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관련
기사
농구선수 우지원이 ' 용공분자 ' 라고?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극우세력과 공조해 일으켰던 '이장희 교수 죽이기' 소동의 전 과정을 추적하던 필자는 그들이 내놓은 마녀사냥 논리가 예상과 달리 초등학생 반공교과서 수준도 되지 않을 만큼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

초등학생 수준보다 못한 논리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알기 쉽고 재미있는 반박 논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조선일보식 마녀사냥 논리'를 해체해 버리기 위한 장치와 도구로 동원한 것이 바로 '시험풀이'였다. 그래서 필자는 당시 월간 <말>지에 게재한 기사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었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독자는 우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다고 미리 지겨워하거나 겁낼 필요는 없다. 흑백논리식 답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므로. 자, 지금부터 5분 동안 시험문제를 풀어보자."

그 말은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유효하거니와, 재미 삼아 다음의 시험문제를 풀어보기 바란다.

※ 다음의 3가지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통일이 되면 수도는 어디가 될까요? 나라꽃은 무엇이 될까요? 공휴일은 또 어떻게 바뀔까요?

(2) A: 애틀랜타에서 북한 선수를 봤어요. 어렸을 땐 우리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랑 똑같더라구요. 참 반갑고 친해지고 싶었어요. 마음의 거리부터 없애는 것, 이것이 바로 통일의 길이 아닐까요.
B: 알고 보면 이렇게 가까운 거린데 마음의 거리는 북극보다 멀어요. 우리 마음의 거리부터 좁혀야겠어요.

(3) 우리는 알아요. 우리가 하나라는 것. 지금은 헤어져 있어도 다시 만나면 하나가 되죠. 마음을 열어요. 생각을 나눠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닌 더 큰 하나. 어렵지 않아요. 마음이 하나 되면 통일은 어렵지 않아요.

1. 통일이 되면 수도는 어디가 될까.
①서울 ②부산 ③평양 ④개성

2. 밑줄 친 부분과 관련하여 통일교육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①북한 사람은 뿔이 달리고 새빨간 사람이라는 식의 반공교육은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남북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②북한이 변하지 않았는데 마음을 열자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반공교육을 더욱 강화하여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고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야 한다.

3. 위의 지문 전체 내용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①남한의 통일정책인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적 통일을 강조한 것이다.
②북한의 통일정책인 연방제 통일을 연상케 하는 이적표현물이다.


땡!

자, 시험시간이 모두 끝났다. 그렇다면 1번 문제에 여러분은 어떻게 답했는가.

어떤 사람은 통일 이후 수도는 당연히 서울이어야 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일보가 1995년 2월 실시한 국민의식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그렇게 답했다.)

또 어떤 사람은 서울과 평양의 중간에 있는 개성이 적합하다고 답했을 것이다. (실제로 김영삼 정권의 대통령자문기구였던 21세기위원회는 1994년 5월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새 수도의 가장 강력한 후보지로 개성을 꼽았다.)

소수이긴 하지만 평양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일보 여론조사에서도 새 수도의 후보지로 평양을 꼽은 '묘청의 후예'가 예상과 달리 5.7%나 되었다.)

여러분은 2번 문제와 3번 문제에는 어떻게 답했는가.

아마도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대다수 사람들은 모두 ①번을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태평로에 위치해 있는 어느 월간지의 사장님처럼 소신을 가지고 ②번을 선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들을 비웃으면 안 된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원적 견해의 상호존중이야말로 최고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정답과 오답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여러분 각자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는 셈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판단의 준거가 시대적 조류와 상식에 합당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1번 문제의 답은 반드시 ①번이어야 하며 2번 문제와 3번 문제의 답은 기필코 ②번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나아가 자기와 다른 답을 선택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문제를 출제한 사람들까지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별난 사람들도 있다. 앞의 기사에서 소개했던 월간조선이 바로 그 장본인이거니와, 우리는 그들의 독특한 정신상태와 사고방식을 실컷 감상한 바 있다.

그런데 월간조선은 1997년 7월호에 이어 9월호에서도 아주 긴 제목의 기사를 싣고 이장희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추적'이라는 꼭지명을 붙인 이 기사의 제목은 「통일원의 통일 캠페인 참고도서에 글을 쓴 두 어린이가 말하는 왜곡·변형의 사례 - 어? 왜 빠졌지요? 그럼 공산주의가 좋은 나라인가요?」였다.

