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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재신임 정국과 시민사회진영의 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 학술단체협의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열렸다.
20일 오후 '재신임 정국과 시민사회진영의 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 학술단체협의회, 전국언론노동조합 주최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개혁을 위한 재신임'이냐, '정권을 위한 재신임이냐'.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0월 10일 던진 '핵폭탄' 재신임 카드는 무엇을 위한 용도인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 학계, 노동계 등이 그 의미를 둘러싸고 부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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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오른 논쟁, 언론활용론인가 언론개혁론인가

이러던 차에 민언련, 학단협, 전국언론노조 등이 주최한 '재신임 정국과 시민사회진영의 과제'에 대한 토론회가 오늘(20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 열렸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등 발제자 포함 총 8명의 각계 인사들이 총출연한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 대통령의 폭탄발언으로 불거진 '재신임 정국'의 정치적 배경, 의미, 향후 전망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토론 참가자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후끈 달아올랐던 뜨거운 '토론의 현장'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모신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안병욱 가톨릭대 사학과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이 나온 뒤 지금까지 국민 누구나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라며 "오늘 장장 세 시간에 걸친 토론회를 통해 현 정국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는 가장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보자"며 토론의 서막을 열었다.

노무현의 '재신임카드'는 최선의 선택이었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노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은 충분하다. 그렇다고, 지금 같은 시기에 대통령이 꼭 '재신임'이라는 카드를 빼들어야 했을까. 그게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의문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조 교수는 "참여정부 이후 '보수세력의 능동화' 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특히 지난 3·1절 보수세력의 집회라든가 대규모로 진행된 8·15 보수세력 집회 등을 보면 이 현상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참여정부 하에서 '보수세력의 능동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지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참여정부가 '노무현다운(개혁적인)'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주요 기반인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나 '진보세력'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할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지지층이 이반되는 건데, 마치 보수세력들의 총공세가 원인의 전체인 양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조 교수는 "더 이상 참여정부가 (자기들이 좋아하는 정책이면 찬성하고, 자기들이 싫어하는 정책이면 무조건 반대하는) '청개구리 식 보수세력'의 마음을 잡기 위해 부심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고, "지난 대선 때 진정으로 정치개혁을 원했던 사람들이 호응할 수 있을만한, 또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맞는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보수세력의 눈치보기는 당장 그만두고, 국민들이 참여정부를 지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뒤, "참여정부가 아무리 보수세력의 눈치를 본다 해도 결코 보수세력은 참여정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투명한 정치를 향한 제도개혁의 전기'로 삼자"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발제를 마치면서 "재신임을 제기한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은 시민사회운동진영이 그 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정치개혁 이슈를 받으면서 '재신임을 철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언론을 상대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여러 문제가 터져 나온 것 같다"고 말한 뒤, "언론권력시대에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이른바 한국사회의 '수구적인 정치집단'이 돼가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특히 최 총장은 "대통령 스스로 수구언론의 덫에 빠진 게 아닌가 생각되고, 진보진영은 앞으로 수구언론의 담론에 맞설 새롭고 진지한 진보담론을 형성시켜 의제설정의 장에서 그들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의 개혁드라이브, 돌파구는 없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첫 토론자로 나선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난 금요일 파병문제와 관련해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노 대통령과 면담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드는 생각은 정말 이 정부의 구성원들이 심각한 자기성찰과 반성을 하지 않으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현재 참여정부가 처한 위기의 원인과 돌파구는 '분명한 개혁노선'을 강화할 때 가능한 데 그걸 쉽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파병반대 운동에 나선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 불신임 투쟁을 벌이자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참여정부에 대한 마지막 기대까지 스스로 허물고 있는 상황"이라며 참여정부의 폐부를 찔렀다.

