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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대한민국 종교 예술제 단편영화제(한국종교지도자 협의회 주최)가 열렸는데 우리 가족이 출연하고 만든 단편영화가 본선에 올랐습니다. '퍼블릭 액세스 시민 영상제(민언련 주최)'에도 본선에 올랐었는데 그때는 밥벌이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촌놈들 서울 구경도 시켜주고 센터에서 애니메이션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접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 학교까지 '땡땡이' 쳐가며 난생 처음으로 위풍당당하게 자동차를 끌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는 남산에 있는데요. 고속도로를 쭉 타고 끝까지 와서 한남대교를 건너 타워호텔 쪽으로 쭉 오다가 오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명동 쪽으로 오다보면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단편영화제 운영자들의 길 안내를 듣자니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들 말대로 그냥 도로 따라 쭉 타고 오기만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가면 이래저래 비용도 적게 들고 또 갈아타는 번거로움도 없이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리석은 판단이었습니다. 자동차가 오히려 식구들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고속도로 끝까지는 아무 탈없이 잘 갔습니다. 한남대교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한 차례 헤매고 일사천리는 아니었지만 물어 물어 그런 대로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까지도 잘 찾아갔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시상식은 오후 2시부터인데 12시에 도착했던 것이었습니다.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라고 하길래 이것저것 애들에게 볼거리가 많겠다 싶어 일찍 출발했던 것이었습니다.

헌데 실망에 실망이었습니다. ‘서울애니메이션 센터’라 하여 최소한 만화 영화 제작과정 정도는 볼 수 있겠지 잔뜩 기대했었는데 아이들에게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은 고작 무료로 볼 수 있는 만화영화 비디오였습니다. 그것도 대형 화면이 아닌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였습니다. 집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시설이었습니다.(제가 애니메이션 센터 시설을 잘 알지 못해 제대로 이용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화질이 썩 좋지 않은 무료 비디오를 접어두고 센터 부근의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짬뽕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돌아 왔는데도 1시간이나 더 남아 있었습니다. 1시간이 지나고부터 주차비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아내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최소한 시상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만큼은 주차비를 받지 말아야 하는 거 아냐…"

“잘됐다. 여기가 남산 자락이니까, 온 김에 남산 타워 구경이나 가자.”

예나 지금이나(지금은 모르겠지만) 남산 타워는 역시 촌놈들 서울 구경하는데 기본 코스가 아니겠습니까?

센터에서 정문을 지키는 아저씨들에게 물으니 산길을 쭉 타고 올라가면 남산 타워가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따라 센터 앞길을 타고 쭉 올라갔더니 남산 타워 길은 나오지 않고 느닷없이 일방통행로가 턱하니 나타났습니다.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환장할 일이었지만 어쩌겠습니까? 대충 방향을 '때려잡아' 되돌아가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헤매다가 이태원 길이 나오 길래 한남동 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심사로 한참을 내달렸습니다. 달리고 달려도 한남동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뒷 차에 떠밀리다시피 하여 어떤 대교를 통해 한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강을 건넌 김에 한남대교를 찾아 처음에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뒤차에 떠밀리고 앞차에 이끌려 무작정 강변 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되돌아 나갈 길을 찾았는데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 저거 63빌딩이지? 아빠 맞지!”

한참을 달리는데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그 63빌딩이라면서 큰 아이가 신나 했습니다. 결국 한남대교는 찾지 못하고 강변도로를 따라 여의도까지 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짜식들아, 아빠가 헤매고 있다구? 너희들 63빌딩 보고싶다 그랬지? 거시기 있잖어, 아빠가 말여, 이거 63빌딩 보여 줄려구 여기까지 왔던 거란 말여.”

가장 체면이 말이 아니었는데 마침 잘 됐다싶어 적당히 얼버무렸더니 63빌딩에 가자고 합니다. 아이들은 ‘야, 굉장히 높다. 저 안에 들어가면 별의 별거 다 있다는데…’ 어쩌구 신나게 들떠, 온갖 촌놈들 티를 냈지만 단편영화제 시상식을 핑계삼아 그냥 지나쳤습니다.

사실 63빌딩 구경할만한 여비도 없었고 주머니에 돈이 있었다 해도 갈 수 없었습니다. 63빌딩으로 접어드는 길목조차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원효대교를 건너 강변로를 타고 어림잡아 한남동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맨 처음 왔던 길을 타고 천신만고 끝에 ‘서울 애니메이션 센타’로 되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조랑말을 타고 한양성에 도착해서 볼일 다 보지 못하고 한양성을 빠져 나올 때까지 나는 한양성에서 활보하는 수많은 무림고수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서울시내의 운전자들은 자동차라는 무시무시한 장검들을 휘둘러 대는 ‘무림 고수들' 이었으니까요.

기가 막히게 잘 빠져나가고 잘 끼어 들고 잘 달려갑니다. 옆구리로 엉덩짝으로 어깨로 머리통으로 하여튼,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장검들을 살벌하게 휘두르고 잘도 피해 다닙니다.

장검(승용차)들이 끼어 들지 못하는 공간은 여지없이 단검(오토바이)들이 사방 팔방에서 끼어 듭니다. 휙휙 지나쳐 갑니다. 지나쳤다 싶으면 또 다른 예리한 단검들이 내 눈앞을 가로질러 갑니다. 오토바이는 마치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살수들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내 차 꽁무니를 바싹 붙어 따라오는 것을 죽어라 싫어하는 나 또한 앞 차 꽁무니에 바싹 붙어 따라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의 여유 공간을 주었다가는 밤새껏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있어야 할 것 같으니 어쩌겠습니까?

