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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부터 조선대학교 생협건물4층에서 열린 기쿠치 가즈코의 사진전. 그녀는 재일교포 1세대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13일부터 조선대학교 생협건물4층에서 열린 기쿠치 가즈코의 사진전. 그녀는 재일교포 1세대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간 재일교포 1세대들에 대한 사진전이 지난 13일부터 5일간의 일정으로 조선대학교 생활협동조합 4층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회에 소개된 작품들에는 재일교포 1세대들의 고통과 생활상이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고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전시회의 작가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점. 사진작가 기쿠치 가즈코(菊池和子·58세)씨는 2000년부터 가와사키시에 살고 있는 재일교포 1세대들의 삶을 렌즈에 담아왔다.

"식민지배 시기 올바른 역사를 알고 싶었다"

1968년 도쿄도립 공립소학교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던 가즈코씨는 1994년 현대사진연구소에 입소해 사진작가 생활을 병행했다. 그 후 정년이 아직 남아있던 2000년, 교사직에서 퇴직하고 가와사키시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청구사(靑丘社)'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한반도를 뜻하는 '청구(靑丘)'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청구사는 가와사키시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들을 돕는 단체.

청구사에서 연로한 한국인들의 병원출입과 목욕, 식사 활동을 돕던 가즈코씨는 자신의 카메라에 재일교포 1세대들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엇보다 그분들이 식민지배 시절 당했던 고통에 대한 올바른 역사를 알고 싶었고, 그분들을 통해 일찍 돌아가신 내 부모님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며 촬영 계기를 설명했다.

가즈코씨는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교포 1세대들의 생활이 매우 어렵다고 전하면서, 그 이유를 "역사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와 중노동에 시달리다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그분들 탓이 아니다"면서 "그분들을 조국과 가족의 울타리에서 끌고 나온 시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가즈코씨가 '시대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재일교포 1세대의 궁핍한 생활이 자식들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것에 대해 "내 탓"이라며 한을 삭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실제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온 한국인들은 전쟁중에는 군수공장이나 탄광에서 일하다, 종전후에는 국적 차별 때문에 여러 기회를 놓쳐 3D업종에 종사하다, 이제는 늙고 병들어 생계를 꾸릴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반세기 동안 민족의 정체성 지키는 1세대 모습에 감동"

가즈코씨는 재일교포 1세대들을 렌즈에 담을 때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고발하고자 노력했다. 그녀는 "전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에 대한 비극적 면을 사회에 고발하고 호소하고자 노력했다"면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역사가 기막힐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그분들이 국가의 폭력에 의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실들이 일본인인 나에겐 원죄로 다가온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가즈코씨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일본에 거주한 재일교포 1세대들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그대로 지켜가는 모습에 대해 "감동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1세대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한국에 있는 젊은이들이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가즈코씨는 어렵게 살고있는 재일교포 1세대들에 대한 조국의 배려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녀는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재일교포 1세대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경기도 부천시 초청으로 40여명의 재일교포 1세대와 함께 내한해 사진전을 열었을 때,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격려하는 걸 보고 "아직도 조국은 우리를 잊지 않았다"며 좋아하던 1세대들의 모습을 '젖은 눈'으로 봤다는 가즈코씨. 그녀는 생의 마지막 언덕을 오르는 1세대들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조국의 관심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힘겨운 재일교포 1세대의 생활
어려운 살림에 입 덜고자 독거 고집

현재 재일교포 1세대들의 생활은 대부분 매우 곤궁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시에는 전쟁동원에, 전후에는 갖은 차별로 '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

문제는 이들 1세대가 모두 고령으로 생활능력이 전혀 없어 주위의 도움없이는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72세 이상인 1세대들은 국적 조항에 의해 연금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련돼있는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수밖에 없다. 이원하(78세) 가와사키교회 목사는 "자식들의 생활도 많이 어려워 기댈 수도 없는 처지가 대부분이어서, 입하나 덜고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 홀로 생활하면서 고독에 시달리는 동포 노인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가와사키시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1세들의 사정은 약간 나은 편이다. 가와사키시는 일본 지자체 중 최초로 '외국인 고령자 복지수당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로 인해 재일교포 1세대들에게 월 2만1500엔의 수당이 지급되지만, 이는 일본 국민연금의 1/3수준이어서 생계를 꾸려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가즈코씨는 사진촬영외에 가와사키시가 외국인 복지수당 정책을 시행하도록 시위를 벌인 경험이 소중한 경험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녀는 "가와사키시가 이 제도를 추진할 수 있도록 많은 일본인 자원봉사자와 함께 대규모 시위를 조직해 결국 관철시켜 너무 기뻤다"고 회상했다.

경제적 어려움 외에 1세대뿐만 아니라 재일교포 사회 전체가 직면한 어려움은 바로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다. 북한을 염두에 둔 일본의 '유사법제' 제정으로 재일교포를 바라보는 일본의 눈길이 많이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가즈코씨는 "지금 일본의 상황에 대해 매우 당황스럽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녀는 이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조그만 돌을 던져 파문이 일어나듯이 힘을 합쳐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정립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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