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UFCW 소속의 노조원들
ⓒ 박우성
28년 만에 일어난 식료품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대형 식료품 체인점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올 노동절을 즈음해서 시작돼 한 달여에 걸쳐 진행된 노사간의 새 고용계약협상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지난 10월 5일 기한을 넘기면서 이미 예고됐던 이번 파업은 랄프스(Ralphs)와 알벗슨스(Albertson’s)의 노조원 출근 정지조치(Lock out, 직장폐쇄)와 이에 맞선 노조의 소송제기로 이어지면서 좀처럼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반즈(VONS)와 랄프스, 알벗슨스의 노동자들은 전국규모의 조직인 식료품 노동자 연합노조(UFCW/United Food & Commercial Workers Union)에 가입해 있으며 4년에 한 번씩 갱신되는 고용계약은 세 회사가 함께 체결하게 된다.

현재 파업에 참여한 UFCW산하 지역노조는 로컬 770(LA 지역), 로컬 324(오렌지카운티 지역) 등 모두 7개 노조이며 859개 업소에서 일하는 7만7000여명의 노조원이 함께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노조측은 회사가 경쟁을 이유로 월마트(Wal Mart)나 타겟(Target), 코스코(Costco)같은 무노조 업체들의 임금과 복지혜택 수준으로 역행하려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즈, 랄프스, 알벗슨스의 평균임금은 시간당 15 달러 정도이며 노조의 애초 요구는 첫 해 시간당 50 센트 인상, 다음 해부터 2년마다 45 센트씩 인상해 달라는 것이었다. 회사는 오히려 의료보험료를 노동자가 일부 부담하고 임금도 삭감할 것을 주장하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서로 의견 차이 좁히기에는 상당한 거리 있는 듯

▲ 출근정지(직장폐쇄)조치로 인해 피켓시위에 나서게 된 랄프스 직원들
ⓒ 박우성
UFCW의 로스엔젤레스 770 지부(Local 770)의 대변인인 바바라 메이나드(Barbara Maynard)는 "회사측은 타 업체와의 경쟁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새로운 계약을 통해 임금은 물론 보험혜택도 축소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납득할 수 없으며 회사가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할 때까지 파업을 강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UFCW는 노동청의 중재자가 마련한 지난 11일의 협상이 결렬된 이후에 파업돌입을 선언하면서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소속 노조원들 가운데 반즈의 직원들만이 파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랄프스와 알벗슨스가 곧바로 노조원들에 대한 출근정지조치를 취하면서 UFCW 산하 7개 지부 소속 노조원 전체가 참가한 파업으로 확대된 것이다. 남부 캘리포니아 전체에 걸친 전면적인 파업인데도 모든 매장은 임시직원을 채용해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파업 개시 만 이틀째인 지난 월요일부터는 웨스트 버지니아, 오하이오, 켄터키 등지에서 UFCW의 노동자들이 랄프스의 모회사인 대형 식료품 체인인 크로거사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 매장 앞에서 불매를 호소하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나섰다. 노조측은 이것을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국적인 규모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신호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알벗슨스사의 대변인인 스테시아 레벤필드(Stacia Levenfeld)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5일자로 만료된 4년간의 고용계약기간 동안 직원들을 위한 건강보험 비용이 50%가 넘게 증가했다"면서 "직원들에 대한 복지혜택은 지속되겠지만 그동안의 비용증가에 대한 재무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측은 1998년에서 200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회사측의 이윤증가율은 91%에 달하며 지난 10년간 늘어난 이윤 역시 보험비용 증가율의 10배에 가까운 성장을 보였다고 주장하며 회사측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의 수는 7만 7천여명에 이른다
ⓒ 박우성
지역 식료품체인 위협하는 '월마트 슈퍼센터'

지난 7월 LA시에서는 UFCW 노조원들과 여러 체인점의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가 열렸다. 이 공청회는 대형할인매장의 급속한 성장을 지역의 식료품 업계가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끼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공청회에서 '월마트 슈퍼센터(Wal-Mart Supercenter)' 같은 대형할인매장의 식료품 취급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고 나섰다. 특이한 점은 남부 캘리포니아 전체 식료업계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랄프스와 알벗슨스, 그리고 반즈에서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금년 5월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월마트가 '월마트 슈퍼센터'를 세우고 식료품업계에 뛰어든 지난 1988년 이래로 전국에 걸쳐 25개의 지역 식료품 체인점이 파산을 신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월마트 슈퍼센터'의 사업 확장 덕분이었다.

