선명하게 남은, 쉬이 잊혀지지 않을 자국과도 같다. 명절 때 가장 고향생각이 난다는 김 원장. 고향사업에도 열중했다고 사람들이 충남 논산 벌곡이라는 곳에 송덕비를 세워줬다. 그 옆에다가는 조부, 백부, 아버지의 비를 세웠다. 그들이 생존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나왔다는 그는 10여 년 전부터 명절 때마다 이곳을 찾아와 차례를 지낸다.

“평화통일 자문위원회 주최로 지난해에 금강산을 갔었어. 산천이야 아무데나 비슷비슷하지만 그곳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이북 감시원들과 대화도 해봤지. 좋다기보다는 비통한 마음이 들었어. 그들의 생활상을 보니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같은 민족으로서 마음이 아팠어.”

그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은 금강산이 아니라 고향인 황해도 해주. 다섯 살, 세 살이던 자식들이 눈에 아른거린다며 이제는 쉰이 훌쩍 넘어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자식들을 만나는 게 소원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해봤지만 그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한번 할 때마다 백 명씩 상봉하는데 몇 십년해도 일천만 이산가족이 다 상봉 못해. 내 생전에는 바라지도 않아. 이제는 희망이 없는 것 같아.”

말은 이렇게 하는 김유일 원장이지만 아직도 그의 소원이 통일이라는 것을, 그의 신앙이 통일이라는 것을, 가슴 속 깊이에는 자식들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그의 표정 속에서 가늠할 수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여전히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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