월간조선은 두번째 기사에서는 이장희 교수의 도덕성을 물고 늘어졌다. 54건의 어린이 원고 중 16건의 원고를 입수해 면밀히 대조한 결과 두 어린이의 원문이 삭제되거나 축소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당시 월간조선이 주장했던 왜곡과 변형의 대표적 사례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요약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월간조선의 주장 (1) : 한 어린이의 원문 중에서 "북한 주민에게 김일성과 김정일의 못된 마음을 알려주어야 하겠다. 그러면 북한 국가를 애국가로 쓰자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애국가는 그대로 쓰고…"라는 대목이 삭제됐다. 그런데 이장희 교수는 전문가의 답변에서 "통일이 되면 정말 여러분들이 생각한 대로 바뀔 것이 많겠네요. 나라 이름, 국기, 나라꽃, 애국가뿐만 아니라…"라는 상반된 주장을 했다.

월간조선의 주장 (2) : 한 어린이의 원문 중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유지시켜 준다. 하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선 항상 전쟁 준비에 자유란 언어도 쓰이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대목이 "공산주의 국가에선 항상 전쟁 준비를 한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변형됐다. 그런데 이장희 교수는 전문가의 답변을 통해 "…공산주의는 능력있는 사람이 열심히 벌어서 능력 없는 사람까지 같이 먹여 살리자는 거예요. 다 같이 잘 살자는 뜻이 좋은 제도인데, 기본적으로는 인간은 매우 착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지요"라고 상반된 설명을 했다.


그러나 <나는야, 통일 1세대>의 편집 책임자였던 천재교육의 김지화 씨는 당시 월간조선 기자에게 "어린이 글의 첨삭은 편집과정에서 글의 내용이 1쪽을 넘을 경우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편집기술상 한 것이지 결코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해명했다.

그녀는 월간조선이 시비를 걸었던 문제의 원고 분량이 넘치지 않았다면 그 원고의 맨 뒤에 있던 세 문장을 삭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1쪽이 넘지 않는 대다수 다른 원고의 경우에는 삭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설명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었다.

한편 편집자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장희 교수는 어린이들 글의 편집과정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어린이 글의 변형에 대해 이 교수가 책임질 일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월간조선 기자는 이장희 교수에게 "저자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원칙 아니냐"고 따졌다.

자신은 기자로서의 취재 원칙을 무시하고도 정작 취재원에겐 책임을 따지고 원칙을 운운하는 배짱(?)이 가히 경이적이다. 더욱이 월간조선은 기사에서 "(이장희 교수가) 자신의 글에 방해가 되는 어린이의 글은 삭제한 채"라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단정적 표현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월간조선은 자신들의 논리를 전개하다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먼저 월간조선이 대표적인 삭제 사례라고 거론했던 주장(1)을 보자. 월간조선은 여기서 이장희 교수가 "애국가는 그대로 쓰고"라는 한 어린이의 글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글이 실려 있는 '나라 이름은 무엇으로 바꿀까'라는 소제목의 항목에는 또 다른 어린이의 글이 하나 더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첫 번째 기사에서 설명했듯이, 각 소제목에는 두 어린이의 글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 교수는 이 2개의 글을 읽은 뒤 전문가의 답변을 썼다).

그런데 이 다른 어린이의 글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덧붙여져 있었다.

"애국가는 요즘 유행하는 서태지나 김건모의 랩송으로! 아니면 북한 노래로? 나는 애국가가 은은한 느낌을 주는 가곡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장희 교수의 전문가 답변 중 "통일이 되면 정말 여러분들이 생각한 대로 바뀔 것이 많겠네요…애국가뿐만 아니라…"의 표현은 바로 이 글을 읽은 뒤에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교수가 상반된 주장을 한 것이 아니라 월간조선이 상반된 주장을 한 것이다.

결국 이 교수에게 이념의 덫을 씌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억지 주장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월간조선의 주장(2)도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월간조선은 이장희 교수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비교한 글에서 의도적으로 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마치 이 교수가 공산주의를 찬양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드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이 교수의 글에는 "공산주의의 소멸은 세계사의 추세"라는 등의 대목이 있었다. 월간조선은 자신의 의도대로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이 부분을 애써 무시해 버린 것이다.