'월마트 슈퍼센터'는 일반 식료품점에 비해 10%에서 20%정도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이미 작년에 랄프스와 푸드포레스(Food4Less)를 소유한 크로거 사를 추월하고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큰 식료품 체인으로 성장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는 일반 월마트 매장은 있지만, 아직 '월마트 슈퍼센터'가 진출하지는 않은 상태다. 작년에 월마트는 2004년 초 라퀸타(La Quinta)지역을 시작으로 팜스프링(Palm Spring), 팜데저트(Palm Desert)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내의 40여 지역에 '월마트 슈퍼센터'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UFCW를 비롯한 지역 식료품 업계의 조례제정 움직임에 대항해 월마트 측은 이미 이 조례가 부당하다는 내용의 주민서명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FCW의 오렌지카운티 324지부(Local 324)의 대변인인 엘렌 엔리더(Ellen Anreder)는 "지난 계약기간 동안 한명의 노동자가 만들어낸 이윤증가율은 39%에 이르지만 남부 캘리포니아 식료품 노동자들을 위한 고용주의 비용부담은 여전히 전국 평균을 밑돌고 있다"고 말하고 "이들 세 회사는 남부 캘리포니아 전체 식료업계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실제로 캘리포니아에 '월마트 슈퍼센터'가 진출하더라도 향후 4년 내에 시장의 겨우 1% 정도를 잠식할 뿐이라는 예상이다. '경쟁업체의 위협'은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몫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서 상황을 과장하는 것일 뿐 아니겠는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부드러운 분위기의 파업, 피켓시위 현장

▲ 엄마를 따라 피켓을 들고 나선 리차드(6) 머리위로 임시직 구인광고가 크게 붙어있다.
ⓒ 박우성
파업에 대비해 지난 달 말부터 대체인력을 모집해온 회사측에 대해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복지를 제한하고 파업을 유도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노조대표들에 비해 각 업소 현장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편이다.

애너하임 지역의 랄프스 매장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린다 제프리(Linda Jeffries, 41)는 "고객들이 우리를 이해해주고 성원해 주는 것이 참 고맙다. 평소 이 시간이면 주차장에 자리를 잡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밀렸는데, 보다시피 텅 비어있지 않나"라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 일한 지 9년째라는 그녀는 "당분간 다른 식료품점을 이용하다가 협상이 원만히 해결되면 꼭 다시 돌아와달라"는 얘기를 덧붙이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반즈에서 만난 노동자들도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5년 동안 반즈에서 일한 펠릭스 펀도라(Felix Fundora, 36)는 "우리는 임금을 인상해달라고 파업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이전에 보장받던 의료보험혜택을 계속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호프 불락(Hope Bullock, 31)은 취재를 잘 해달라며 "동양인이 많이 오는데 우리가 왜 파업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설명을 해도 잘 이해를 못하고 그냥 물건을 사러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 한인을 포함한 주민들의 지지를 호소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자신은 이름이 인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 이곳의 슈퍼바이저에게 고객들한테 어떤 말로써 이 파업을 지지해달라고 하겠느냐고 물었다.

"회사의 조건에 따르면 나는 연 2천 달러 정도의 의료보험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높은 분담금(Deductible)을 지불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정부에서 제공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정부제정에 부담을 주게 될 테고 결국 우리의 의료보험문제는 전체 시민들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간략하고 명쾌한 예를 들어 답을 한 그는 "가능하다면 협상이 빨리 마무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덧붙였다.