차선을 바꾸려면 어쩔 수 없이 끼어 들 수밖에 없었는데, 하수는 역시 하수였습니다. 나는 옆 차선으로 끼어 들기 위해 내내 깜박이만 켜고 있어야 했습니다. 깜박이만 켜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 떼기로 알 것 같아 큰맘 먹고 머리통을 들이 밀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지없이 짓눌러 버립니다.

어쩌다 조금 공간이 생겨 이때다 싶어 끼어들라치면 목을 내려 칠 듯이 순식간에 밀어붙입니다. 등골이 오싹합니다. 그런데도 앞에 뒤에 차들은 깜박이도 없이 잘도 끼어 들어 제 갈 길을 잘 찾아갑니다. 결국 '깜박이'만 넣고 밀리고 밀려서 엉뚱한 길로 접어들기도 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유턴 차선이 나올 때까지 떠밀려 가다가 다시 되돌아 가야했지요.

시도 때도 없이 가로질러 내달리는 대담성, 한 치의 거리도 허용하지 않고 끼어 드는 순발력과 날렵함 등을 고루 갖춘 ‘무림의 고수들’, 서울시내 운전자들은 번뜩이는 장검을 상처 하나 내지 않고 거침없이 휘둘러대는 그야말로 무림의 고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외공 뿐만 아니라 내공의 힘도 엄청 나 보였습니다. 나는 수련이 덜 돼 울컥울컥 입에서 욕설이 반쯤 튀어 나왔지만(우리 집 애들 귀가 열려 있어 ‘에이씨, 저…’에서 가까스로 멈추곤 했지만) 내·외공을 고루 갖춘 고수들은 달랐습니다. 아무리 끼어 들고 가로질러 가도 고수들은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절대 흥분하지 않는듯 보였습니다.

길을 헤매다가 묻기라도 하면 고수들은 아주 짤막하게 대답해 줍니다. 초행길인 내겐 선문답이나 다름없는 짧은 길 안내. 역시 고수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너절한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척하면 삼천리'로 알아듣기를 바랬습니다. 상대편이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었습니다. 못 알아듣게 되면 그건 듣는 사람의 수행이 덜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도 닦는 사람들 많기로 유명한 계룡산 부근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 한양성 무림고수들의 고강한 도력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었습니다.

내가 잘 아는 계룡산 스님 중에 트럭 운전기사 출신의 ‘고수’가 있습니다. 승복에 갇혀 있지 않고 말과 행동이 거침없는, 무애행(無碍行)으로 잘 단련된 불법 운전(내가 보기에는 순전히 불법(不法)이지만 스님 말로는 불법(佛法)이라 합니다)으로 유명한 양반입니다.

이 스님이 끌고 다니는 50만원짜리 탈탈거리는 다 낡은 중고 승용차에 타게 되면 어떤 이들은, 특히 겁 많은 보살들은 청룡열차를 탄 기분이 든다고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스님 역시 서울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것이었습니다. 대담성은 서울의 고수들 못지 않지만 끼어 들기의 순발력만큼은 하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나는 서울시내를 활보하는 수많은 무림고수들의 예리한 칼날을 피해 다니며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드디어 한남대교를 건너 운 좋게 ‘부산’ 방향의 표지판을 따라 고속도로 진입로를 잡아 탈 수 있었습니다.(사실 고속도로 길을 잘못 접어들어 다시 되돌아서 접어들어야 했습니다.) 정말로 천우신조였습니다. 하늘이 도왔습니다.

고속도로 길로 접어들고 우리 촌놈들은 비로소 맘을 놓았습니다. 고속도로 타는 것을 질색을 하는 나였는데 고속도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고속도로를 접어들라치면 덩달아 바싹 긴장부터 하는 아내도 그럽니다.

"고속도로가 이렇게 편한 적은 처음이네…"

맨 끝 차선을 잡아타고 여유 만만하게 운전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비 맞은 놈처럼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예~에 좋습니다. 추월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추월하시고 앞지르기하시려면 얼마든지 하세요. 욕 안 할 테니 다들 맘대로 하세요. 아, 아, 마이크 테스팅, 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수들에게 알립니다. 하수는 적당한 속력으로 맨 끝 차선에서 느릿느릿 갈 테니까. 길 바쁜 고수 여러분들은 다들~ 알아서 맘대로 가세요.”

작은 아이 인상이는 멀뚱멀뚱 차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지만 구통(口通), 큰 아이 인효는 강원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떤 코미디언 흉내를 내며 한마디 합니다.

“서울 사람들은요, 우리 보다 싹 다 잘 났지만요, 교통 질서는요, 싹 다 빵점이래요.”

아내도 거듭니다.

“애들한데 서울구경 시켜준다고 들뜨게 해놓고 기껏 자동차 끼어 들기 구경만 실컷 해줬구먼….”

그런데 말입니다. 가수 이은미의 노래를 기분 좋게 따라 부르며 달리고 있는데 어떤 톨게이트 앞에서였습니다. 갑자기 오른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휭 하니 45도 각도로 내 앞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아찔했습니다. 불과 3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였습니다. 브레이크 밟을 틈도 없이 지나쳤습니다.

“하, 저 X놈의 새끼가, 확!”

역시 나는 하수 중에 하수였습니다. 차마 아이들 앞에서 퍼부어 댈 수 없어 꾹꾹 눌러 참아왔던 욕이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뱉고 나서 계면쩍게 룸미러를 통해 아이들을 슬쩍 보았더니 다행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피곤한 표정이었는지 행복한 표정이었는지는 몰라도 콜콜 잘도 자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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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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