다시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월간조선은 "공산주의는 인간은 착하다는 생각에서 출발……공산주의의 소멸은 세계사의 추세"라는 요지를 가진 이 교수의 긴 글에서 뒤쪽은 무시한 반면 앞쪽만 인용해 놓고 "공산주의가 썩 괜찮은 제도처럼 어린이들에게 보일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사실 이건 '기사(記事)'가 아니라 '사기(詐欺)'에 가깝다. 대한민국이 최소한의 상식과 원칙이 있는 나라였다면 벌써 언론사 간판을 내려야 할 '범죄행위'라고 비판받아도 월간조선과 조선일보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원고 내용이 첨삭, 변형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도 선정적인 기사 제목과는 달리 부실하기 짝이 없다. 월간조선은 총 54편에 이르는 어린이 글 중에서 단 2편만 가지고 문제를 삼았다. 이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의도적인 첨삭은 없었다는 반증이다. 만약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첨삭하려 했다면 다른 원고에서도 삭제, 변형 사례가 당연히 발견돼야 했을 것이다.

더욱이 월간조선이 삭제, 변형 사례로 문제삼은 원고를 썼던 한 어린이는 <나는야, 통일 1세대>를 당시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사자가 그때까지 이의를 달지 않은 것은 첨삭 부분이 글 전체의 맥락을 크게 훼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출판사가 무슨 엄청난 저의를 가지고 첨삭을 했다고 보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지적할 것이 있다. 월간조선은 명백하게 출판사 천재교육의 편집권을 침해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한 번 생각해 보라. 월간조선과 조선일보는 항상 독자투고나 청탁원고를 줄이거나 다듬지 않고 들어온 그대로 싣는가? 편집기술상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원고를 약간 손질한 것을 두고 제3자가 나서서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글을 삭제, 변형하고 왜곡했다고 주장한다면 기분이 좋겠는가?

출판사 천재교육은 앞으로 '바보교육'에 대한 참고서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바보'가 '1등'을 자처하는 나라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아무도 지킬 수 없는, 따라서 자신도 도저히 지킬 수 없고 절대 지키지도 않는 기준과 원칙을 내세워서 상대방에게 왜 기준과 원칙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윽박지른다면, 그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타인에겐 가혹해서야 누가 이를 수용할 수 있겠는가. 월간조선과 조선일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이다.

따라서 월간조선이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이장희 교수의 반론보도문을 두 차례나 연속적으로 실어야 했던 것도, 극우언론의 엉터리 선동에 놀아난 멍청한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장희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의 기각 결정을 받은 것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지 5년만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도 모든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봉숭아학당'보다 더 웃겼고, '월하의 공동묘지'보다 더 무서웠고, '아이스맨'보다 더 썰렁했던 문제의 기사를 썼던 월간조선 기자는 아직 젊다. 그런 그가, 그리고 월간조선과 조선일보가 시대착오적인 1950년대식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매우 선정적인 제목의 두 기사를 통해 진정으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참고로 이장희 교수는 당시 이 파문의 배경에 대해 "치열한 보도경쟁에서 시선을 끌어보려는 보수언론의 저속한 상업주의와 옛 영화를 꿈꾸는 극우인사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발생한 사건"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월간조선과 조선일보 기자들에게 시험문제를 제출한다.

※ 다음의 지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코리아 팀의 이분희 누나가 나는 참 좋았다. 경기할 때 표정도 그렇고, 얼굴도 복실복실한 것이 꼭 우리 누나 같았다. 결승전 때 덩야핑이란 두꺼비 같이 생긴 중국 선수에게 지는 것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났다. 그런데 이분희 누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 누나를 보면서, 북한은 이분희 누나 같이 생긴 여자가 사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우리교육> 1991년 6월호 '아이들 소리' 중에서)

1. 여전히 연방제가 연상되는가?
①예 ②아니오

2.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기와 정체성이 뒤흔들린다고 생각하는가?
①예 ②아니오

3.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북한 사람을 뿔 달린 도깨비로 그리기를 바라는가?
①예 ②아니오

4. 남북은 여전히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어야 한다고 믿는가?
①예 ②아니오


주어진 시간은 1분이다. 열심히 풀어보기 바란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