▲ LA 한인타운 인근, 반즈와 랄프스의 싸인이 나란히 서있다
ⓒ 박우성
"한인 노동자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남부 캘리포니아 노동상담소의 간사 김애화씨는 "기본적으로 노동상담소와 IWU(Immigrant Workers Union)는 식료품 노동자들의 파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이번 파업이 한인타운내 마켓노조를 준비해 온 이민노동자조합(IWU)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 내부적인 토론이 끝나지 않았다며 자세한 전망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는 한인마켓의 노동자들의 상황과 주류마켓 노동자 사이에는 현실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주지해달라고 말한 뒤 "월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일반 미국 노동자들에 비해 매우 열악한 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표할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애화씨에 따르면 "월마트의 노동자들은(작년 법원 기록에 의하면) 평균 임금이 8달러 63센트에 불과하고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건강보험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감기예방 주사가 제외된다든지, 월마트에서 일하기 전부터 아프던 것에 대해선 인정해 주지 않는 등의 불리한 조항들이 들어있다. 그나마 이 정도 수준의 건강보험을 받는 것도 6개월 이상을 일한 직원에만 해당된다"고 한다.

김애화씨는 이날도 KIWA와 IWU의 이름으로 식료품 노동자들의 거리시위에 함께 참여했다면서 "월마트와 같은 형태의 불공평한 노사관계가 세워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해고는 불법, 불법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
Local 324 의 실무간사 죤 페레즈(John A. Perez)씨

▲ 오렌지카운티 지역의 UFCW 강당에 모여 시위도구를 준비하는 노조원들
ⓒ박우성
-매장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보니 네 가지가 있는데 파업중인 체인이 4개인 건가?
"아니다. 네 번째 지도는 스테이터스 브라더스(Stater’s Bro.)업소를 표시한 지도이다. 그곳의 직원들도 우리 노조원들이다. 하지만 스테이터스 브라더스 측에서는 출근정지조치(Lock out)를 취하지 않았다. 그 회사는 협상결과가 나오는 것을 그대로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이 지도를 보고 고객들에게 가까운 스테이터스 매장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출근정지조치를 취하는 것은 불법이 아닌가?
"음… 합법적인 조치다. UFCW의 노조원들은 모든 업체와 똑같은 고용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랄프스와 알벗슨스의 조치는 자신들이 원하는 계약조건을 보호(관철)하기 위해서 이뤄진 것이다. 해고는 불법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송을 제기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이번 조치는 부당하다. 회사측에서는 해고가 아니니까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말하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노동자에게는 해고와 다름없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려면 파업을 그만두고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법원이 회사측의 조치는 부당하며 실질적인 해고에 해당함을 밝혀주길 기대한다."

-그럼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부족한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하나?
"이런 일에 대비해서 노조원들이 기금을 조성해 둔 것이 있다. 현재 파업 중이거나 출근정지조치를 받아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일주일에 300불씩 지급이 된다. 하지만 그 기금이 넉넉한 것은 아니라서 파업기간이 길어지면 금방 고갈될 것이다."

-이곳에서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은 각 매장의 피켓시위 현황을 종합하고 피켓이나 유인물 같은 필요한 물건들을 제작해서 현장에 제공하고 있다. 노조측의 지침이 나오거나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각 현장에 전달해 주는 일이 주요업무다."

-시위현장의 분위기와 앞으로 전망은?
"지역 주민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다. 노조원간의 협력도 잘 이루어지고 있다. 마켓 메니저들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만을 당부할 뿐 아무런 마찰도 없다. 개인적으로 노조와 회사간의 협상이 잘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시간이 조금 걸리고 있을 뿐."

-해고될 것을 두려워하는 노조원은 없나?
"해고는 불법이다. 불법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

-작년에 한인계 마켓에서 노사간의 분쟁이 있었는데 회사측의 대응방법이 매우 비슷한 것 같다. 그것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처음 듣는다."
/ 박우성 기자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