특히 김 처장은 또 "참여정부는 87년 6월항쟁 이후 개혁세력의 힘으로 처음 이룬 정권"이라며 "내년 총선까지 이런 식으로 '개혁노선'을 명확히 수립하지 못하면 개혁과 진보를 지지하는 대중의 '정치적 공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로 학계반응을 전하면서 "재신임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각각 존재하는데, 무엇보다 '안보문제를 제외한 다른 의제로 국민투표를 한다'는 것은 정당정치가 성숙하지 않은 정치상황에서 펼쳐지는 것이라고 보는 부정적 시각이 있고, 반면, 대통령 스스로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선 것은 '책임정치를 구현하려는 새로운 실험 중 하나'라고 보는 긍정적 시각이 존재한다"며 "그러나 학계에서는 재신임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좀더 우세하다"고 밝혔다.

"진퇴양난 노무현, 자기고백 뒤 정면돌파 말고 할 게 뭐 있나?"

유기홍 개혁당 정책위언장
유기홍 개혁당 정책위언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참여정부의 여러 정책실패 중 하나가 언론관련 정책들이다. 특히 기자실 개방이나 취재시스템 개선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독과점 된 언론시장의 구조개편을 단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아직까지 손대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부수적인 개혁에 힘을 쏟은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학계나 언론, 시민사회운동진영에서 참여정부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자 유기홍 개혁국민정당 정책위원장은 "여기 모인 토론자들이 참여정부 개혁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좋으나, 현재 한나라당이 의회권력의 149석을 갖고 있고, 이건 참여정부 시작부터 주어진 조건이지만 이를 극복할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아마도 노 대통령 스스로 '재신임' 카드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회권력의 과반수 이상이 야당에게 가 있는 현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자기고백'과 그걸 통한 '정면돌파' 말고는 뭐가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오히려 유 위원장은 "현재의 재신임 정국은 '정치개혁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온국민적 관심과 힘을 모으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여기에 시민사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노무현의 개혁정책, DJ보다 후퇴"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회수 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은 유 위원장과 반대로 "이 재신임 정국은 시민사회 요구로 이뤄진 게 아니라 참여정부가 수세적으로 몰리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얼마나 이 일이 추동력을 갖게 될 지 미지수다. 오히려 노무현정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신적 지주인 통합신당의 부양을 위해 이렇게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라며 "참여정부는 97년 DJ가 정권을 잡고 민주와 개혁을 얘기할 때보다 더 후퇴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쐐기를 박았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재신임 투표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은 뒤 "노무현 대통령이 현재 빼든 카드가 정권을 위한 돌파구인지, 개혁을 위한 돌파구인지 명확히 봐야 한다"며 "무엇보다 의회권력을 야당이 온통 쥐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이든 정권이든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카드를 내놓은 것은 '신당을 염두에 두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카드'가 아닌지 생각된다"고 해석했다.

홍 위원은 또 "노무현정권이 정권돌파구든 개혁의 돌파구든 공화국에 걸맞는 공익을 추구하려는 기본 입장은 인정해야 하지만, 이 구도를 보수개혁이나, 보수개혁진보로 나눌 게 아니라 '사익추구집단' 대 '공익추구집단'이라는 전제를 분명히 하고, 공익을 위해 참여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부터 분명히 생각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노 지지세력 '노일병 구하기'에 급급하지 말아야"

한편, 이날 청중으로 참여한 연극배우 명계남씨는 토론 말미에 "그래서 언제쯤 시민사회진영의 과제에 대해 토론할 것이냐"고 돌출질문을 던져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는데, 그가 던진 소감에 따르면, "오늘 토론은 재신임 정국에 대한 해석만 분분하고 실질적인 대안모색은 없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날 토론의 마무리 발언에 나선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청와대에서는 앞으로 조중동을 안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역사와 대면했으면 좋겠다. 우리 또한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보지 말고,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노무현 지지세력들도 '노무현 일병 구하기'에 너무 급급하지 말고, 참여정부가 개혁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모색과 집요함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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